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5성급 호텔 90층으로 족발을 시켰다.

시그니엘 서울에서의 하룻밤

by 승띵
여기가 하룻밤에 70만 원이라고?



평소 미세먼지 확인용으로 바라보던 잠실 롯데월드타워. 오늘은 시그니엘 호텔 입구를 찾아 나섰다. 쇼핑할 때만 와봤던 곳이라 호텔 입구 찾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어찌저찌 눈치껏 찾아내 호텔 로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그냥 타려고 했는데 정장을 갖춰 입은 풍채 좋은 직원 두 명이 내 양 옆에서 문을 열어줬다. 괜히 머쓱해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집에서 나오기 전부터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뭘 챙겨야 할지 계속 고민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호텔에서 하룻밤 자는 일이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숙박비 저렴한 동남아 여행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이 가격대 호텔을 국내에서 내 집 놔두고 묵는다는 건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귀인 덕분에 누리는 호사였기에 더욱 감사한 마음이 컸다.



79층 로비에 도착하니 라운지에서 샴페인과 디저트가 무료로 제공되고 있었다. 평일 오후였는데도 사람들이 꽤 있었다. 어떤 사람들이 오는 걸까? 주위를 둘러봤다. 사실 겉모습만으로는 큰 특징이 없었다. 굳이 꼽자면 다들 깔끔한 차림이었달까. 그 순간 괜히 창가에 비친 내 모습을 의식했다.




이번엔 수영장으로 향했다. 만약 여기가 해외였다면 서툰 수영 실력이나 뱃살 따위는 신경도 안 썼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대한민국, 그것도 5성급 호텔이 주는 압박감(?)에 남들의 시선이 더욱 신경 쓰였다. 사실 그럴 필요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은 결국 내가 만드는 거였다.


수영을 마치고 객실로 올라오니 배가 고파졌다. 여기까지 왔는데 디너 뷔페 먹어볼까 고민했지만 1인 22만 원이라는 가격을 보자마자 단숨에 생각이 접혔다. 이 공간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경계가 명확히 그어지는 기분이었다.





결국 나는 배달의 민족을 열어 족발을 주문했다. 배달 도착 시간에 맞춰 1층으로 내려가면서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5성급 호텔, 배달의 민족, 족발...

나열된 조합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럼 뭐가 어울리지? 스테이크? 와인? 흠, 나는 홈플러스에서 할인 행사할 때 사 먹는 호주산 소고기가 맛있던데... 아, 보리 먹은 돼지 삼겹살도.



객실로 돌아와 서울 시티뷰를 바라보며 족발을 먹었다. 최고급 야경 사이로 퍼지는 족발 냄새는 어울리는 듯하면서도 내 기분을 묘하게 만들었다. 5성급 호텔에서 보내는 하루는 분명 좋았다. 하지만 이게 <완전한 내 것이 아닌 좋음>이라는 감정이 느껴졌다.


다음 날 아침, 체크아웃을 하고 집 근처 설렁탕집에 갔다. 어제는 70만 원짜리 호텔이었는데, 오늘은 7천 원도 안 하는 찐만두를 시킬까 말까 고민하는 내 모습이 웃겼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 겨울 공기는 차가웠지만 손에 든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그리 차갑지 않았다. 차갑지만 차가운 게 괜찮은 순간들, 차갑지만 괜찮은 일상. 아마 나는 그런 일상을 좋아하며 사는 사람인가 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