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동네에서 낯선 나를 마주했다.

by 승띵

양재동은 나의 새로운 보금자리다. 강남 근처라 고층 빌딩뿐일 줄 알았지만 의외로 조용했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여기서 조금만 걸어가면 강남역이 나오는데 이토록 조용하고 잔잔한 풍경이 펼쳐지는 게 신기했다. 마치 경복궁과 고층 빌딩이 어우러진 모습을 보고 감탄하는 외국인처럼 말이다.


평일에는 근처 회사들이 많아 직장인들로 활기찬 동네 분위기가 형성되지만 주말에는 매우 한적해진다. 24시간 창문을 열어놔도 괜찮았다. 지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새 지저귀는 소리, 때때로 들려오는 배달 오토바이 소리마저도 백색소음처럼 느껴졌다.


전에 살던 곳은 창문을 열면 너무 시끄러웠다. 기필코 다음번 이사 갈 집은 지하철 역과 멀더라도 조용한 동네에서 살기로 다짐했었다. 그런 의미에서 양재동은 모든 것을 충족했다.




다들 잘 알겠지만 사람들은 의외로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내가 어느 동네에서 왔는지,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괜히 낯선 동네를 걸을 때마다 마주치는 사람들이 내 사정을 아는 것 같았다. "쟤 전세 사기 당했다며?"라고 수군대는 헛된 상상에 스스로 갇혀 있었다. 새로운 동네에서만큼은 전세 사기 당한 가여운 '나'로 살아가는 건 그만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자의식 과잉을 멈추고 운동화 끈을 조여맸다. 그리고 양재천을 걷고 뛰기 시작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지나쳤고 그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 보였다. 나는 아직 괜찮지 않은데, 세상엔 괜찮아 보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렇게 반복된 날들을 보내며 살아갔다. 굳어 있던 몸을 움직이니 무너졌던 마음도 슬슬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어쩌면 '회복'이라는 것도 이렇게 시작되는 게 아닐까? 완벽하지 않아도 그저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


매일 걷지 않아도 괜찮다. 낯선 공간에서 낯선 나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다시 살아보겠다는 감각이 깨어났으니까. 그런 루틴이 있다는 사실이 내겐 중요했다. 아직 회복은 끝나지 않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분명 다시 살아가는 길 위에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