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2017.10.14 (토)

by 이승환

카트만두에서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우리는 각자 다른 비행기로 귀국할 것이다. 여행사에는 각각의 이륙시간에 맞춰 차량을 요청해두었다. 숙소에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한 뒤 짐을 꾸려 미리 숙소 마당에 내어 놓았다. 사진을 몇 장 찍으며 노닥거리고 있으니 곧 오전 10시경, 율을 태울 차량이 도착했다. 율은 그대로 공항으로 향했고, 남은 셋은 택시를 잡아타고 타멜 거리로 향했다. 찬과 혜정은 남은 세 시간 동안 나와 함께 쇼핑을 마저 하고 점심을 먹을 것이다.



먼저 여행사에 들러 우리는 이곳에서 출발할 테니 시간 맞춰 차를 준비해달라고 얘기를 해두고, 타멜 거리로 나섰다. 우린 곧바로 티셔츠 가게로 갔다. 간밤에 내가 여러 장을 샀던 핸드 메이드 티셔츠를 모두가 탐냈던 터라, 몇 집을 돌며 구경하고 흥정해 좋은 가격에 티셔츠를 몇 장 더 샀다.


대략 정오쯤, 우린 히말라야에서 내려온 날 저녁을 먹었던 카트만두 스테이크 하우스를 다시 찾았다. 전날 저녁에 갔던 로드 하우스 카페도 훌륭했지만, 가성비로는 카트만두 하우스가 단연 월등했다. 들어가니 거의 개점 준비를 끝내가던 참이라 앉아서 5분만 기다리라고 한다. 곧 첫날 우리에게 재잘거리며 말을 붙였던 종업원이 수다스럽게 말을 걸며 주문을 받았다. 그렇게 우린 다시 한 번, 일인분에 단돈 만원도 하지 않는 저렴한 가격에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최고급 스테이크를 즐겼다. 물론 맥주도 한잔 했다.



훌륭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율이 카톡을 보내왔다. 시간이 남아서 카트만두 공항 라운지에 들어왔는데 제법 괜찮다는 내용이었다. 음식 사진을 찍어 보내길래 스테이크 사진으로 응수해줬다. 그리고 난 찬과 혜정을 보낸 뒤 혼자 타멜 거리를 방황하느니, 차라리 공항에 일찍 가서 라운지에 들어가 있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몇 시간 더 돌아다녀봐야 딱히 더 구경하고 싶은 것도 없고, 계속 돌아다니자니 또 달러를 루피로 환전하고 루피를 다 써버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차라리 아늑한 라운지에 가서 발 뻗고 쉬면서 책 읽고 술이나 마시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식당을 나와 회사 사람들에게 선물할 차를 조금 산 뒤, 나는 혜정이와 찬과 같은 차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카트만두 트리부반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대략 오후 2시경. 찬과 혜정은 곧바로 체크인을 했다. 내가 탈 비행기는 오후 11시 편이라 아직 체크인 부스가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곧 깨달았다. 찬과 혜정을 먼저 보내고 타멜 거리에 남아서 시간을 보냈어야 한다는 사실을.


공항 라운지는 2층에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앞에는 군인들이 지켜서고 앉아 탑승권(Boarding Pass)을 확인했다. 찬과 혜정은 방금 체크인 부스에서 발급해준 탑승권을 보여주고 통과했는데, 나는 탑승권이 없었다. 인터넷에서 출력해둔 비행기 예매표를 보여주니 이걸로는 안 된단다. 사정해봐도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난 무력하게 서서 에스컬레이터 끝 2층의 찬과 혜정을 올려다보며, 허무하게 손을 흔들 수밖에 없었다. 먼저 가, 한국에 돌아가서 보자...


이때 시간이 대략 오후 2시 30분경이었다. 내가 탈 비행기는 오후 11시 편이다. 공항 직원들에게 사정 설명을 하니 체크인을 하기 전까지는 달리 방법이 없으며, 내가 탈 비행기의 체크인 부스는 오후 8시는 되어야 열린다고 한다. 장장 다섯 시간 반을 대합실에서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이곳 카트만두 공항 대합실은 정말 뭐가 아무것도 없었다. 루클라 공항이 한국 지방 소도시의 시외버스터미널이라면, 카트만두 트리부반 공항은 기차역 쯤이 될 것이다. 편의시설이라고는 과자와 음료수를 파는 매점 몇 개가 전부였다.


두 개 합쳐서 무게 20Kg이 넘는 배낭 두 개를 실은 카트를 끌고 하염없이 서성였다. 어디 쉴 만한 카페나 레스토랑이라도 없을까 싶어 공항 밖을 나섰다 찌는듯한 무더위와 오염된 공기, 호객꾼 들을 피해 다시 공항 안으로 도망 왔다. 택시를 시내로 타고 나갔다 들어오는 것도 너무 번거로운 일이 될 것 같았다.


난 곧 방황을 멈추고, 지방 소도시 기차역의 간이의자처럼 생긴 철제 의자에 앉아 전자책을 꺼냈다. 그리고 히말라야에서 읽다 만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기 시작했다. 최소한의 공간만 있다면야 시간 보내기엔 독서만 한 것이 없다. 한국에서 다섯 시간 동안 온전히 책 읽기에 써본 적이 대체 언제였단 말인가, 이 시간을 즐기자,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사피엔스를 읽어 나갔다.


그렇게 다섯 시간이 지나 대략 일곱 시 반쯤, 전자책을 손에 들고 카트를 밀어 체크인 부스 바로 앞에 자리를 잡고 섰다. 내가 줄을 서자 눈치 빠른 독일인 가족이 곧바로 내 뒤에 와서 줄을 서고, 금세 사람들이 뒤로 붙어 줄이 주욱 늘어섰다. 역시 한국사람들이 이런데선 참 돋보이게 유난을 떤다고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줄 선지 약 삼십 분 뒤 체크인이 시작되었다. 난 가장 먼저 체크인을 하고 2층으로 올라 곧바로 라운지에 들어갔다.


라운지에 들어간 시간은 대략 오후 8시 30분, 탑승 전까지 대략 두 시간의 여유가 있다. 다섯 시간이나 꽤나 집중해서 책을 읽은 터라 이젠 그냥 늘어지고 싶었다. 음식과 술을 가져다 먹었다. 트리부반 공항 라운지는 카트만두의 5성급 호텔이 운영한다고 한다. 라운지의 퀄리티는 그래 봐야 서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미 공항 밖의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음식은 몇 가지 되진 않지만 백인들 입맛에 잘 맞게 만들었고, 맥주와 위스키도 여러 종 갖추고 있었다. 소파에 몸을 파묻고 맥주 두 캔과 진 토닉 한 잔을 마셨다. 와이파이를 잡고 한국 소식을 들여다보니 역시나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았고 주식은 조금 더 올라 있었다.


곧 탑승시간이 되었다. 내가 탈 비행기는 조금 연착되어 11시 40분에 출발했다. 비행기에서 맥주 한 캔을 더 마시고 기내식도 먹고 잠을 자다 깨니 어느덧 광저우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곧바로 라운지를 향했다. 환승 시간은 약 두 시간 반 정도, 라운지에 들어가 샤워부터 한 뒤 신라면, 맥주, 딤섬, 햄 등을 먹으며 편히 휴식을 취했다.




다시 인천행 비행기를 탄지 약 세 시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하늘 위에서 하룻밤이 지나 한국은 일요일 점심이었다. 집으로 오는 길, 공항 리무진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늘상 보던 그대로 하나도 특별하고 새로울 것 없는 일상이었다. 그래, 돌아왔구나. 내일은 출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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