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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승욱 Oct 28. 2020

주는 게 기쁨이야

엄마가 내게 했던 그 말의 뜻을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내 어린 시절, 우리 가정은 형편이 넉넉치 못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는 교통사고를 당하셨고 그 후로 한 쪽 팔을 못 쓰신다. 아버지는 사고 후에도 누구보다 부지런히 사셨지만, 가계 경제를 이끌어 가야했던 것은 어쩔 수 없이 엄마일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공장 일을 다니셨다. 아침 7시 35분에 회사 셔틀버스를 타고 나가셨고, 집에 돌아오시는 시간은 이르면 저녁 6시 30분, 야근을 하시면 밤 9시 30분이었다. 야근은 잦았다.


힘든 상황에서도 엄마는 누나와 나에게 부족함 없이 채워주셨다. 옷은 늘 단정하게 입혀주셨고, 가능하면 프로스펙스나 아식스 같은 메이커를 사다 입혀 주셨다. 그렇게 대학교까지 다녔다. 한 선배는 내가 지방에서 올라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짐짓 놀라워 했다. 그렇다고 내가 사치를 부리며 다녔거나 돈을 쉽게 썼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집안 형편이 넉넉치 않았던 것을 알았기에 용돈 달라는 말 한 마디 해본 적이 없던 나였다. 부모님 기억은 좀 다를 수 있겠지만, 어쨌든 내 기억에서는 그렇다.


사회생활을 앞두고 있던 시기. 내가 서울로 올라 오기 전, 엄마는 나에게 옷이나 필요한 것들을 사주고 싶어하셨다. 옷에 큰 욕심이 없고, 쓸모 이상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나는 딱 필요한 만큼만 골랐다. 그래도 겨울 옷이라 값이 꽤 비쌌다. 돌아오는 길에 엄마에게 물었다. “돈 너무 많이 쓴거 아니야?” 엄마는 대답했다. “너 사주는 게 엄마 기쁨이야.”


엄마는 그 뒤로도 종종 “더 못 해줘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시곤 하셨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이만큼 해준 게 어디 보통 일인가. 할 수 있는 것 보다 더 하고,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주시고는 왜 그런 말을 하시는지.


이제 나에게도 아들이 생겼다. 마트에 장을 보러가서 장난감 코너가 보이면 아들에게 다 사주고 싶다. 아직 어려서 가지고 놀 수도 없는 장난감까지 그냥 다 사주고 싶다. 앞으로 아이가 뭘 사달라고 할지, 뭘 하고싶다고 할 지 모르겠지만 그게 뭐가 되었든 나쁜 일만 아니라면 다 해주고만 싶다. 알아 듣지도 못하는 아기한테 벌써 이런 말을 몇번이나 했다. “아빠가 다 하게 해줄게!” 왠지 그렇게 해주지 못하면 아이한테 미안할 것만 같다.


드림이가 커서 무엇을 하고 싶어할지 아직 짐작도 되지 않는다. 소리에 예민한 모습을 보이고,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아 아내와 나는 "음악을 하려나. 음악 한다고 하면 어떡하지." 하고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것 참 멋진 일이다. 이왕이면 내가 배워보고 싶었지만 차마 못했던 피아노를 배우면 어떨까 생각도 해본다. 물론 본인이 하고 싶어야 하는 거지만. 그래도 혼자 각오만 미리 다진다. 예체능은 돈이 만만치 않게 들겠지만, 드림이가 뭐든 하고 싶어한다면..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지만 혼자 또 즐거운 큰소리를 친다. “뭐가 됐든 아빠가 새벽에 투잡을 뛰어서라도 시켜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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