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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환 Jul 02. 2018

시장과 네트워크로 읽는 북한의 변화

최근 성사된 남북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은 전 세계적으로 초미의 관심사를 불러일으켰다. 주식시장도 엄청나게 호들갑을 떨며 반응했는데, 특히 건설, 철도 등 SOC 관련주는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4월 27일을 전후로 큰 폭으로 올랐다. 사실 시장이 호들갑을 떠는 것을 보며 한편으로는 불편한 마음이 있었다. 가치투자를 지향하는 입장에서는 계약서나 실적 전망치 같은 것도 전혀 없는 상황에서는 손이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추세추종을 잘 하는 사람은 이런 장에서도 큰돈을 벌었을 것이다. 물론 난 벌지 못했다. 아무튼, 큰 틀에서 봤을 때 대북경협은 돌발변수가 없는 한 기정사실이 되었다. 북한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던 터라 기본적인 내용부터 공부해두자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은 트레바리에서 이 달의 책으로 읽은 책이기도 하다. 내가 참여하는 이콘 넥스트는 다가오는 다음 세상의 변화를 경제와 엮어서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는 그룹이다. 이 달의 책을 선정하기에 앞서, 나는 앞으로의 한국 경제에 남북 경협이라는 다크호스보다 파급효과가 큰 변수가 없지 않냐는 취지로 북한 관련서를 읽을 것을 제안했다. 후보 도서로 몇 권의 책이 물망에 오른 뒤 최종적으로 이 책이 선정되었다. 이유는 북한 관련서 중 최근의 정세를 잘 반영하고, 경제의 관점에서 분석한 책이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위의 두 가지 이유를 잘 반영하는 최선의 대안이었다.


이 책의 저자 정세진은 동아일보 기자로 개성공단, 남북경협기업을 다년간 취재해 온 북한 전문가다. 책이 출간된 시점은 2017년 5월 8일로, 박근혜 탄핵 후 장미 대선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2017년 5월 9일보다 하루 앞이었다. 저자가 이 책에 담아낸 내용은 박근혜 정부까지의 역사를 반영하고 있음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내 나름으로 책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1. 김대중 정부 이래 남북 정부와 주요 기업들 주도로 남북경협이 추진된 사례는 많이 있었으나, 북한 정권의 폐쇄성과 특수성 등 정치적 불안정 요인으로 인해 제대로 결실을 이루지는 못했다.


2. 그러나 정치 논리를 배제하고 경제적 실익의 관점으로만 볼 때, 북한에는 무궁무진한 기회가 있다. 세계 최빈국에 가까운 열악한 개발 수준만 봐도 자본 투자의 기회는 많다. 그리고 특히 남한의 입장에서, 북한과 교역을 트고 중국, 러시아를 지나 유럽까지 연결되는 지정학적 확장성을 고려하면, 그 가치는 어마어마하다.


3. 북한에 이미 자생적으로 생겨나 자리 잡은 자본주의를 주목해야 한다. 북한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무너지면서 자본가 계층으로 성장한 '돈주'들은 이미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자본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들은 소비재 유통, 운수, 건설, 사금융 등 자본주의 시장경제 산업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김 씨 독재권력이 장악한 정치권력과 공생하는 자본권력이라고 할 수 있다. 부의 편중과 세습도 고착화되어, 소득 5 분위 배율이 이미 45배 정도에 달할 상황이 되었다. 북한 사회는 남한 사회보다 부의 불균형이 훨씬 심각하다.


4. 북한과의 경협에서 주목해야 하는 경제적 기회로 특히 자원, 노동력, 에너지, 중국의 동북 3성을 주목해야 한다. 북한 자원 중에서도 특히 희토류는 이명박 정부 당시에도 정부 차원에서 관심을 보였던 사안으로, 경제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한다. 한편 북한의 노동력은 베트남보다 저렴한 탓에, 북한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야 하는 중국 동북 3성이 대북 제재에 반대할 정도였다고 한다. 고급 인력인 IT 인력의 전문성도 국제적 기준으로 매우 뛰어난 편이라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에너지와 관련해서는 북한을 경유하는 러시아 가스관 사업을 주목해야 하고, 더 큰 관점에서는 한중러일을 연결하는 '동북아 슈퍼 그리드'도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으로 지정학적 관점에서, 한중러일을 모두 연결하는 길목은 북한, 중국, 러시아의 접경지대인 동북 3성이다. 특히 3국의 국경을 맞대고 있는 훈춘, 나선 지역의 가치에 주목하라고 한다.


저자가 이 책을 쓴 당시만 해도 2018년 남북, 북미 정상회담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일이다. 책에서 저자가 했던 주장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지를 곱씹으며 읽느라 시간이 한참 오래 걸렸다. 만약 저자가 책 한 권을 다시 쓴다면 어떤 얘기를 들려줄지 궁금하다. 


한편 남북 경협은 지금 얼마나 구체적이고 확실성 있는 얘기일까? 이제 겨우 남북 실무대표단 간에 철도, 도로 사업에 대한 실증 조사를 착수하기로 합의했다는 뉴스 정도가 흘러나온다. 아직은 확실성보다 불확실성의 영역이 훨씬 크다. 투자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구체적인 사실이 굳혀진 바 없으므로 상상력이 할 수 있는 일은 더욱 많다. 섣부른 판단은 아직 유보하고 싶다. 나와 다른 이의 논리를 부딪히기보다는 다른 이의 상상력을 더 많이 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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