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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승욱 Oct 28. 2020

입덧의 모든 것

아내가 내게 처음으로 부탁이란 것을 했다. 만난 지 10년만에!


임신 5~6주차가 되면 입덧을 시작한다. 이 후 8주~11주 사이에 절정에 달하고, 그 뒤로는 점차 나아진다. 라고 책에서 봤다. 기준으로 알아두면 좋긴 하겠지만, 여기서 어긋난다고 해서 다 비정상은 아니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아내도 입덧을 하긴 했지만, 종종 입덧이라기 보다는 먹어야 하는 ‘먹덧’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11주가 지나서 입덧이 조금 더 심해지기도 했다.


장모님께서 입덧을 심하게 하셨다고 해서 아내가 걱정을 좀 했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심하면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는 열달 내내 배멀미를 하는 기분으로 지낸다는데, 생각만 해도 지독한 고통이다. 다행히도 아내의 입덧은 생각만큼 심하지 않았다. 임신 기간을 돌이켜 보면, 꽤 무난히 지나갔다.


무난히 지나가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조금 아쉽기도 했다. 예전에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임신한 아내가 새벽에 “이거 먹고 싶어” 라고 주문하면, 남편이 밖을 쏘다니며 비슷한 음식이라도 구해오는 장면들이 있었다. 나도 내심 이런 추억하나는 있었으면 했는데, 아내는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나로서는 편하게 지나가서 다행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쉽기도한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하고 있다. (아내의 입덧으로 같이 고생한 남편분이 이 글을 보신다면, 내가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다고 욕할지도 모르겠지만)


아, 아내가 요구한 것이 딱 하나 있었다.


외식하러 나간 어느 날, 갑자기 입덧이 생겨서 아내는 부페에 와 놓고도 도통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그리고는 집에 와서 대뜸 “라면 끓여줘.” 라고 말했다. 이건 아내가 나에게 요구한 첫 부탁이었다. 임신기간 뿐만 아니라, 연애 8년 후 결혼 2년차에 들어설 동안, 그러니까 10년을 만나면서 뭘 해달라고 요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아내의 첫 부탁. 그건 “라면 끓여줘” 였다. 아, 이 순간을 위해 나는 5살 때부터 라면을 끓여먹기 시작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내는 내가 끓인 라면을 너무나도 맛있게 먹어주었다. 다른 건 몰라도 라면은 잘 끓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아기를 낳고 아내가 말하길 “내가 밤에 뭐 사오라고 했는데, 남편 사고나면 어떡해. 걱정되서 뭐 사오라고 못했어.” 라고 했다.

**입덧에 대한 통설들이 많이 있다. ‘엄마가 입덧 심하게 하면 딸도 입덧 심하게 한다.’ 라거나, ‘나이가 많으면 입덧이 심하다.’ 라거나, ‘성별에 따라 다르다.’라거나 등등. 어디까지나 근거없는 소리일 뿐이다. 첫째 때는 입덧을 안하고, 둘째 때는 입덧을 하는  아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도 하며, 나이가 어려도 입덧을 심하게 하는  산모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입덧은 복불복이다. 이것도 근거 없는 나의 뇌피셜이긴 하지만, 다양한 사례를 검토해 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어떤 엄마들은 임신으로 힘든 자기 마음을 알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굳이 남편에게 “이거 사와라, 저거 사와라” 하기도 한다고 한다. 아내의 힘듦을 먼저 알아주고 보듬어주면서, 힘든 시기를 함께 견뎌나가는 것이 입덧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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