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무지

중년의 식탐

by seungmom

나에게는 훈장과 같은 공책이었는데..

몇십 년 만에 학생의 기분을 내면서 써 놓은 공책이 엉망이 되었다.


미국에서 내가 좋아하는 마늘을 듬뿍 넣은 초 고추장을 만들어 온다.

1kg의 고추장으로 초고추장을 만드는데 딸이 보더니 장사를 할 거냐고 했다.

일본에서 한국의 매운맛이 그리워질 때 이것만 있으면 뭐든 해결이 되는데

밥이나 국수에 야채를 듬뿍 넣어서 같이 비벼면 매운 한국음식의 갈증이 해소되었다.


일본에 고추장을 가지고 와 만들어 먹었던 적이 있었는데 맛이 너무 달랐다.

난 요리를 잘 하지 않아서 차이점을 몰랐었는데

일본은 땅에 물이 너무 많아서 모든 야채가 우리나라 야채처럼 달지가 않다고 한다.

정말 마늘을 요리하면 상관없는 것 같은데 생마늘의 맛은 그냥 쓴맛만 남았다.


모든 야채가 물기가 너무 많아서 그런지 일본 단무지도 거의 물기를 빼서 만들었다.

사 먹어 본 것들이 전부 조금 덜 말린 무말랭이 급의 씹힘으로

내가 가장 원하는 우리나라 단무지처럼 사각거리는 씹힘이 전혀 없다.

그리고 물기를 빼는 작업이 힘들어서 그런지 단무지 값이 상상을 초월하게 비싸다.


미국에 있는 한국 마켓에서 단무지를 사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노란색보단 무색이 몸에 좋다고 했다.

하지만 약간의 몸의 희생이 있어도 나의 단무지는 역시 노란색이다.

단무지는 미국에 살면서 맛을 들였고 그 쓰임이 얼마나 폭이 넓은지 알았다.

단무지에 고춧가루와 참기름만 있으면 김치도 대신하게 되며

단무지에 매운 컵라면만 있으면 일본살이가 조금은 살만해졌다.

이런 이유로 초고추장과 단무지는 꼭 가지고 오는데

걸쭉한 액체상태의 초고추장을 비닐봉지에 넣어 여러 겹 싸고

단무지도 많이 넣어 오려고 먹기 좋게 썰어서 비닐봉지에 넣어 여러 겹을 한다.

매번 하면서 발전된 나만의 방법이다.


집에 와 가방을 열어보니 미국 공항에서 가방을 열어 봤다는 쪽지가 들어 있었다.

쿨러백에 넣어져 있는 것의 온도가 달라서 그런지 매번 열어 봤다.

이번에도 그러려니 하며 음식을 꺼내어 냉장고에 넣는데 손에 물기가 느껴졌다.

쿨러백 안에는 물기가 전혀 없어 보이는데...


나의 황금과 같은 공책을 정말 황금색의 얼룩으로 물들여놓았다.

쿨러백과 닿는 곳에 있던 공책이 단무지의 물기를 조용히 모두 흡수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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