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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환 Mar 05. 2018

위대한 투자자, 제시 리버모어

탐욕과 공포를 이해한 추세매매의 선구자

켄 피셔의 추천도서 목록 중 벤저민 그레이엄에 이어 제시 리버모어를 읽었다.



이 책은 에드윈 르페브르가 쓴 '어느 주식투자자의 회상'(Reminiscences of a Stock Operator, 1923), 리버모어가 쓴 '주식 매매하는 법'(How to Trade in Stocks, 1940)의 합본이다. 전자는 르페브르가 리버모어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쓴 리버모어의 비공식 전기이고, 후자는 리버모어가 자신의 매매 기법을 정리한 책의 해석본이다. 켄 피셔는 특히 '어느 주식투자자의 회상'을 자신이 지금까지 가장 좋아한 책 중 하나라고 했다. 2007년 윤지호, 노혜숙 님이 번역을 맡아 한국어판이 발행되었다.


먼저 서문 중 인상적인 내용을 일부 소개해본다.


... 이런 극찬을 받을 정도로 이 책은 주식 시장의 진정한 고전이고, 세월을 뛰어넘어 21세기 월스트릿 트레이더들의 영원한 스테디셀러이며, 월스트릿의 지식 그 자체(Wall street lore)라고 하겠다. 이 책은 지금도 미국 아마존의 최상위권에 랭크되어 있으며...
주식 시장은 비교적 최근에 생긴 분야라 불변의 지침서로 삼을만한 고전목록은 다소 빈약하다. 알 만한 사람에게 물어보면 대개 벤자민 그레이엄, 필립 피셔 등을 꼽는다. 만일 그들이 에드윈 르페브르의 '어느 주식투자자의 회상'을 함께 언급한다면, 믿을만한 조언을 듣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처음 출판된 1923년 당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적절한 교훈들로 가득 차 있다


당대의 투자자 중 대중에게 가장 유명한 두 사람으로 워런 버핏과 조지 소로스가 있다. 그 둘의 투자 철학은 정반대로, 버핏은 가치투자의 전도사이며 소로스는 추세매매의 달인이다. 버핏과 같은 가치투자의 선구자가 벤저민 그레이엄이었다면, 소로스와 같은 추세매매의 선구자는 제시 리버모어였다. 난 이 책을 읽기에 바로 앞서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를 읽었던 터라 한층 더 재미있게 내용을 음미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생각하고 느낀 점을 정리해 보았다.



어느 주식투자자의 회상


켄 피셔는 이 책을 소개하며 이렇게 적었다.


이 책은 단기매매가 터무니없이 어리석은 짓임을 보여준다... 그는 가격 흐름에 따라 단기 매매하는 자존심 덩어리였다. 이런 허세는 마침내 비극을 부른다. 1940년 11월, 무일푼이 된 그는 권총으로 자살했다. 이 천재 트레이더는 재산을 지킬 수 없었다.
이 책은 리버모어의 인생 중 행복했던 날들을 주로 다루면서 그의 성공, 실수, 자랑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여러모로 교훈적이므로 그로부터 배우기 바란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책을 펴든지 채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천재 투기꾼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든 나머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푹 빠져들어 버렸다. 솔직히 고백하면, 바로 전에 읽었던 그레이엄의 격언 따위 기억 저편으로 까맣게 잊어버렸을 정도다.


제시 리버모어는 극적인 삶을 살다 간 희대의 풍운아였다. 에드윈 르페브르는 감각적인 필체로 리버모어의 삶을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고전이라고 부담감을 가질 이유가 전혀 없으며, 재미있는 소설 읽듯 열린 마음으로 읽으면 술술 읽힌다. 주식 투자에 도움이 될 무언가를 얻어내겠다고 꼭 기를 쓰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 주식 매매를 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씩 자신도 모르게 "맞아 나도 이런 적이 있었지", "이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를 중얼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책 내용에 더불어, 잠깐 검색을 해서 찾아본 내용을 더해 리버모어의 삶에 대한 짤막한 감상을 적어 본다. 리버모어는 주식 투기로 엄청난 부와 명성을 얻고 영화처럼 화려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의 삶은 평탄하고 순조로운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네 번이나 파산하고, 알코올 중독 아내와 이혼하고, 정부였던 여배우에게 혼인빙자 간음으로 고소당하고, 만성적인 우울증에 시달리다 결국 권총 자살을 선택한다. 행복한 삶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화려함보다는 그 이면의 실패에서 많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권한 켄 피셔의 뜻도 그러했을 것이다.



주식 매매하는 법


이 책에서 리버모어는 자신이 일생에 걸쳐 정립한 매매 기법을 소개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리버모어와 나의 상황이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주의 깊게 읽지 않았다.


1세기 전과 지금의 미국과 한국 주식 시장은 모든 조건에서 많이 다르다. 또한 이미 공개된 기법은 모두가 알고 있는 방법이므로 크게 효과를 보기 어렵다. 따라서 리버모어가 책에서 소개한 기법들은 지금 내가 써먹기엔 적절치 않을 것이다. 그의 매매기법 하나하나를 자세히 뜯어보는 것보다는, 그가 강조한 큰 원칙들에 주목하는 편이 생산적이다.


책 초입 '옮긴이의 말'에서 소개한 리버모어의 투자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확한 시점에 거래를 시작하라.

둘째, 추세와 싸우지 말고 추세와 동행하라.

셋째, 물타기 애버리징을 하지 말고, 진입 후 성과가 좋지 않다면 바로 손절매해 위험을 회피하라.

넷째, 주변부 종목 및 저가주를 매매하기보다 경제 및 산업 트렌드를 변화시키는 주도주 매매에 집중하라.

다섯째, 남의 정보를 듣고 매매를 하지 말라. 펀더멘털을 바탕으로 모멘텀에 따라 종목을 선택하라.


위 원칙들은 오늘날에도 충분히 유효하다. 이외에도 책을 읽으며 배워야 할 점이라 생각했던 점들을 갈무리해 생각을 정리해본다.


성공적인 거래 후에는 수익의 절반을 저축하라

리버모어는 이렇게 적었다.


월스트릿에서 돈을 벌고 싶다면 거래를 성공적으로 마감한 후에 계좌에서 현금을 인출해야 한다...
... 이 원칙은 나에게 여러 번 도움을 줬다. 이 원칙을 끝까지 지키지 않은 것이 후회될 따름이다. 나도 언젠가부터 해이해졌을 것이다.
투기자들은 보통 아무런 포지션을 취하지 않거나 초과 자산을 갖고 있을 때가 아니면 증권계좌에서 돈을 인출하지 않는다. 또한 시장이 불리하게 움직일 때는 모든 자금이 증거금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수익금을 인출하지 못한다. 아니면 거래를 성공적으로 마감한 후에도 다음번에는 두 배로 벌겠다고 생각해 차익을 인출하지 않는다.
... 따라서 대부분의 투기꾼은 돈을 구경도 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돈은 실재하지 않고 만질 수도 없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교훈이다. 계좌에 표시된 평가 수익은 현금으로 찾을 때까지는 진짜 수익이 아니다. 많이 오른 주식은 언제든 많이 내릴 수 있다. 10% 평가 수익이 하루 만에 -10%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적절한 시점에 평가 수익을 현금으로 바꿔야 한다.


평가 수익을 현금화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주식계좌에 표시된 현금 잔고를 은행 계좌로 인출할 때까지는 안전하지 않다. 주식 계좌에 돈이 있으면 뭐라도 살게 없나 두리번거리고 근질거리는게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매매에서 발생한 이익의 절반은 현금화하는 원칙을 세우고 항상 실천해야 한다. 리버모어는 이 원칙을 세우고도 끝까지 지키지 못해 파산을 거듭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의 조언은 자신의 삶에서 우러나온 충고이기에 한층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스스로 공부하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

쉽게 돈 벌 수 있는 방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돈을 벌고 싶으면 공부하고 고민해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리버모어가 월스트릿의 투기왕이 된 것은 그저 운이나 술책을 부려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평생 연구하고 자기 관리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투자하지 마라.
특히 회사 내부자로부터 나온 정보는 반드시 경계하라.

그는 남의 조언이나 내부자 정보를 이용해 매매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때로는 원칙을 어겨 크게 손해를 보기도 했는데, 일례로 그는 비상한 매력의 소유자인 퍼시 토마스에게 설득당해 면화 선물에 자산의 90퍼센트를 배팅한 뒤 세 번째 파산을 맞는다.


관련하여 본문에서 재미있게 읽은 대목이 있어 인용해본다.


이 게임을 해서 먹고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믿고 자신의 판단을 믿어야 한다. 이것은 내가 비밀정보를 믿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일 내가 스미스의 말을 듣고 주식을 산다면 그 주식을 팔 때도 스미스의 말에 의지해야 할 것이다. 만일 스미스가 휴가를 갔을 때 매도 시점이 온다면?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최소저항선을 따라 거래하라.
전환점을 이용하라.

이 책을 읽고 난 뒤 리버모어의 매매 기법으로부터 얻은 통찰을 한 마디로 줄이면 '추세에 동행하라'다. 이 격언은 가치투자자라 할지라도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가치 있고 저평가된 기업의 주식이라도, 시장 참가자들이 그 주식을 매력 적으로 보지 않을 이유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주식을 산 뒤 평가 수익이 발생할 때까지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릴 것이다.


한국 주식 종목 SK텔레콤의 예를 들어보자. 2018년 3월 2일 기준 종가는 234,500원이다. 안전마진의 논리를 구현하는 RIM으로 평가한 SK텔레콤의 적정주가는 대략 41만 7천 원, 수익력 20%를 하락을 가정한 Ohlson의 할인율을 적용해도 27만 원 정도다. 적정 가격에 할인율 20%를 적용해도 3월 2일 종가의 87% 수준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매력적인 가격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주가 흐름은 줄곧 하락세다. 아마도 '5G 망 보급이 대세이긴 하나, SK텔레콤의 사업 이익에 반영되기까지는 시간이 한참 걸릴 것'과 같은 시장참가자들의 생각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이번엔 사조대림이라는 종목을 예로 들어보자. 위와 같은 방법으로 가치 평가를 해보면 수익력 20% 하락을 가정한 할인율 적용 시 주당 가치는 약 3만 8천 원, 3월 2일 종가는 27,350원이다. 적정 가격에 할인율 20%를 적용한 것의 72% 수준이다. SK텔레콤의 경우에 비해서도, 적정 가격에 비해 훨씬 더 싸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종목의 최근 주가 흐름은 좋아 보인다. 지난 반년 간은 가격이 내재가치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줄곧 횡보했다. 그런데 지난주, 2월 23일부터 28일까지 4 거래일 동안 약 15% 상승 후 3.9% 조정받았다. 한편 원래 거래량이 거의 없는 종목이었는데, 26일부터 4 거래일 연속 연기금의 매수세가 들어온 점도 인상적이다. 지난 2월 22일, 17년 4분기 실적 발표 후 포트폴리오에 편입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시장 참가자들의 생각이 '잘 모르겠는데'에서 '이제 사도 되겠다'로 바뀐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리버모어가 말한 최소저항선이 상승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위의 두 사례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내용을 한 마디로 줄이면 '특정 주식에 가치평가를 한 결과 매매를 결정한다 하더라도, 매매 시점을 판단할 때는 추세에 동행해야 좋은 성과를 낼 가능성이 높다'이다. 뭐 이렇게 장황하게 적지 않더라도 주식 매매하는 사람 중 차트를 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마무리하며 다시 적어보면, 그레이엄의 가치투자를 따르더라도 리버모어의 추세매매에서 배울 점이 전혀 없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경직된 사고보다는 유연하게 생각하는 편이 투자에도 세상살이에도 도움이 된다.



여담


주말에 글을 다 쓰지 못하고 저장해놓은 채로 월요일인 3월 5일 아침을 맞아, 시초가 부근에서 사조대림 매수를 시작하고 장마감 후 -1.03% 손실을 봤다. 리버모어의 격언 제 1번, '정확한 시점에 거래하라'를 지키지 못했다. 지난 몇 달을 봐오던 종목을 매수했는데도 정확한 시점을 잡는데 실패하다니, 역시 주식 투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정확한 시점에 거래를 시작하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 말이냐만은, 요즘처럼 시장 상황이 불안정할 때는 시가보다는 종가 매매를 하는 편이 나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전체 시장의 흐름을 보고 진입을 할지 말지 결정해야 하는데, 적어도 반나절은 지나 봐야 시장의 전체 흐름을 알 수가 있으니까. 그런데 직장 생활하는 사람으로서 종가 매매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지, 그렇게 하는 게 현명한 행동인지는 잘 모르겠다. 업무 시간에 일에 집중을 못하면 장기적으로 나 자신의 수익력이 떨어지게 될 테니까.


오늘은 내가 너무 성급했다. 요즘 시장은 아직 뒤숭숭하다. 아직은 살 때가 오지 않은 것 같다. 조금 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요즘 같은 시장에서는 아예 거래를 하지 않는 편이 수익, 정신 건강, 일상생활에 모두 좋을 거라는 생각이다. 이럴 때일수록 원칙을 지켜야 한다. 내일 상황을 봐서 평가 손실 -5% 밑으로 내려간 종목들은 원칙대로 손절매한다. 그리고 이번 주 내내 코스피 지수가 반등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1년 이상 보유할 자신이 없는 종목은 다 팔고 나오는 것도 고려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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