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사람들과 멀어져도 괜찮아

친구와 거리두기

by 승띵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전세사기 피해자가 되고 한동안 예민했던 시절이 있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원치 않게 상처받고 씁쓸해지는 순간들이 생겼다. 그중 지금도 기억에 남은 장면들을 꺼내본다.


1. 유일한 자산은 압구정 아파트


전 직장에서 인연이 닿아 친하게 지내는 형이 있다. 지금도 자주 연락하고 여행도 다닐 만큼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이다. 어느 평일 저녁, 논현동의 태국 음식점에서 오랜만에 만났다. 근황을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현실적인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러다 형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집이 뭐 그렇게 여유 있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도 딱히 해줄 게 없대.
그냥 지금 살고 있는 압구정 아파트? 그거 하나야.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압구정 아파트가 유일한 자산이라고?’ 나는 지금 당장 살고 있는 원룸에서도 쫓겨날 판인데. 2025년 7월 기준, 네이버 부동산 시세로 60억에서 80억을 오가는 집이 그에겐 그저 하나뿐인 자산이었다. 억지로 웃으며 "근데 그 유일한 아파트가 웬만한 아파트는 아니지 않아?"하고 넘겼지만 마음 한구석이 씁쓸했다.


저런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형이 부러웠다. 내 처지가 초라하게 느껴졌고 괜히 뒤처진 기분이 들었다. 그 감정은 단순한 씁쓸함을 넘어 외로움으로 번졌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드는 나 자신이 더 싫었던 시기였다.



2. 전세사기를 왜 나라에서 도와줘야 해?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 사이에서 전세사기 이야기가 나왔다. "야, 인천 빌라왕 사건 큰일 났더라" "그니까. 무서워서 전세 어떻게 살아?" 그러던 중, 친구 한 명이 이런 얘기를 했다.


근데 전세사기 당한 사람들을 왜 나라가 도와줘야 해?


지금도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는 부분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선구제 후회수'를 외쳤고, 반대편에서는 내 친구처럼 의문을 던지기도 했다. 나는 그 의견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런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겐 상처로 남는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한다.


그 외에도 비슷한 일들이 몇 번 더 있었다. 그러다 보니 예전처럼 아무 말이나 쉽게 털어놓기가 어려웠다. 나도 모르게 선을 긋고 거리를 두게 됐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고민했다. '지금 내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놔도 괜찮을까?' 하지만 결국 말하지 않았다. 말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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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간관계를 좁고 깊게 이어가는 편이다. 그래서 관계 하나가 흔들리면 일상 전체가 출렁이기도 한다. 가끔은 생각한다. 내가 사람들을 밀어낸 걸까, 아니면 세상이 나를 밀어낸 걸까. '거리를 둔다'는 건 관계를 끊는 게 아니라 나를 지키는 방식이었다. 언젠가는 다시 다가가기 위해 잠시 멀리서 숨을 고르던 시간. 지금 되돌아보니 외면이 아닌 회복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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