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근성이 빛을 발했다.

중년의 생활방식

by seungmom

오늘 저녁 반찬 준비를 하려면 머리가 멍한데

내일 저녁 반찬 준비는 미리 해 둔다는 것으로 뿌듯하다.

내일 먹을 반찬 걱정은 오늘 반찬은 되어 있다는 것으로

지금이 든든하니 내일 일에도 즐거운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뭐든 미리미리 준비해 두려고 애를 쓰는데

이래서 덕을 보는 것도 있지만 이래서 손해를 보는 것도 있어

현재가 미래에 치어서 항상 어수선하게 지나가니

준비해 둔 것만은 머릿속에 남아 기분까지 우쭐한데

그 준비로 뭘 얼마나 잘 보냈나 하는 기억은 짜내야 한다.

잘 준비해 두어서 아무 탈이 없었으니 머리에 남는 것이 없다고

준비를 열심히 한 나를 위해 억지로 납득을 시킨다.


그런데 그 현재인 오늘 난 또 내일의 일을 준비하려고 바쁘다.

오랜 시간 동안 이러고 살았더니 그걸 바꾸기엔 너무 늦었는지

그렇게 살아서 아이들과 내가 이 정도는 하고 사는지도 모른다고

나의 생활 방식에 내가 나도 모르게 만족을 하고 있었는지

이러고 앉아서도 뭘 미리 해 두어야 하는지 머리를 굴린다.


글 쓰는 것이나 영어 공부는 준비가 아니고 실천이어서 힘든가...

지금 앉아서 해야 하는 공부보단 내일 할 일에 더 신경이 쓰이는지

앉아 머리를 써야 하는 일은 괴로워서 핑계를 대는 것인지

이 생활방식이 이 나이에는 조금 한심해 보여 바꿔보고 싶은데...



2월 초에 미국에 가려고 비행기표를 3개월 전에 사 두었는데

슬슬 가야 하는 날짜가 가까워 오니 정신이 힘들어서 그런지

나이 탓인지 체력이 허술해 인삼액을 챙겨 마시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에게도 집에 있는 인삼 절편을 매일 먹으라고 했다.


갑자기 1월 말에 예정에 없던 일로 일본 고베에 가게 되어

급한 마음에 정신이 없었는데도 공항을 떠올리니 마스크 생각이 나

일본과 미국에 가는 여정에 필요한 것과 아이들도 필요할 거라고

94가 쓰여진 마스크가 무슨 의미인지 약국에서 설명을 듣고

혹시나 모른다고 해열제까지 사 두었다.


난 마스크가 거북해서 일본인들이 유행처럼 할 때도 그냥 살았었고

한국에서 마스크를 해야 한다고 하는 날에는 집에서 지내면서

마스크를 하지 않아도 되는 방향으로 살아 마스크의 종류도 몰랐다.

그런 마스크를 이번에 쓰게 되었는데 공항버스에서 공항에서도

일본에서 관공서로 돌아다닐 때도 항상 하고 있었더니 익숙해졌는지

이젠 마스크를 하고도 숨이 제대로 쉬어지는 것 같이 느껴졌는데

3박 4일로 다시 부산에 와 며칠 후에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내리니

LAX 공항에는 마스크 한 사람을 찾아야 볼 수 있었다.


이제 미국도 안전하지 않다고 하더니 순간 마스크가 매장에서 사라져

우리나라 것보다 훨씬 엉성한 마스크가 그나마도 없구나 했는데

짐을 풀면서 챙겨 온 마스크와 인삼액을 보고 아이들은 시큰둥하더니

지금은 마스크의 성능도 좋고 디자인도 멋지다고 미리 잘 사 온 것 같다고

딸아이는 나의 준비 정신에 점수를 후하게 줬다.


우리들은 인삼액 덕분인지 건강하게 아직은 마스크 없이도 잘 지내고 있는데

이곳도 점점 위험해지는지 대학 연구실에도 지침이 계속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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