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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환 Apr 30. 2018

넥스트 머니 비트코인

가상화폐, 민주주의, 부의 불평등

근래 읽고 쓰는 것이 좀 느슨해지던 와중에 회사 동료들의 소개로 트레바리라는 독서 모임에 나가게 되었다. 나는 경제를 주제로 읽는 모임에 참여하기로 했는데, 첫 모임에서 이 책을 읽는다고 한다.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야 하므로 이삿짐 정리를 다 마치지 못한 주말 오후 카페에 나와 노트북을 폈다.

 


저자는 국내 최초로 가상 화폐 거래소인 코빗을 창업하고 한국 블록체인 협회 이사를 역임한 인물로, 이 책을 통해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저자가 팟캐스트 '신과 함께'에 출연해 밝힌 바에 따르면, 이 책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 최초의 비트코인 관련 대중서라고 한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 JTBC 토론에서 저자의 주장을 먼저 접하고 부정적인 인상을 받았던 터라, 읽는 내내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비판적으로 읽었다. 또한 이 책 외에도 저자가 출연한 JTBC 토론회와 팟캐스트를 집중해서 다시 청취했다. 가능한 많은 정보를 찾고 생각을 곱씹은 이유는, 한 사람의 투자자로서 코인이 아닌 주식에 투자하는 의사결정에 대해 스스로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이 책은 국내에 가상화폐의 개념조차 생소했던 2013년에 발간되었다. 지난 5년 간 가상화폐를 둘러싼 세상은 참 많이도 변했다. 이 책의 출간 당시 비트코인 시세는 미화 100달러 정도였다. 2017년 12월에는 그 200배인 2만 달러를 돌파했고, 곧이어 6천 달러대까지 하락한 뒤, 최근 다시 반등해 8천 달러 선에서 시세를 형성하고 있다. 실로 엄청난 변동성이다. 이 변동성 때문에 5년 전 당시 대중에게 생소했던 가상화폐는 사회적으로 뜨거운 이슈가 되었고, 소문을 듣고 뒤따라 들어온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의 자금이 유입되어 폭발적인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시장이 너무 과열되자 한국을 포함한 각국 정부는 규제를 검토한다는 성명을 발표했고, 이로 인해 가격이 또 급락하기도 했다. 도대체 비트코인이, 가상화폐가 무엇이길래 이렇게 소란스러울까.


저자의 주장 중 핵심적인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참고로 부연하면, 2013년도에는 가상화폐의 종류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기 때문에 '비트코인 = 가상화폐 = 블록체인 기반 화폐'라는 등식이 대체로 성립했다.


1. 기존 법정화폐 시스템은 많은 문제점을 보여주었다. 비트코인은 기존 화폐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대안이 될 것이다.
2. 비트코인 생태계는 수많은 개인들이 자생적으로 만들어온 민주적인 사회다. 이 자생적이고 민주적인 사회는 중앙정부나 중앙은행 없이도 잘 운영되고 있다.
3. 현재 비트코인 생태계는 거래소 해킹, 높은 가격 변동성, 결제처의 제한 등 여러 결함을 지니고 있지만 장래에는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순서대로 비평해보자.


1. 기존 법정화폐 시스템은 많은 문제점을 보여주었다. 비트코인은 기존 화폐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대안이 될 것이다.


저자가 언급한 기존 화폐의 문제점 중 대표적인 것은 거래 및 환전 비용이다. 비트코인은 결제, 환전 시 수수료가 들지 않기 때문에 개인에게 더 이롭다는 얘기다. 그 외 중요한 문제점으로 중앙은행이 무한정 찍어낼 수 있는 법정화폐는 필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불러오는 것을 지적하고, 비트코인은 발행량이 유한하므로 인플레이션과 그로 인한 자산 가치 하락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한다. 두 주장 모두 논리적으로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법정화폐에는 없는 문제점이 비트코인에 있지는 않은가? 화폐의 본연적 기능인 교환 수단, 가치 저장, 가치 척도를 기준으로 놓고 보면 미국 달러가 비트코인에 비해 훨씬 우월하다. 아마 필리핀 페소나 네팔 루피도 비트코인보다는 훨씬 우월할 것이다. 이런 비판을 받으면 가상화폐 옹호론자들은 '현재 가상화폐의 단점들은 장래에는 모두 기술적으로 보완 가능할 것'이라고 반론한다. 이 반론에 대한 나의 질문은 '그렇다면 블록체인 기반의 화폐 시스템을 법정 화폐에 도입하면 안 될 이유가 있는가?'이다. 자연스럽게 두 번째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 넘어간다.


2. 비트코인 생태계는 수많은 개인들이 자생적으로 만들어온 민주적인 사회다. 이 자생적이고 민주적인 사회는 중앙정부나 중앙은행 없이도 잘 운영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해킹, 가격 급등락 등 여러 번의 위기를 맞았지만 비트코인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의 자발적 기여 덕에 매번 성공적으로 위기를 극복해왔다. 저자는 본문에서 '자발적, 민주적, 평등, 협력, 연대' 같은 단어를 동원해 상당히 아름답고 진취적인 과정처럼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난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못하겠다. 본질적으로 화폐는 통제되어야만 하는 권력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권은 막강한 권력이다. 공권력을 제외하면 금권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은 사실상 없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만 않으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의 민주주의는 특정 이익집단의 정당하지 않은 권력 독점을 불허한다. 화폐 발권력과 같이 중요하고 막강한 권력은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선출, 임명하되 다른 권력기관들과 상호 보완 및 견제하도록 하여 사회 전체의 공익을 도모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이다.


가상화폐 커뮤니티 참여자들은 스스로를 자생적이고 민주적인 커뮤니티라고 하지만, 실상은 특정 이해관계자 집단에 불과하다. 가상화폐 채굴을 발권력으로, 보유량을 금권으로 정의한다면, 초창기 코인 시장을 우연히 발견하고 뛰어들었던 소수의 개인이 사실상 제한없는 발권력을 남용해 엄청난 금권을 틀어쥐고 있는 현상은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에 비춰볼 때 정당한가? 실제로 비트코인 보유량 상위 1퍼센트의 사람이 전체 코인의 89퍼센트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근래 토마 피케티가 주목받으며 부의 양극화가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 의제로 자리 잡은 마당에, 비트코인은 현실 세계의 다른 자산들에 비해서도 훨씬 더 극소수에게 편중되어 있다. 게다가 공권력의 간섭을 거부하기 때문에 1인 1표의 정치 권력으로 견제할 수도 없다. 코인 보유량이 곧 권력에 비례한다면 그야말로 '한 줌밖에 안 되는 사람들에 의한, 한 줌밖에 안 되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가 된다.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에 비춰보았을 때 평등한 사회로부터 한참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3. 현재 비트코인 생태계는 거래소 해킹, 높은 가격 변동성, 결제처의 제한 등 여러 결함을 지니고 있지만 장래에는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거래소 해킹의 경우, 2018년의 상황은 5년 전과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2018년 1월 일본 거래소 코인체크가 해킹을 당해 한화 6천억 원 상당의 피해가 발생했다. 다만 해킹 사고가 반복됨에 따라 각 거래소들이 보안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므로 장래에는 지금보다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해볼 수는 있겠다.


한편 변동성은 2013년 당시보다 200배까지 상승했다 다시 70퍼센트가 급락하기도 했으므로, 과거보다 훨씬 심해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실 가격 변동성은 인간의 투기적 본성에 기인하므로 어떤 기술적 진보로도 막을 수 없다. 대중의 투기심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 코인 거래를 법으로 금지할 것이 아니라면, 주식 시장이나 카지노를 통제하듯 코인 거래도 적정 수준의 규제를 법과 제도로 명문화해 공권력의 통제를 받게 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결제 수단으로서의 기능에 대하여, 적어도 한국에서는 코인으로 실제 재화를 구매할 수 있는 사용처는 거의 없다. 당연한 결과다. 보안과 변동성 문제로 신뢰할 수 없는 자산이다 보니 결제수단으로 확산되지 못하는 것이다. 2018년 현재, 가상화폐는 화폐 본연의 기능인 교환수단으로써 전혀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유시민 작가는 이런 이유로 비트코인 등 코인에 '화폐'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을 반대했다.



마무리하며


투자 시장의 역사에서 이렇게 큰 변동성을 보여준 전례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객관적인 가치 평가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투기성 자금이 유입되어 변동성을 키우는 현상을 두고 혹자들은 네덜란드 튤립 버블에 비견하기도 한다. 내 생각에는 4세기 전에 비해 훨씬 커진 시장 규모, 다원화된 참가자, 훨씬 빨라진 거래 속도 등을 고려하면 지금의 코인 시장은 튤립 버블과 비교할 수준은 이미 한참 넘어선 것 같다.


나는 가상 화폐를 투자 대상으로 고려해본 적이 없다. 현금화할 수 있는 유무형의 자산이 없고 현금 창출 능력이 없으므로, 가치 평가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정 화폐로 표현되는 코인 가격은 그저 투기심에 출렁이는 변동성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투자자의 관점이 아니라 일개 시민의 도덕적 관점으로 바라볼 경우에도, 대중의 투기심을 한껏 자극해 코인 거래시장에 쌈짓돈이 몰려 들어가고 있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상 화폐를 둘러싼 일련의 사회적 현상과 관련하여, 유시민 작가가 JTBC 토론에서 밝힌 의견에 대체로 동의한다.


그렇다고 코인에 투자하는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다만 자신의 이득을 챙기기 위해 어리숙한 사람들을 유혹하고 사기성 행위를 일삼는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주식 시장에서는 위와 같은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형법으로 처벌하는데, 이 기준은 코인 시장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코인 유통 시장에 투자하는 사람들도 그냥 좀 더 솔직해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미래에 법정화폐를 대체할 것이라느니, 분권화된 네트워크를 통해 경제적 민주주의를 이룩한다느니, 이런 뜬구름 잡는 얘기들을 설파하는데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냥 솔직하게 '돈 벌고 싶어서 돈 넣었다'라고 하면 안 될 이유가 있을까? 그리고 투자 시장에서 돈을 따고 잃는 것은 온전히 본인의 책임이니, 자신이 뿌린 대로 거두면 그만이다. 누구를 탓하고 원망할 일도 없다.


난 가치투자, 장기투자를 선호하므로 앞으로도 코인을 살 생각은 없다. 버핏도 한결같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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