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의 기쁨과 슬픔
"마케팅은 매일 변하는 중력을 다루는 일 같다."
닐 호인(구글의 최고 데이터분석 전략가, Chief Measurement Strategist)이 롱블랙에서 했던 인터뷰 내용을 아직 잊지 못합니다.
닐이 구글 엔지니어 동료에게 농담삼아 말했습니다.
"나는 고작 사람들이 광고를 클릭하게 만드는 일을 한다."
구글 동료는 답했습니다.
“마케터들의 일이 더 어려운 거야.”
이 동료는 천체물리학박사까지 한 사람인데요. 로켓을 만드는 건 상수로 한다고 해요. 물론 어렵긴 하지만 상수를 기반으로 계산을 하면 된다고요. 마케팅은 그런 게 없으니 매일 변하는 중력을 다루는 일처럼 어렵게 보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걸 진지하게 팩트로 따지시는 분은 안 계셨으면 합니다. 혹시 너무 따지고 싶으시더라도... 그저 저 대단한 구글의 엔지니어가, 마케팅의 어려움을 알아주고 존중해주는 것에 위안 얻는 마케터의 마음을 모르는 척 눈감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만난 동료 마케터 중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마케터는 없습니다. 항상 숫자를 보거나 트렌드를 주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제와 다름없는 소재, 다름없는 캠페인을 돌려도 결과가 다릅니다. 어제가 뭔가요. 오전 다르고 점심 다르고 오후 다릅니다. 실시간으로 요동치는 마케팅 성과를 지켜보며 쫄리는 마음으로 원인을 추정하고, 대응을 준비합니다.
일희일비가 아니라, 시희시비, 분희분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그들에게 일희일비하지 말자는 조언은 씨알도 먹히지 않더군요. 감정이 그렇게 쉽게 통제되는 것도 아니고요. 다만 일희일비를 '잘' 할 필요는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반응이 아니라 대응이니까요. 대응 가능한 일인지 아닌지 판단하고, 리소스와 임팩트를 고려한 의사결정을 내리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그냥 받아들이는 게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일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실시간으로 달라지는 고객의 반응과 마케팅 성과. 그 성과의 기복을 줄이고, 최대한 균등하게 유지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케터들은 쉼 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우상향을 만들어 내기 위해, 때로는 하방선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노력의 기미가 조금이라도 나타나면 안도하고, 몇 분 뒤에 다시 효율이 떨어진다 싶으면 좌절하는 게 마케터의 일상입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는 조금 이상한(?) 사람들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슬랙에서 말수가 없다고 노는 게 아닙니다. 사무실 출근 빈도가 낮고 재택근무 많이 한다고 농땡이 칠 수도 없습니다. 잠깐 게으르면 지표에서 티가 나 변명할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게 마케터 당사자입니다.
매일 변하는 중력을 다루며 일희일비하는 마케팅 동료분들께, 그래도 "비"보다는 "희"가 좀 더 많은 일상이 많아지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