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투자가의 분석 도구 - 기업 가치, 현금 흐름, 자산 가치.
주식 투자를 시작한 지 아직 채 1년이 되지 않은 나는 공부할 거리가 참 많다. 최근 지인과의 대화에서 기업 재무제표 중 현금흐름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었는데, 그 친구는 그다음 나를 만나던 자리에 이 책을 가져와 일독을 권했다. 고마운 친구다.
저자 크리스토퍼 마이어는 은행에서 오랜 기간 기업대출 업무를 담당하고 임원으로 은퇴한 뒤 투자전략가로 활동 중인 인물이다. 그가 이 책을 출간한 시점은 2008년 7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전 세계 금융권을 강타하고 있던 때였다. 이 책의 부제 '금융위기의 정점에서 쓴 두 시장 이야기'는 이런 배경에 근거한다.
한편 부제의 '두 시장 이야기'이라는 문구는 책의 내용을 함축한다. 저자에 따르면 기업을 사고파는 시장은 공개시장인 주식시장 외에도 사모시장인 M&A 시장이 있지만, 주식시장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대개 주식시장의 가격 변동에만 집중한다. 그러나 기업을 실제로 소유하고 운영할 목적으로 거래하는 사모시장의 참가자들은 주식시장 참가자들과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기업의 가치를 평가한다. 저자에 따르면 사모시장의 관점으로 평가한 기업 가치와 주식시장의 주가 사이에 큰 괴리가 존재할 때가 바로 절호의 투자 기회이다. 이런 관점으로 기업 가치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가리켜 저자는 딜메이커(Dealmaker)라고 칭한다.
딜메이커란 주식을 주가가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실질적인 자산과 현금흐름이 있는 실체의 기업으로 간주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으로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기업의 어디에 주목하고 무엇을 무시해야 할까? 저자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참 많은 사람들이 위의 것들을 신줏단지 모시듯 한다. 추세추종자들에게 차트는 거의 전부이며,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에게 거시경제와 실적 전망치는 생각의 출발과 종점이다. 그런데 저자는 정말 쿨하게 이걸 다 집어치우라고 한다. 어쩌면 이 책을 낸 시점이 금융의 종말과도 같았던 2008년 7월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대담하게 쓸 수 있었을까도 싶다. 인상 깊은 문구를 일부 인용해본다.
만일 당신이 생각하기에 차트에 무언가 답이 숨어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이제까지 당신은 단 한 번도 기업의 인수를 놓고 협상을 벌인 경험이 없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산을 팔아야 했던 적도 없었으며, 또한 여러 가지 사업을 포트폴리오처럼 운영해 본 경험도 없다는 것을 뜻한다.
차트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주가가 바로 그 기업의 피와 살이요, 땀과 흙에 연결되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두 개의 시장을 보지 못한다. 그들은 오직 한 군데의 시장만 볼 따름이다.
대부분의 전형적인 소액 투자자는 큰 그림을 좋아한다. 그들은 경제의 전체적인 상황이나 금리의 인상 여부 혹은 국제유가의 동향 등과 같은 수많은 거시경제적인 지표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매우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 같은 접근방식의 의존하면 위험에 빠지기 십상이다. 올바른 결론을 내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단계에서 한 번도 틀리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투자 방식은 단계를 밟아가며 옮겨가는 톱-다운 방식과는 다르다.
사실을 말한다면, 주당순이익이야말로 투자자들이 접하는 수치 중에서 가장 많이 조작된 것이다. 게다가 더욱 중요한 것은 기업이 돈을 벌고 있는지 여부를 정확하게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기업 가치를 평가할 때 사모시장에서 거래될 때의 기준과 같이 실제의 기업 가치, 현금 흐름, 자산가치, 재무 건전성을 살펴보라고 한다. 순서대로 정리해보자.
기업 가치(Enterprise Value)
주식시장 참가자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사실이지만, 기업 인수자는 인수하는 기업의 부채와 보유 현금을 같이 인수한다. 이를 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 주식 시장에서의 기업 가치 : 시가총액
- 사모 시장에서의 기업 가치 : 시가총액 + 부채 - 보유 현금
현금 흐름
위에서 저자가 '주당순이익은 기업이 돈을 벌고 있는지 여부를 정확하게 나타내지 못한다'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회계 상으로는 이익이 발생해도 현금흐름표 상에서는 손실인 상황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운전자본(재고자산, 외상)에 돈이 묶여 있는 경우가 그 예다. 때문에 '기업이 실제로 벌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현금 흐름에 주목해야 한다. 현금흐름의 산출식은 다음과 같다.
- 현금 흐름 : 순이익 + 비현금지출비용 - 자본지출비용 - 운전자본 변동
현금 흐름을 산출하는 다른 방법으로는 EBITDA가 있다(Earning Before Interests, Taxes, Depreciation and Amortization). 이자, 세금, 감가상각을 반영하기 전의 순이익이라는 의미로, 위의 EV와 조합해서 EV / EBITDA라는 지표로 널리 사용된다. EV / EBITDA 는 기업 가치 / 순이익을 표현한다는 면에서 PER과 비슷하지만, 기업 인수 시 실질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현금 가치를 반영한다. 그러나 저자는 EV / EBITDA라는 지표 하나에 매몰되지 말고 현금 흐름의 내용 또한 면밀히 살펴야 함을 강조한다.
* 현금흐름과 EBITDA 관련 칼럼- "영업이익 큰데 현금 흐름 작다면 부실 징후"
자산 가치
저자는 자산 중에서도 특히 유형자산에 집중하는데, 부동산이나 재고 자산과 같은 유형 자산은 실제 가치가 상당히 정확하게 가격으로 매겨지기 때문이다. 반면 상표권과 같은 무형자산은 정해진 가격이 없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크다. 때문에 어떤 이유로든 상황이 악화되었을 때 유형 자산은 주가를 방어하는 완충장치 역할을 할 수 있는 반면, 무형 자산은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저자가 이 대목에서 인용한 그레이엄과 도드의 '안전 마진'을 다시 인용해 본다.
투자할 때 우리가 추구해야 할 안전성이란 절대적이거나 완벽한 것은 아니다. 안전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오히려 모든 가능한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상황에서 손실을 입을 가능성에 대한 방어책이다. 안전한 주식이란 나타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특별한 비상사태를 제외하고는 어떤 상황에서든 매수할 때 지불한 가격 이상의 가치를 항상 보유하는 주식을 의미한다.
재무 건전성
저자는 부채가 적고 현금을 많이 보유한 기업을 선호한다고 적었다. 이런 조건을 갖춘 기업을 가리켜 '재무 건전성이 좋다'고 하는데, 이런 기업의 현금은 경쟁기업을 물리치고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잠재력이다. 이런 기업에 투자하면 안전하면서도 성공적인 투자 성과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위험을 시장위험과 영업위험으로 구분하며, 시장위험은 무시하고 영업위험에 주목하라고 한다. 본문 내용을 인용해 본다.
시장위험이란 주식시장의 주가가 단기적으로 불리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이런 위험에 대해서는 그리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실현되지 않은 손실이거나 혹은 실현되지 않은 이익이 줄어드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시장위험은 무시해도 무방하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영업위험이다. 영업위험이란 우리가 투자를 검토하고 있는 기업에만 존재하는 독립적인 위험을 말한다. 예를 들어 큰 고객이 갑자기 거래를 끊어버리는 것, 중요한 계약을 따내지 못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혹은 비용을 많이 들여 시작한 개발 계획이 결실을 얻지 못하는 것도 영업위험에 속한다. 결국 영업위험이란 수없이 많은 구체적인 사건이다.
우리는 이런 위험을 가능한 한 회피하려고 노력한다. 이미 앞에서도 강조했듯이 위험을 회피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대차대조표가 건강하고, 부채가 거의 없는 회사에만 투자하는 것이다. 건강한 대차대조표란 부채가 거의 없고 유동성이 풍부하며, 영업권 같은 웃기는 자산(우리는 이런 자산을 분석에서 제외한다)이 많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한편으로 저자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상식과도 같은 명제를 부정한다.
학교에서는 이 내용을 마치 법칙처럼 가르치곤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실제는 수익성이 좋고 재무구조도 마치 바위처럼 단단한 기업에서 풍부한 가치투자의 기회를 더 많이 찾아낼 수 있다. 이는 위험이 낮은 상황이지만 우리는 여기서 큰돈을 번다.
블루칩에 투자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위험하다. 첫째는 일반적으로 이미 주가가 고평가 되어 있기 때문이며, 둘째는 재무상태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패니매나 한때 잘 나가던 시절의 엔론과 같은 경우가 그렇다. 그런 위험한 종목에 투자한다면 큰돈을 손해 볼 수밖에 없다.
나는 지금 일반적인 법칙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당신에게 위험과 수익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어지는 4장에서는 자신의 투자 전략을 좀 더 자세히 소개한다(4장. 사냥터). 일반 투자자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내용과 일반 투자자는 따라 하기 어려운 내용이 뒤섞여 있다. 핵심은 저평가된 가치주를 사들이는 방법이다. 5장에서는 여러 투자 대가들의 사례를 소개하며 오랜 투자 격언과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5장. 투자 격언의 오류). 특히 5장은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면서 생각하고 음미해볼 내용이 많다고 생각한다.
한편 6장 매도 타이밍에서는 '언제 매도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주식을 매수한 당시의 이유가 유효하지 않을 때'라고 명쾌하게 답한다. 관련하여 책 초반에서 저자가 인용한 존 버 윌리엄스(1930)를 음미해볼 만하다.
주식시장의 주가란 의견을 나타낸 것이지 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 어떤 가격이 진정으로 옳은지는 시간이 지나야만 알 수 있다. 오늘의 의견으로 오늘의 주가가 만들어지고 내일의 의견으로 내일의 주가가 만들어진다. 어떤 가격이건 그것이 반드시 옳다는 증거는 없다.
위의 인용문에 따르면 '주식 시장에서 거래되는 주가는 주식 가치에 대한 개인들의 의견'이다. 주식을 매수한 이유는 곧 그 주식의 가치에 대한 의견이며, 자신이 주식을 매수했을 때의 의견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확신한다면 하락장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은 무시해야 한다.
따라서 가치투자자는 손절매를 하지 않는다. 손절매란 자신의 의견을 버리고 타인의 의견에 동조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반면 추세추종자는 처음부터 타인의 의견에 동행한다. 주가의 추세가 하락으로 방향을 튼 것은 곧 타인들의 의견이 '하락'에 합의한 것을 의미하므로 맞서지 말고 같이 빠져나와야 한다. 1930년에 존 버 윌리엄스라는 사람이 쓴 글을 음미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치투자와 추세추종의 철학의 차이를 참으로 선명하게 보여주지 않는가.
마무리하며
저자의 생각 중 온전히 내 것으로 체화한 게 얼마나 될지, 실전에 얼마나 많이 녹여낼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읽기 전에 비해 확실히 깨달은 점은 있다. 기업의 가치를 바라보는 관점을 더 길고 넓게 가져야겠다는 생각이라던가, 기업의 현금 흐름과 보유 현금의 중요성이라던가, EV / EBITDA와 PER, PBR 등의 의미에 대한 이해 같은 것들 말이다. 앞으로는 매수를 하기 전에 재무제표와 현금흐름표를 더 꼼꼼히 읽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