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다이내믹했던 지난 1년
암호화폐 산업에서 제품 소유자(PO)는 유연성, 결단력, 그리고 인내심이 필수적인 도전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러한 요구사항은 다른 산업에서도 동일하다. 그러나 크립토 업계에서는 다른 산업보다 예상치 못한 시장 장애물과 변화에 대한 대처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멘탈이 필수적이다. 작년 동안 이러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는 보통의 산업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이제 어떠한 상황이 와도 강철 같은 멘탈을 가졌다고 자신할 수 있다.
입사하기 이전에 200억 정도의 투자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진정으로 이루고 싶었던 분야로의 이직을 결심했다. 그러나 PO로서의 기대와 희망으로 새로운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2일 만에 테라 루나 사태가 발생했다. 설마 했지만 예상했던 것과 같이 투자가 취소되었다.
설상가상으로 3주 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인 SEC에서 AML(Anti-Money Laundering) 불법자금세탁방지에 문제가 있다며, 서비스 중단을 요청해 왔다. 명백하게 의심거래는 없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일처리 속도가 상당히 느리기 때문에 2개월 후에 재개가 가능했다. 이것도 서류심사 제출하고 하는 과정이 상당히 복잡하였다.
이러한 좌절에도 불구하고 대표와 팀원들은 한국을 시작으로, 미국, 싱가포르, 영국, 네덜란드 등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투자자들을 만나며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Temasek)을 비롯한 많은 투자자와 미팅을 이어 나아가며 긍정적 신호를 보였다.
우리는 국내 투자자들만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정말로 글로벌 제품을 꿈꾸며 미국 시장을 타깃으로 삼았다. 우리가 도전하고자 하는 분야는 법정화폐로 10,000 가지 종류의 코인을 세상에서 가장 쉽게 거래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기술적인 구현은 이미 완료되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매우 높았다.
미국 고객의 자금을 받기 위해서는 MTL이 필요했지만, 시간적인 측면에서 52개의 주마다 따로 따야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비용과 시간이 들어갔다. 해당 문제를 해결해 주는 가상화폐 업계 1등 페이먼트 회사인 Wyre와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순조롭게 진행되던 중 갑작스러운 Wyre가 파산을 했다는 이메일이 왔다. 담당자들도 어떠한 인사도 없이 그냥 떠나버렸다.
다른 MSB, MTL라이선스가 있는 회사들과 계약을 진행하려 했지만, 통장 잔고 증명에서 받아주기 힘들다고 하였다. 받아준다 해도 그들이 제시하는 가격이 터무니없이 높았다. 가설 검증도 되어있지 않은데 생각보다 큰 리스크를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다행히도 다른 라이선스가 있는 회사를 찾았고, 고객의 수탁까지 해주는 회사를 찾는데에 수십 개의 회사들과 미팅을 하였다. 이때 아마 해당 솔루션을 제공하는 세계의 모든 업체랑 미팅을 한 것 같다. 우리가 큰 회사였다면 이 부분은 아주 쉬웠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모든 코인을 쉽게 거래하기 위해서는 크로스체인(Cross Chain) 프로토콜을 이용해야 한다. 크로스체인은 하나의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다른 블록체인 네트워크로 정보, 암호화폐, NFT 등을 교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USD에서 KRW로 변환하려면 중개인을 거쳐야 하는 것과 같이, 암호화폐도 서로 다른 네트워크 간의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프로토콜이 필요하다.
우리는 많은 크로스체인 API를 조사했지만, 우리가 원하는 기능을 정확히 수행할 수 있는 회사를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싱가포르 출장에서 우리는 구글, 코인베이스 등에서 투자를 받은 유망한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었다. 이후 우리 금고와 연결 작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회사의 대표가 고객의 스테이킹(예치)된 자금을 가지고 도망갔다. 투자자 미팅을 하다가 그 회사랑 우리 거래 API를 연결하고 있는 중이라고 어필하였는데 VC가 그 대표가 도망갔으니 지금 당장 조치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다. 다행히 우리는 아직 테스팅 중이었기 때문에 손해를 보지 않았다. 이후 자체적으로 크로스체인 알고리즘을 만들자는 제안을 하였고 열심히 만들었다. 이 개발 공수시간도 몇 개월을 소모하였다.
스타트업에 겨울이 왔지만 여러 투자자들을 만나면서 제품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딜도 좋게 만들어가고 있는 단계였다. 그러던 중, 전 세계 2위 중앙거래소였던 FTX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중앙거래소를 만들고 있던 우리 팀도 이에 대해 걱정을 하긴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투자자들이 중앙거래소 투자는 보류하겠다고 하였다.
우리는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10,000가지 종류의 코인 중에서 BTC, ETH, LTC 등의 메이저 코인에 대해 OTC 장외거래소들과 연결하여, 고객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가격으로 거래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카운터 파티들과 API 연결을 통해 거래를 진행하고, 시그니처 뱅크를 이용하여 카운터파티들과 거래를 주고받았다.
우리와 거의 모든 디지털 자산 OTC 업체들이 이용하고 있던 Signature Bank가 폐쇄되면서, 당분간 USD 정산이 어려워졌다. 그러나, 사전 대비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다.
USD 정산이 어려워졌지만, 고객들에게 그래도 가장 좋은 가격으로 거래할 수 있도록 USDC를 이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점이 발생했다. USDC 마저도 패깅이 깨져버렸다. 정말 이 정도면 신이 나의 멘탈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오히려 서비스 오픈 직전 스테이블코인 디페깅과 은행 파산이라는 전례 없는 사건을 겪어 시스템 안정성이 더 강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이 시간을 견디지 못해 같이 일을 했던 동료들도 대부분 떠났다. 대부분 능력이 있는 팀원들이기에 각자도생을 하였다. 회사에 있던 PO들도 모두 떠났다. 그러나 나는 PO로써 책임감을 지고 싶었다. 오히려 정말 더 시장에서 인정받는 제품을 만들자 하는 독기를 품었다.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 가상화폐 거래에서의 큰 문제점을 해결하고 있다고 믿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백 개의 프로젝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우리는 단순히 남들이 다하는 일을 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이 문제를 극복하지 못해 그저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속에는 회사가 부도를 내더라도 끝까지 해보자는 각오가 있었다. 중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보는 것이 성공의 열쇠라는 말도 있듯이, 끝까지 해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은 회사가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스타트업에서 PO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제품을 성공시키면 많은 사람들이 존경을 해주며, 시장에서 나의 몸값도 당연히 상승할 것이다. 물론 망해도 나의 책임이 크다.
지난 일 년 동안 많은 멘탈 훈련을 겪은 뒤 드디어 제품이 세상에 나왔다.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출시 시간보다 몇 개월이나 늦었다. 이전에 계획한 단계보다는 한참 뒤처진 MVP가 출시되었지만, 여러 가지 변수로 인해 만족할 만한 제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시 첫날부터 첫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결론은, 이 일이 재미는 있다. 사실 이 과정도 재미가 있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금융 사건이 연관되어 그 문제를 해결하는 재미(?). 나도 참 특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