중년의 노화
그냥 늙어 가고 있음을 썼는데...
당연히 나이를 먹으니 늙어 갈 거고 그러니 거북하니 적응이 안되는데
그렇다고 이 상황이 내 것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양심이 허락하지 않아
웃으면서는 아니어도 꾸역 꾸역이지만 받아들이자고 마음먹고
그래서 그렇게 잘하고 있다고 써 두었던 것이었는데
읽는 쪽에서는 불편해지는 것 같아 미안해졌다.
병원을 가도 내 몸이 50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내 아이의 발뒤꿈치가 두꺼워졌을 때 충격을 받았는데
그렇게 걷기 연습을 시킨 사람이 잘 걷는 아이의 발을 보고 충격이라니
어딘가 맞지 않는 이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자체가 과정으로
살아가니까 그만큼의 손상도 있어 그만큼의 노화도 온다고 생각이 되었다.
이 생각은 많은 것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했는데
삐걱거리는 뼈나 어지러운 니글거리는 기분에도 빨리 받아들여졌다.
다만 매번 다른 상황이 되어 깜짝깜짝 놀래면서 두근거리기는 하지만
한 곳만 계속 쑤시거나 한 증상이 계속되는 것은 아니어서 안심하고
내 몸을 내가 잘 못쓰고 있어 생기는 것은 스스로 고치자고 노력을 한다.
크게 확 달라진다면 정말 힘들 것 같지만
조금씩 조금씩 달라지는 노화에는 견디고 살아가야 할 것 같다.
이것이 병원에 가야 하는 수준인지 아닌지 그것을 판단하는 것에서
생각들이 많이 갈려 초기에 잡을 수 있으면 좋지 않냐고 하는데
초기이면 그냥 말기까지의 시간이 있으니 다행이라고
말기이면 고통이 오는데 참을 수 없는 고통에는 도움을 받자고
난 그저 받아들이면서 죽어가자는 것으로 자연스러움을 택하려 한다.
대학 친구 말이 내가 대학을 다닐 때 죽으면 화장을 할 거라고 했다며
그 시대에는 화장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어 충격을 받았는데
그 나이에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이는 내가 처음이었다고 했다.
나는 젊은 그때부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하니 새삼스러웠는데
지금 이렇게 무덤덤할 수 있는 것은 긴 시간의 내공이었구나 한다.
난 일종의 자랑질을 한 거였다.
나에게 이런 노화가 있지만 난 잘 극복하고 있다고
비관이 아니고 그저 덤덤하게 상황을 재미있게 써 본 것으로
이걸 나 스스로 이겨내고 있다고 그래서 난 대단하다고 말한 것이었다.
내가 타국 생활 30년 만에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중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알고 싶어 한참을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의 글을 찾은 적이 있었는데
내 아이들에게도 시간이 흘러서 노화를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오면
엄마인 사람은 어떻게 노화를 생각했는지 참고가 되지 않을까 해서 써 두고 싶었다.
생각은 어떤 방향으로 무엇을 위해서 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안다면
아이들도 편하게 늙어가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까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