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노화
노후의 설계에서 가장 걱정되었던 부분은 시간 때우기였다.
혼자 늙어가면서 외롭다거나 쓸쓸하다고 나약해지면 결국 자식이 힘들어지니
차근차근 정신적인 독립을 잘해서 아이들의 삶에서 완전하게 벗어나게 되면
정신줄을 잘 붙들어 죽음이 오는 날까지 심심하지 않게 살자고 설계를 했었다.
노후의 준비에 경제적인 것도 있지만 난 절약에는 달인이다.
지금도 9평의 오피스텔 생활이 답답하거나 거북하지 않고 도리어 만족이 되는데
덕분에 관리비도 적고 전기세 등도 적으며 청소의 부담이 확 줄어서 편하게 한다.
사고 싶은 것도 없는데 돈도 남아돌지 않으니 그런 것에 머리를 쓸 필요가 없으며
그저 먹는 것이 최고의 소비인데 그것도 나이가 드니 먹어야 하는 양도 적어져
비싸지 않은 내 입맛은 나를 엄청 편하게 해 주고 있어 걱정이 없다.
나머지 하나는 건강인데 난 특별하게 약을 먹어야 하는 병은 없다.
엄청 좋았던 시력의 내 눈은 점점 노화가 와서 돋보기가 3개나 되고
단단했던 다리의 근육도 많이 부드러워졌는데 그래도 걱정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어지럼증은 점점 자주 오는 것 같고 귀에서 나는 소리도 심해졌다.
쭉 이 나이가 될 때까지 잘 적응하면서 같이 살아왔던 것 같은데
이젠 귀에서 나는 소리에 머리가 울렁거리고 그래서 어지럼이 오는지
한참 바쁘게 살던 40대 후반까지는 어지럼에 무서워서 기면서 울었던 일들이
그저 기억일 뿐이지 고통과 공포는 남아 있지 않아 살아가는데 방해가 되진 않았는데
나이가 들어서 한 번씩 어지러워 힘들어했던 것은 그대로 공포로 남아 있는지
점점 더 어지럼이 올까 봐 무서워서 몸을 사리게 되었다.
근육이나 뼈나... 이런 건강이 아닌 건강의 문제도 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나이가 들면 멋진 그림과 웅장한 음악이 깔린 환상적인 게임을 해 봐야지 했다.
시간은 무제한 있고 모니터 정도는 살 능력도 되고 누구 눈치 볼 필요도 없고 하니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느라고 시간도 없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대충 본 영화도
혼자가 되니 덕분에 영화의 분위기도 마음 놓고 즐기면서 볼 수 있겠다고
노후의 설계에서 혼자 시간을 메꿔야 할 때를 위한 것으로 목록도 해 두었는데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지금 내가 볼 수 있는 오락프로는 고작 여러 명이 둘러앉아 이야기하는 토크쇼로
난 움직임이 있는 것은 어지러워 열심히 보던 골목 식당도 볼 수 없게 되었다.
뉴스 등으로 소식을 듣고 궁금해서 꼭 보고 싶으면 한 시간 프로를 네 번에 나눠 보는데
이러고도 속이 울렁거려 아예 안보는 쪽으로 그저 눈으로 읽는 것을 하기로...
이렇게 하다 보니 생활의 다양함이 확 줄어들었다.
그리고 요즘 내가 엄청 우아하게 짝퉁 귀족 스타일의 행동을 하고 있었는데
난 그저 머리통이 무겁고 흔들리면 안 되어 목에서부터 고정을 시켜놓고
그대로 옆은 아예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아래를 봐야 하는 것도 눈만 내리깔고
몸의 움직임도 빠르면 머리통이 흔들려서 컵을 집을 때도 팔을 천천히 뻗는데
그 꼴에 웃고 싶어도 크게 웃으면 머리통이 흔들리니 우아하게 미소를 짓는다.
난 엄청 빠르게 걸어서 친구들이 경보 수준이라고 했는데 그걸 지금 늘보 수준으로
지금 내가 달라지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은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손가락뿐인데
머리통이 무겁고 속은 울렁거려도 머릿속의 생각은 그대로 그 속도로 움직여
이 답답함을 이 정도까지 참아 내는데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달라져 가는 나는 내가 아닌 듯했는데 그게 멋지게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노화하고 있다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 같다.
멀쩡한 아들은 벌써 일어나 이제는 배가 고플 텐데 하면서도
난 지금 일어나면 울렁거린다는 것을 알고 누워서 비비적거리는데
이렇게 엉성한 몸과 멀쩡한 머릿속 눈치를 봐 가면서 사는 일을
꼭 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언제까지 살았으면 좋겠니 하고 아들에게 물으려다
이런 고민을 아들과 상의하는 것은 엄마로서 할 일은 아니라고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