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on Stocks and Uncommon Profits
근래 읽고 쓰기를 게을리하던 중 마침내 더 이상은 게으름을 피우면 안 될 이유가 생겼다. 5월부터 독서 모임에 나가는데, 이 모임에 나가기 위해선 독후감을 써내야 한다. 모임에서 읽을 책을 시작하기 전, 그간 읽고 글로 정리하지 않은 책이 마음에 걸렸다. 결국 주말 내 이 책을 다시 펴고 앉아 꾸역꾸역 일회 독을 하고 글로 적어 정리해본다.
필립 피셔는 성장주 투자의 원조이자 월스트릿의 전설이다. 번역본 책날개에 적힌 글을 소개해본다.
피셔가 본문에서 서술한 투자 원칙, 철학, 스타일을 함축적으로 잘 표현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쓴 필립 피셔는 벤저민 그레이엄과 함께 현대적인 투자 이론을 개척한 인물이다. 피셔는 1950년대에 처음으로 '성장주(Growth Stocks)'라는 개념을 소개해 월스트릿의 투자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았다고 일컬어진다. 그는 특히 투자 대상 기업을 고를 때 최고 경영자의 탁월한 능력과 미래에 대한 계획, 연구개발 역량 등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마디로 피셔는 기업의 질(quality)을 무엇보다 중시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업의 재무제표와 계량적 분석을 중시한 그레이엄과 비교된다. 워런 버핏이 자신을 만든 두 스승으로 그레이엄과 함께 피셔를 꼽은 이유는 그래서 중요하다. 계량적 분석만으로는 진정한 최고의 주식을 찾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피셔가 이 책의 초판을 쓴 건 1957년으로, 2018년 현재보다 무려 61년 전의 일이다. 그가 서술한 모든 내용이 현재에도 유효하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적 맥락의 차이에 따른 사소한 면이 아니라 본질적인 면을 들여다본다면, 이 책은 시대를 초월해 영속하는 격언을 담고 있다. 적어도 그의 아들 켄 피셔는 그렇게 적었다. 다음은 켄 피셔의 추천사 중 발췌.
... 내 책에 대해서는 나름대로의 자부심도 갖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가 쓴 이 책만큼 좋은 책이라고는 할 수 없다. 내가 쓴 책과 비교하자면 '위대한 기업에 투자하라'는 시간이 지나도 전혀 낡은 내용이 될 책이 아니다. 아버지와 나의 책 모두 새로운 개념을 처음 소개했지만 아버지가 소개한 새로운 개념이 당시 상황에서 훨씬 더 혁명적이었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적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바로 이런 점이 이 책을 위대한 저작으로 만든 것이다...
저자가 본문에서 강조한 내용을 몇 가지 키워드로 요약하면 사실 수집(2장: 사실 수집을 활용하라), 15가지 포인트(3장: 투자 대상을 찾는 15가지 포인트), 매매에서 지켜야 할 중요한 원칙들이다(5장: 언제 살 것인가 / 6장: 언제 팔 것인가, 그리고 언제 팔지 말 것인가 / 8, 9장: 투자자가 저지르지 말아야 할 다섯 가지 잘못, 추가). 순서대로 정리해보자.
기업의 성장 가능성과 잠재력을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중요한 정보는 회사 내부에서도 유관 부서가 아니면 공개되지 않고, 외부인이 이런 고급 정보를 구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이럴 때 활용하는 방법이 사실 수집이다. 저자는 이렇게 적었다.
기업 세계의 정보망은 상상을 초월한다. 어떤 기업이 해당 업종의 경쟁업체와 비교했을 때 갖고 있는 강점과 약점은 이 기업과 한두 가지 경로로 관련을 맺고 있는 몇 사람의 대표적인 의견을 서로 대조해보면 정말 놀랍도록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경쟁업체, 납품처, 고객 등 그 기업의 핵심적인 경쟁력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질문해서 그 회사의 강점과 약점을 깊숙이 파고들면, 그 기업의 성장 가능성과 잠재력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알아낼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도 동일하게 적용되거나, 혹은 내가 써먹기에 적당한 방법인지는 잘 모르겠다. 오늘날은 정보기술의 혁명으로 대부분의 정보가 일반에 공개되어 있으므로 굳이 사람을 만나고 전화를 하지 않아도 대부분은 인터넷으로 얻을 수 있다. 또한 공개된 정보가 아니라면 고위직이나 핵심 당사자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을 텐데, 일반인인 내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아니다. 물론 내가 기관 투자가라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방법에 더 집중하는 편이 현실적이다.
저자는 자신이 투자 대상을 찾을 때 따지는 핵심적인 내용을 간추려 15가지 포인트로 정리했다. 그리고 "15가지 포인트 가운데 몇 가지 정도를 완전히 충족시키지 못하는 기업이라 하더라도 대단한 투자 수익을 올려줄 수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내가 정의한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기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적었다. 15가지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1. 적어도 향후 몇 년간 매출액이 상당히 늘어날 수 있는 충분한 시장 잠재력을 가진 제품이나 서비스를 갖고 있는가?
2. 최고 경영진은 현재의 매력적인 성장 잠재력을 가진 제품 생산라인이 더 이상 확대되기 어려워졌을 때에도 회사의 전체 매출액을 추가로 늘릴 수 있는 신제품이나 신기술을 개발하고자 하는 결의를 갖고 있는가?
3. 기업 규모에 비해 연구개발 활동은 얼마나 생산적인가?
4. 평균 수준 이상의 영업 조직을 가지고 있는가?
5. 영업이익률은 충분히 거두고 있는가?
6. 영업이익률 개선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7. 돋보이는 노사 관계를 갖고 있는가?
8. 임원들 간에 훌륭한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가?
9. 두터운 기업 경영진을 갖고 있는가?
10. 원가 분석과 회계 관리 능력은 얼마나 우수한가?
11. 해당 업종에서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별도의 사업 부문을 갖고 있으며, 이는 경쟁업체에 비해 얼마나 뛰어난 기업인가를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가?
12. 이익을 바라보는 시각이 장기적인가, 단기적인가?
13. 성장에 필요한 자금 조달을 위해 가까운 장래에 증자를 할 계획이 있으며, 이로 인해 현재의 주주가 누리는 이익이 상당 부분 희석될 가능성은 없는가?
14. 경영진은 모든 것이 순조로울 때는 투자자들과 자유롭게 대화하지만 문제가 발생하거나 실망스러운 일이 벌어졌을 때는 입을 꾹 다물어 버리지 않는가?
15. 의문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진실한 최고 경영진을 갖고 있는가?
본문에는 각 원칙에 대한 부연설명과 더불어 실제 사례를 예시로 들며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 저자의 의중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지만, 문장 그대로만 읽으면 뜻이 잘 와닿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이해한 내용대로 다시 한번 풀어쓰면 다음과 같다. 핵심은 '성장 가능성이 확실한 기업을 찾는 방법'이다.
저자가 주목한 기업은 현재의 제품과 서비스만으로도 최소 몇 년간의 성장성이 전망되고(1번), 현재의 사업 구조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할 의지가 있고(2번), 그 의지를 과감한 연구개발로 연결지어 결과물을 만들어내고(3번), 제품의 판로를 열기 위해 충분한 수준의 영업 조직을 갖춘 기업이다(4번). 재무적 관점에서 봤을 때 위의 조건들은 기업의 영업이익으로 반영이 되고 있을 것이다(5번, 6번). 또한 현재의 이익률과 성장성을 안정적으로 유지해나가기 위해 조직 내부의 불화가 없고 임원들은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7, 8, 9번). 이외에도 경쟁업체에 비해 차별적인 경쟁 요소를 지니고 있을 것이며(11번), CEO는 기업의 성장에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12번). 마지막으로, 경영진은 주주들과 투명하게 소통하고 올바른 인격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14, 15번).
한편 저자는 10번(회계 관리 능력)과 13번(가까운 미래의 증자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는 원론적인 수준으로만 서술했다. 회계 관리 능력은 매우 중요하지만 기업 회계 담당자가 아닌 이상 아주 구체적인 부분까지 파악하기는 어려우므로, 다른 영역에서의 역량을 종합적으로 참고해 신뢰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적었다. 유상증자에 대해서는 기업의 성장성이 확실하다면 근시일 내 유상증자를 할 가능성이 적으며, 혹여 수년 내 유상 증자를 하더라도 그 시점에서의 주당 발행가는 자신이 매입한 시점의 가격보다 높아져있을 것이므로 우려할 일이 아니라고 했다. 이런 대목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저자의 철학은,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확신할 수만 있다면 다른 부분들은 크게 중요치 않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믿고 그에 집중했다.
저자는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한다면 하락장이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매수할 것을 권했다. 다음은 본문에서 발췌.
주식시장이 1929년처럼 투기 광풍에 휩싸여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거나 주요 경제 지표들이 일제히 경고음을 내고 있을 때가 아니라면, 경제 전반이나 주식시장의 상승과 하락 사이클을 일체 무시하는 게 당연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저자는 주식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다섯 가지의 강력한 힘으로 경기 사이클, 금리, 정부 정책, 인플레이션,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기술 혁신을 꼽았다. 그리고 이 다섯 가지 힘은 절대로 동시에 주가를 같은 방향으로 몰고 가지 않으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 어느 한 가지 힘이 다른 힘보다 계속해서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고 적었다. 그러므로 섣부른 거시 예측을 하고 매수 시점을 잡으려 하는 건 부질 없으며, 그보다는 기업의 성장 가능성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저자에 따르면 주식을 팔아야 할 경우는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주식을 매수할 때 실수를 저지른 경우, 즉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잘못 판단해 사지 말아야 할 기업을 매수했을 때다. 이 때는 실수를 인정하고 손절매해야 한다. 두 번째는 시간이 지나면서 기업의 성장 가능성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때, 즉 15가지 포인트를 더 이상 충족시키지 못할 때이다. 경영진의 능력이 떨어졌거나 주력 제품의 시장 전망이 과거처럼 좋지 않을 경우가 이에 해당하며, 이 판단에 확신이 서면 시장 상황이나 거래 비용 따위 신경 쓰지 말고 지체 없이 주식을 매도해야 한다. 세 번째는 현재 보유한 기업에 비해 더 매력적인 성장 가능성을 보이는 기업을 찾았을 때이다. 저자가 이 장을 마무리하며 적은 내용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발췌해본다. 필립 피셔의 철학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문구라고 생각한다.
주식을 매수할 때 해야 할 일을 정확히 했다면
그 주식을 팔아야 할 시점은 거의 영원히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초판에서 투자자가 '저지르지 말아야 할 다섯 가지 잘못'(8장)을 서술했고, 개정판에서 다섯 가지를 더 추가했다(9장).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종목을 매수하지 말라.
2. 훌륭한 주식인데 장외시장에서 거래된다고 해서 무시해서는 안 된다.
3. 사업보고서의 '표현'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주식을 매수하지 말라.
4. 순이익에 비해 주가가 높아 보인다고 해서 반드시 앞으로의 추가적인 순이익 성장이 이미 주가에 반영됐다고 속단하지 말라.
5. 너무 적은 호가 차이에 연연해하지 말라.
6. 너무 과도하게 분산투자하지 말라.
7. 전쟁 우려로 인해 매수하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8. 관련 없는 통계 수치들은 무시하라.
9. 진정한 성장주를 매수할 때는 주가뿐만 아니라 시점도 정확해야 한다.
10. 군중을 따라가지 말라.
위 격언에 담긴 저자의 생각을 온전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본문을 다 읽고 생각을 곱씹어 봐야 한다. 난 이 글을 쓰기 전 삼회 독을 했는데, 아직 내 생각으로 다 녹여내진 못했으므로 아마 앞으로도 몇 번은 더 읽을 것이다. 우선 지금 드는 생각을 정리해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저자는 그 무엇보다도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우선시했다. 때문에 위의 2번과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이다. 한편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진짜와 가짜를 올바로 선별할 것을 강조한다(1, 3번). 또한 계량적 가치 평가에 지나치게 의존해서 기업의 진짜 성장 가능성을 평가절하하지 말라고 한다(4, 8번). 포트폴리오의 관점에서, 지나치게 많은 종목으로 분산하지 말고 성장 가능성이 확실한 소수 종목으로 집중하라고 한다(6번, 사실 그의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진짜배기 성장주 종목은 극히 소수일 것이다). 한편으로 진정한 성장주를 발굴했다면 호가에 연연하지 말고 시장가로 바로 매수하라고 한다(5번). 근거 없는 공포와 탐욕에 사로잡히지 말고(7, 10번), 자신의 기준으로 매매시점을 잡을 것을 권한다(9번).
위 격언은 주식 매매의 순간 모든 이가 경험할 수밖에 없는 고뇌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복잡하고 머리 아픈 주식 매매의 원칙은 사실 정말 간단하다. "언제 얼마에 사서 언제 얼마에 팔 것인가?", 이게 전부다. 그러나 이걸 아는 사람은 없다. 신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막상 사고 팔 때 온갖 번뇌에 흔들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 같은 범인은 항상 이런 격언을 새겨듣고 마음을 다잡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마무리하며
이 책의 처음과 마지막은 저자의 아들 켄 피셔의 글이 장식한다. 처음은 책 추천사, 마지막은 아들이자 동종업계 종사자의 눈으로 바라본 필립 피셔라는 한 인간을 묘사한 글이다('나의 아버지 필립 피셔'). 켄 피셔 또한 아버지 못지않게 위대한 투자자인 동시에 뛰어난 작가인지라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특히 '나의 아버지 필립 피셔'는 필립 피셔의 인간적인 면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전설적인 투자가인 아버지와 아들, 필립과 켄의 삶을 겹쳐서 음미할 수 있었다.
켄 피셔가 적었듯 이 책은 진정한 의미로서의 고전이며, 읽고 읽고 또 읽어도 부족함이 없는 책이다. 앞으로도 생각날 때마다 다시 들춰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