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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띵 Sep 07. 2024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고 하던데

버려야 하는 건 물건뿐만이 아니다.

 나는 미니멀리즘을 선망하는 맥시멀리스트(Maximalist)다. 또 다르게 말하자면, 맥시멀리스트인 나를 부정하는 미니멀리스트다. 이게 뭔 개소리지? 결론은 맥시멀리스트인 내가 싫다. 심플하게 살고 싶은데 머릿속에서 많은 생각들이 날 괴롭힌다. 수년 전,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라는 책을 읽었다. 당시만 해도 저렇게까지 단순히 살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저렇게 살고 싶다. 어차피 나는 저렇게 살지 못한다는 걸 잘 안다. 그래도 발 끝 정도 따라가면 지금보단 심플한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런데 나도 미니멀(minimal)한 분야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인간관계다. 안 입는 옷, 언젠간 읽을지도 모를 책, 수많은 생각들을 정리하는 건 참 어렵지만 인간관계만큼은 쉽게 정리한다. 어렸을 땐 반대였다. 타인과 싸우고 관계가 틀어지면 며칠 동안 불안하고 신경 쓰였다. 어떻게 하면 깨진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하루빨리 화해하며 불편한 기류를 끝내고 싶었다. 어떤 고난과 역경이 와도 극복하려고 했다. 그러고 나면 더욱 깊은 관계가 된다고 믿었다.


 저랬던 과거가 부질없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땐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니까. 한 번 맺어진 인연은 무엇보다 소중했고 그 소중함을 잃기 싫었다. 맞지 않는 조각을 어떻게든 끼워 맞추려 노력했다. 왜냐하면, 우린 친구고 연인이고 가족이니까.


 성인이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동그라미였던 나는 세모로 변해있었다. 내 뾰족함에 찔려 상처를 입는 사람들이 종종 생겼다. 상대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이면 급하게 응급 처지를 해줬다. 그리고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외면하고 조용히 상대에게서 멀어졌다. 그게 서로를 위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pixabay.com)


 사실 이러한 변화는 내 이기적인 성격도 한 몫한다. 가뜩이나 생각이 많아 머리가 아픈데 인간관계까지 힘들어지는 건 에너지 한도 초과다. 한때 좋은 관계였어도 미묘하게 달라진 감정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 확인하고 싶지 않다. 이제는 안 맞는 조각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관계가 싫다.


 그렇게 정리하다 보니 내 주변에는 몇 명 남지 않았다. 그중 한 친구가 "너 이러다가 나중에 결혼식 하객들은 누가 오냐?"며 걱정 섞인 농담을 했다. 그러게? 큰 일이다. 그 생각을 못했다.




 정리 전문가 '곤도 마리에'는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고 한다. 지금까지 나는 미니멀해진 인간관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내용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사람을 정리한다는 말도 좀 이상하다. 음... 제목을 다시 써야 하나?


 집안 곳곳에 숨겨진 입을지 말지 고민 중인 티셔츠, 나중에 쓸지도 몰라 처박아둔 잡동사니들은 더 이상 설레지 않는다. 지금 당장 버려도 아무 일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쌓여가는 물건마저도 내 인간관계처럼 대하면 되니까. 그냥 외면한 채 시야에서 멀어지면 괜찮아진다. 결국 사람이든 물건이든 지랄 맞은 내 성격과 맞지 않다면 본능적으로 피했던 거였다. 맥시멀리스트인 내가 인간관계만큼은 미니멀하다는 말, 취소다. 그저 내 행동을 합리화하려 했을 뿐.


 내가 이러는 건 유전인가 보다. 우리 엄마도 (아마) 맥시멀리스트다. 옷장 깊숙이 쌓인 옷, 찬장 구석에 놓여있는 그릇들은 언젠간 입고 쓸 거라며 버리질 않는다. 타지 생활 8년 차, 명절을 맞아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그 짐들은 먼지만 쌓여간 채 그 자리를 지켰다.


엄마, 혹시 엄마도 외면하고 멀어지는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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