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비상약
그저 멀미약인데...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가서 짐을 부치고 티켓을 받으면 안심을 하고
어딘가 물이 있는 곳에 앉아서 꼭 멀미약을 챙겨 먹었다.
내가 지금까지 10년 동안 애용한 멀미약은 조그만 노란 알약으로
한 알만 먹으면 두 번의 비행기를 갈아타고 내릴 때까지 나는 자유였다.
처음엔 그저 뭐든 먹어야 탈 수 있다고 먹었던 것이
알고 보니 가장 오랫동안 효능이 있다는 쫌 강력한 것이었는데
그래서인지 힘들어지면 찾아오는 어지럼증이 오지 않아 정말 좋았다.
여권을 넣어 두는 주머니에는 반드시 볼펜도 있지만 멀미약도 있다.
아주 젊었을 때엔 어떻게 비행기를 탔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도 워낙 가까운 거리인 부산과 오사카여서 견딜만했었는지
내 번호의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이륙한다고 움직이지 말라고 하고
이제 움직여도 됩니다 하는 표시등이 켜 지면 뭔가 나누어 준다고 하고
그러면서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시 착륙한다고 움직이지 말라고 하니
난 멀미라는 것을 할 기회가 없었는지 그땐 멀미약 없이도 견뎠나...
미국에 가려면 멀미약이 있어야 한다고 잠시 눈 감고 견뎌 해결되지 않는다고
처음 일본에서 미국으로 떠날 때 일본에서 멀미약이라는 것을 사 먹었는데
그게 한 시간의 비행에서도 힘들게 참았던 지난날을 엄청 후회하도록
태어날 때부터 가진 것 같은 멀미가 이렇게 간단하게 사라질 수 있다는 것에
그때부터 멀미약이라는 존재를 알고 그것이 내 삶에 어떤 역할을 할 건지
그땐 몰랐지만 지금은 거의 의존하면서 산다고 해도 될 것 같은 존재가 되었다.
한 번은 LAX 공항에 와서 티켓을 받아 들고 공항 안으로 들어와 안심을 하고
아이들에게 마지막까지 해 주고 싶은 것을 하고 그저 시간 안에 공항에 오면 된다고
내 가방 속도 내 옷차림도 그제야 신발은 제대로 신고 나왔는지 확인하고는
들고 타는 가방의 물건을 사람들이 보거나 말거나 모두 꺼내어 제대로 넣고
아이들에게 공항에 잘 도착했다고 잘 챙겨 먹으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나니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이제 비행기에서 더빙이 되어 있는 영화만 보면 된다고
탑승시간은 아직 50분이나 남았으니 마지막 운동을 할 겸 돌아다니자고 일어나
그때 내가 아직 멀미약을 먹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공포의 순간으로 손이 떨렸는데 왜 먹지 않았냐고 나를 나무라면서
여권 옆에 있는 작은 통을 봤을 텐데 왜 먹지 않았냐며 열어보니 약이 없었다.
그제야 생각이 났는데 미국으로 오면서 마지막 한 알을 먹으며 사야 한다고 했던...
가슴이 뛰니 멀미약이 영어로 뭐라고 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아들에게 전화로 물어보고 그건 약국에 가야 하는데 이 공항에 어디에 있는지
거의 울먹이면서 약은 타기 한 시간 전에 먹어야 한다고 전화기에 호소를 했더니
아들이 편의점 같은 곳에서도 판다고 하며 어디에 있는지 알려 줬다.
그래도 불안해서 전화를 끊지 않고 중계방송하듯이 떠들면서 편의점을 찾고는
아들에게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고 끊고 직원에게 멀미약이 있냐고 물었는데
상점 안쪽의 벽면 하나가 전부 멀미약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언제나 같은 성분의 같은 함량의 멀미약을 샀었는데
그게 상점마다 있거나 없거나 해서 항상 발견하면 미리 사 두었던 멀미약이
모든 종류가 다 벽에 걸려 있어 안심이 되면서 초조했던 것에 웃음이 나왔다.
매번 찾아 헤매지 말고 이제부터는 공항에서 사면되겠구나 하면서
먹자고 생각하니 물이 필요했는데 이제 비행기를 타면 괜히 짐이 되는 것을...
그래서 궁색하게 침으로 약 한 알을 삼키고 아들에게 고맙다고 전화를 하고
급히 사느라고 신경 쓰지 않았던 가격을 보니 비싸서 아까 했던 결심을 취소했다.
이제 이 멀미약은 나에게 비행기 말고도 타는 것 말고도 쓰이는데
휴대폰이나 컴퓨터의 화면이 일정하지 않고 흔들리거나 바뀌는 것에도
옆자리의 사람이 다리를 떨고 있어도 기동하고 있다고 깜박이는 불빛에도
난 하다가 보다가 멀미를 하는데 그걸 참으면서 계속하면 어지럼이 왔다.
나이가 들어서 인지 고통이 기억에 남아서 인지 점점 더 무섭다고 느끼는데
그래서 아예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하자고 멀미약에 도움을 청한다.
특히 컴퓨터 안에 넣어둔 사진을 정리할 때엔 필수!!
멀미약도 너무 자주 먹으면 안 된다고 해서 엄청 자제하는데
이 고통을 아이들에게는 전하지 않았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