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11 (수)
오전 5시 30경, 머리를 짓누르는 숙취와 함께 눈을 떴다. 술이 좀 덜 깬 상태로 화장실을 다녀와 다시 침낭 속을 파고들었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하품을 하며 걸어 나와 숙소 앞을 서성거렸다. 바닥이 젖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술에 취해 들어오는 길에도 부슬비가 내렸던 것 같다. 마침 찬도 어슬렁거리며 걸어 나오더니 담배를 한대 꺼내 문다. 곧 식당 문이 열리자 냉큼 들어가서 아침을 주문했다.
곧 아침 일찍 길을 나서는 트레커들이 채비를 마치고 아침을 먹으러 들어와, 식당 안은 금방 북적거렸다. 찬과 둘이 토스트, 계란, 커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 율이 식당으로 들어온다. 표정을 보니 이 친구도 술이 덜 깼다. 자리에 앉자 커피부터 한 잔 따라주고 메뉴판을 건넸다. 혜정이는 숙취가 심해서 계속 누워있는 중이란다.
이날 일정은 오전에 남체에서 좀 더 밍기적대다 점심께 출발해 팍딩까지 내려가는 것이다. 나는 율이 아침을 먹고 있는 사이 상점들이 문을 열었는지 확인하러 다녀왔다. 아직 여덟 시가 채 되지 않았지만 상점들은 이미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우린 여덟 시부터 약 두 시간 정도 자유시간을 보낸 뒤 열 시에 베이커리에 모여 군것질을 하기로 했다. 난 비 내린 남체의 골목길을 혼자 걸으며 구석구석을 구경했다.
우리가 찾은 베이커리는 어제 1차를 마신 술집의 건너편 2층이었다. 백인들 취향의 빵과 음료를 다양하게 갖추고 있었다. 햄버거, 피자, 샌드위치 등을 주문했는데 서울에서 먹던 것보다 훌륭했다. 햄버거의 빵과 패티에 감동하며 감자튀김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비웠다. 점심은 따로 먹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다 먹고 수다를 좀 떨었는데 아직 시간이 열한 시밖에 되지 않았다. 우린 열두 시에 숙소에서 만나 출발하기로 하고 다시 흩어졌다. 나는 딱히 더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바로 숙소로 돌아갔다. 아침에 나올 때 이미 체크아웃을 한 터라 식당에 앉아 기다려야 했다. 옴마니받메홈 이라는 중독성 강한 음악을 들으며 앉아 멍을 때렸다. 살짝 졸았던 것 같다.
곧 일행들이 돌아왔다. 이제 남체를 떠날 시간이다. 그 사이 정이라도 든 것 같다. 혹시 나중에 또 올 일이 있을까. 아마 다시 히말라야에 오게 된다면 EBC가 아닌 다른 코스를 택할 것이다. 남체를 다시 올 일은 없거나, 혹시 오게 되더라도 한번 정도나 가능할지 모를 일이다. 마을 입구로 내려가는데 여기저기 공사가 한창이다. 아마 이삼 년만 더 지나도 이 마을은 몰라보게 달라질 것이다. 때 묻지 않은 히말라야와 속세의 달콤함을 모순처럼 두루 품은 산골마을 남체. 이 마을에게 상업화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내 추억 속의 모습이 변치 않길 바라는 건 부질없다. 히말라야에서 가장 핫한 마을은 매일이 항상 새로워야 하지 않겠는가. 항상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길, 그래서 더 많은 사람에게 마르지 않는 영감을 불어넣어주길 바란다. 안녕.
내려가는 길은 마치 주말의 북한산에 온 것 마냥 북적거렸다. 북한산 풍경과 다른 것이 있다면 사람들의 국적이 다양하다는 것, 그리고 사람 무리 사이로 짐승 무리들이 짐을 실어 나른다는 정도. 두 시간 남짓을 걷자 트레킹 이틀 차에 묵었던 조르살레에 도착했다. 전에 묵었던 롯지를 찾아가 레몬 진저 티를 미디움 팟으로 주문해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차를 다 마신 뒤, 올라갈 때 맡겨뒀던 짐을 찾고 다시 출발했다. 한 삼십여분을 걷고 약간의 오르막을 걷자 국립공원 관리사무소가 나온다. 올라갈 때 확인증을 받았던 곳이다. 일행들보다 먼저 도착해 기웃거리고 서있으니 군인이 다가와서 허가증(Permit)을 보여달라고 한다. 난 뒤에 오는 가이드가 가지고 있으니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잠시 후 일행들과 시리가 뒤따라 도착했고, 시리는 우리 네 명의 허가증을 꺼내 확인해줬다.
내려가는 길은 무척이나 지루했다. 한국에서 산을 다닐 땐 아무리 험하고 높은 산도 하산을 반나절 이상 해본 적이 없었다. 무려 나흘 동안의 하산이란 건 개념조차 가져본 적이 없는 일이다. 팍딩으로 가는 길은 완만한 평지와 내리막의 연속이었지만, 걸어도 걸어도 하산이 끝나지 않는다는 지루함이 나를 매우 지치게 했다.
오후 다섯 시 이십 분경, 구름 사이로 저녁노을이 보이려 할 즈음 팍딩에 도착했다. 시리는 첫날 묵었던 숙소로 우리를 안내했다. 시리와 친해 보이는 쉐르파 사장이 능글능글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를 맞는다. 식사를 주문하고 샤워를 한 뒤 바로 저녁을 먹었다.
저녁으로 주문한 야크 스테이크는 남체에서 먹은 스테이크에 비하면 격이 한참 떨어졌다. 좋은 식재료를 쓰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물값을 포함해 가격이 전반적으로 비싼 편이다. 이 집 사장은 능글능글한 웃음 뒤로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이문을 더 남길지를 항상 궁리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혜정이에 따르면, 포터분들이 식당에 들어오려 하자 사장이 밖으로 내쫓았다고 한다. 기분이 불쾌해진 우리는 식사만 마치고 식당을 나왔다. 술은 안 팔아줄 것이다.
이미 들어오는 길에 봐 둔 술집이 있었다. 인테리어가 세련되고 실내 공간도 넓은 곳이었다. 벽면에는 밥 말리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있고 입구 옆에는 포켓볼 다이도 있다. 가게를 그대로 들어다 이태원 어딘가에 박아 넣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침 손님이 없어서 우리끼리 포켓볼도 치고 아늑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린 지난밤 술값을 너무 많이 썼음을 자성하며, 적당히 싼 술을 찾아 메뉴판을 뒤졌다. 갑론을박 끝에 네팔 산 와인을 주문했다.
네팔 산 와인은 실패였다. 달착지근하지만 풍미는 떨어지고 다음 날 머리가 많이 아플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꿋꿋이 한 병을 다 비운 뒤, 결국 칠레 산 와인과 맥주를 추가로 주문했다. 술은 남겨서도 아니 되고 부족해서도 아니 된다. 안주로는 파코다를 주문했는데 옆의 가정집에 가서 요리를 해 내온다. 너무 짜서 몇 점 먹지 못하고 반 이상을 남겼다. 혹시 연세 지긋하신 분이 요리를 해서 간을 못 맞추신 건가.
술이 얼근히 오르는데 키가 훤칠한 백인 일행이 가게에 들어왔다. 가게에 손님이라고는 우리와 그들밖에 없던 터라, 옆 테이블에 앉은 그들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몇 마디를 섞었다. 큰 키로 미루어 짐작은 했지만 독일인 일행이었다. 올라가는 길이라고 한다. 우린 다 찍고 내려오는 길이라고 하니까 경외의 눈빛으로 우릴 바라본다. 또 우린 맥주를 매우 좋아한다고 하니까 옥토버페스트에 온 적이 있냐고 묻는다. 정말 가고 싶지만 아직 못 가봤다고, 언제가 꼭 갈 거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우린 그들에게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을 기원해줬다.
들어오는 길에 동네 구멍가게에 들러 맥주 네 캔을 샀다. 쉐르파 비어 500ml 한 캔의 구멍가게 가격은 400루피, 남체 술집의 반값이었다. 여자애들 방으로 건너가 맥주 한 캔씩을 더 비우며 진하고 묵직한 얘기를 쏟아냈다. 아마 이 여행이 아니었다면 평생 이들과 하지 않았을 법한 얘기들을.
얼근히 취한채로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잠들기 전 어렴풋이 생각을 했다. '이제 내일이면 걷는 건 끝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