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10 (화)
여느 때처럼 아침 여섯 시쯤 눈을 떠서 아침을 먹고 출발할 채비를 했다. 숙소를 나선 시간은 대략 7시 40분경. 드디어 남체에 들어가는 날이다. 점심 전까지 들어가려면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간밤을 묵은 포르체 텡가는 포르체 마을 아랫동네 계곡에 자리하고 있다. 포르체에 비해 고도가 약 이백 미터 낮다(3,670 m). 그런데 여기서 남체로 가는 길은 다시 계곡 위로 올라 능선을 이어가야 한다. 아침에 올라야 할 계곡 윗동네 이름은 몽라(3,970m).
아침부터 진땀을 뺐다. 대략 한 시간 정도 씩씩대며 가파른 길을 오르니 저 앞에 몽라의 롯지가 얼굴을 내민다. 작은 휴게소 내지 전망대 마냥 아담한 마을이었다. 우린 전망 좋은 자리에 앉아 진저 레몬티를 미디움 팟으로 주문했다. 차를 마시며 간밤에 덜 마른 빨래도 말리고 사진도 찍으며 꽤 오랫동안 노닥거렸다. 기력을 완전히 회복한 일행들은 사진 찍기 좋은 장소를 찾아다니며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율은 동네 아이들에게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 나눠주기도 했다. 이제 제법 여유가 느껴진다.
몽라에서 남체로 가는 길은 수월했다. 능선길을 따라 계속 내리막이 이어졌다. 가는 길에 한 번씩 뒤를 돌아보니 설산들이 점점 멀어져 가는 게 느껴져 조금 서운한 마음마저 들었다.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다. 혜정이가 사진 찍는데 한 눈이 팔려 길을 잘못 들어 버린 것이다. 많이 잘못 든 것은 아니고, 그래 봐야 직선거리로 한 오십 미터 정도 위에 있는 길이었다. 윗마을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걷던 길들이 약 70도 이상 경사진 능선에 나 있었다는 것이다. 혜정이가 걷는 길에서 우리가 걷는 길로 내려오려면 70도 경사의 절벽길을 걸어 내려와야 한다. 자칫 발을 헛디뎌 넘어지기라도 하면 데굴데굴 굴러 낭떠러지로 추락할 수도 있다. 겁이 난 혜정이는 절벽길을 바로 걸어내려오지 않고 자기가 들어선 길을 그대로 따라 걸었는데, 그사이 우리가 걷던 길은 점점 아래를 향했다. 나중이 되니 우리 사이의 거리는 오십 미터에서 백 미터 정도로 늘어나 있었다.
난 사진을 찍느라 뒤쪽에 빠져있던 터라 혜정이의 상황을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친구보다 더 뒤쪽에 서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사실 마음을 침착하게 먹고 비탈길을 조금씩 돌아 내려오면 되는 일이었는데, 단지 발 밑으로 보이는 경사가 너무 아찔한 탓에 겁이 나는 것이 문제였다. 난 이 친구가 충분히 알아서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켜줄 필요는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뒤에서 걷다 이따금씩 큰소리로 말을 걸어 내가 곁에 있음을 알려줬다. 이 친구는 원체 민폐 끼치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 자꾸 '괜찮으니 먼저 가라'라고 말을 했지만, 난 '너 때문이 아니라 사진 찍느라 천천히 가는 중'이라 말하고 계속 거리를 유지했다. 그리고 혜정이는 그리 오래가지 않아 혼자 힘으로 비탈길을 걸어 내려와 우리와 합류할 수 있었다.
덕분에 사진은 많이 찍었다. 곧 헤어질 설산들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기억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이제 많이 내려왔다. 우린 사나사를 지나 남체로 간다. 사나사 롯지의 전망 좋은 앞마당에는 백인들 한 무리가 볕을 쬐며 앉아 있었다. 이제부터 시작인 저들이 한편으론 조금 안쓰러워 보인다. 저 친구들 설마 이제야 겨우 여기까지 올라온 건가. 갈 길이 멀구나, 고생 좀 하겠구먼, 힘내, 뭐 조금 힘들긴 하지만 그렇다고 불가능 일은 아니야...
남체에 도착한 시간은 대략 정오쯤이었다. 다시 찾은 남체는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이국적인 생기와 활력을 내뿜고 있었다. 깨끗한 숙소를 찾느라 좀 헤매는 사이 뒤를 돌아보니, 여자애들은 그새 상점에 들어가 뭔가를 물어보고 흥정하고 있다.
롯지에 짐을 푼 뒤 오후 한 시쯤에야 늦은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난 가장 값비싼 메뉴인 시즐러 야크 스테이크를 호기롭게 주문했다. A1 소스 베이스로 풍미를 낸 미디움 레어 스테이크를 뜨겁게 달군 돌판 위에 거칠게 뉘여 치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내온다. 훌륭했다. 역시 문명 세계에선 이 정도 구색은 갖춰야 '스테이크'라는 이름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밥을 먹고 잠시 상점을 둘러본 뒤 카페로 갔다. 지상에선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이 집은 주문한 손님에게 와이파이를 무료로 제공한다. 난 커피를 주문했는데 일행들은 맥주를 달라고 한다. 이제 고작 오후 세시인데 작정하고 고삐를 풀겠다는 것인가. 열흘 동안 밀렸던 카톡 소리를 들으며 아메리카노 한 잔을 비운 뒤, 나도 맥주를 주문했다. 알싸하게 술기운이 오르는 와중에 열흘 동안 잊고 지낸 속세의 소식들이 속속들이 차오른다.
한국은 추석 연휴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 있었다. 라식 수술을 한 내 친누이는 이미 회복을 마치고 일터로 복귀했다. 출국 직전에 산 CJ E&M 주식은 5% 넘게 올랐다. 일행들 모두 와이파이 망에 빨려 들어가는 통에 한동안 대화가 끊겼다.
카페에서 맥주 2캔 씩을 비운 뒤, 술기운이 약간 오른 채로 다시 상점 구경을 나섰다. 나와 혜정인 아까 봐 뒀던 캐시미어 스카프를 사러 갔다. 히말라야 염소털로 만든 100% 캐시미어 제품이었다. 처음에 주인 할머니는 한 장당 2,000루피를 불렀는데, 우리가 워낙 많이 사니까 1,500루피까지 깎아줬다. 한국 돈으로 17,000원이 채 안 하는 가격에 최고급 캐시미어 제품을 얻다니, 횡재한 것만 같았다.
그 외에도 각자 선물할 물건들, 악세서리 등을 조금씩 샀다. 그리고 원래 우리와 동행할 예정이셨으나 집안 사정으로 함께 하지 못한, 우리의 지도교수님을 위한 특별 선물로 그림 한 폭을 샀다. 가운데에 '지혜'를 뜻하는 만다라를 큼지막하게 박아 넣은 그림은 학자의 서재에 기품을 더해줄 것이다. 그림값은 거의 반을 깎은 가격으로 캐시미어 목도리 몇 개 값 정도를 준 것 같다. 원래 그림값엔 정가라는 게 없으니 우리가 낸 가격이 비싼지 싼지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우리 모두 그림이 마음에 들었으니 그걸로 좋은 것이다.
어느덧 해가 지고 있다. 마을 주변으로 히말라야의 구름이 자욱하게 드리운 가운데 남체의 저녁거리는 야시장처럼 반짝인다. 콜드 플레이의 음악과 테이크 아웃 커피숍이 새삼 이국적으로 느껴진다. 몽롱하고 촉촉해진다. 이제 본격적으로 알코올을 들이부을 차례다.
맥주를 좋아하는 율은 목구멍을 열고 콸콸 부어 넣었다. 난 네팔 산 보드카와 위스키, 칵테일을 마셨다. 다른 친구들도 여러 잔을 마셔서 술값이 제법 나왔다. 이곳이 고지대라서 물자의 운송이 어려운 점을 감안해도, 남체의 물가는 저렴하지 않다. 쉐르파 비어 500 ml 한 캔이 800루피(한화 약 9천 원)였으니, 서울과 비슷하고 네팔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폭리 수준이다.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1차에서 대략 한화 10만 원 정도가 나왔다. 근데 뭐, 이게 얼마만의 유흥인데 까짓 10만 원이 대수랴.
서울에서 하던 대로 2차를 갔다. 전에 봐 뒀던 리큐르 바를 찾아 들어갔다. 으슥한 실내에 백인들 서너 팀이 앉아 안쪽 벽에 빔 프로젝터로 쏘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었다.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팀의 실화를 기록한 다큐였다. 우린 한편에 앉아 조용히 주문을 하고 다른 손님들과 함께 다큐를 감상했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던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엔딩크레딧이 나오면서 우리가 올랐다 내려온 히말라야의 길들을 보여주는데, 반갑게도 Red Hot Chili Peppers의 Around The World가 흘러나왔다. 드럼 치던 시절 고막에 굳은살이 박히도록 들었던 곡이 아닌가. 오직 그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그루브에 빠져들어 머리를 흔들며, 다큐 감독에게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가 이 곡을 여기다 집어넣을 때 느낀 것이 혹시 나와 같은 것일까. 아니어도 좋다. 일단 지금 여기서 이 음악을 듣는 게 그냥 좋다.
진 토닉을 두 잔째 마시고 있는데 시리가 우리를 찾으러 왔다. 혹시 고삐가 너무 풀려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걱정되어 찾아 나온 것이다. 시계를 보니 대략 아홉 시, 평소대로라면 이미 취침시간이 지났다. 그대로 계산을 하고 나와 숙소로 향했다. 일행들을 보니 다들 술기운이 제법 올라 헤롱헤롱 하고 있다. 다들 기분 좋게 취했다.
숙소에 들어가서 샤워를 하자마자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