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통념으로 중국을 예단하지 말라
이 책의 원제는 '49 Myths about China'이다. 영어 제목에 양념을 쳐서 '중국의 미래 예측'으로 지은 것은 책이 잘 팔리기를 바라는 출판사의 의도였을 것이다.
저자 마르테 셰르 갈퉁과 스티그 스텐슬리는 노르웨이 국방부 소속으로, 중국을 포함한 국제 정세를 연구한다. 한국 사람들에게 노르웨이는 중국 보다도 훨씬 낯선 국가이지만, 알고 보면 노르웨이가 중국에 관심을 가질 이유는 충분하다고 한다. 노르웨이는 전 세계에 원유를 수출하는 국가이자, 나토 회원국으로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이며, 노르웨이 소재 노벨 위원회는 중국인에게 두 차례 노벨상을 수여했고 그로 인해 외교 보복을 당하기도 했다. 이만하면 노르웨이가 중국에 관심을 가지기에 양국의 이해관계는 충분한 수준일 것이다.
영어 원제를 그대로 읽으면 이 책의 의도는 쉽게 읽힌다. 서구 세계에서 바라보는 중국에 대한 근거 없는 통념들을 객관적으로 짚어보자는 얘기다. 저자들은 '경제, 정치, 국민, 세계와 중국, 역사, 미래'의 6개 주제에 걸쳐 49개의 근거 없는 통념을 제시하며, 이를 균형 잡힌 관점으로 차분하게 반박한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읽어야 파악할 수 있지만, 49개의 그릇된 통념을 초래한 원인들을 내 나름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중국인들은 예의가 없다거나, 이기적이라거나 하는 류의 통념이 이에 속한다. 사실 예의라는 건 문화에 따라 다름을 인정해야 하고, 인간의 이기성이나 이타성 또한 판단 기준을 무엇으로 삼느냐에 따라 상당히 복잡한 얘기가 된다. 이런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은 문화적 상대주의의 개념이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인 텐데, 아마 오늘날에는 이렇게 단편적인 세계관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중국이 금융시장을 완전히 개방하고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완전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한다. 이런 류의 주장은 경제가 마치 진공 상태를 가정한 것 마냥, 시장 원리에 모든 걸 맡기면 모든 것이 좋을 것이라는 얘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경제학은 국내외의 정치적 역학 관계에서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다. 동북아에서 경제 개발의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는 일본, 한국, 대만, 그리고 중국은 국가 주도의 경제 개발 전략을 구사해 수십 년 동안 연 10% 수준의 경제 성장을 거듭해 오늘날 경제 강국으로 거듭났다. 이들은 가족농 기반의 농업을 육성하고, 이어서 제조업 기반의 수출 기업을 전략적으로 키워내 수출 강국으로 거듭났으며, 이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국가가 금융을 효율적으로 통제했다(내 생각이 아니라 조 스터드웰의 생각이다).
그러므로 중국의 국가 주도 경제개발 전략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으며, 이제 효력이 다 했다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오히려 소련 붕괴 당시 중국의 거의 2배 수준의 GDP였던 러시아는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받아들였다가 실패했고, 현재 GDP 수준은 중국의 절반 정도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굳이 책 내용을 언급하지 않아도, 최근 미중 무역전쟁 우려를 조장하는 트럼프의 수사가 좋은 예시다.
흔히 상하이, 홍콩 등 해안 지대에 자리한 도시들이 경제 성장을 독점했고 내륙 지방은 여전히 매우 후진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들은 내륙 도시로서 가장 급속한 성장을 구가하는 어얼둬쓰, 충칭 시의 사례를 소개하며 이 통념을 반박한다.
한편으로 성장은 도시에 집중되었고 농촌은 한참 가난을 못 벗어나고 있을 것이라는 통념이 있다. 저자들은 1980년대 초부터 중국 정부가 주민들에게 사업을 장려한 '향진 운동'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장쑤성 화시촌을 예를 들며, 매우 부유한 농촌의 사례 또한 있음을 보여준다. 농촌이 도시에 비해 소득 대비 세수가 높아, 국가 세수에 기여하는 바가 더 크다는 사실을 함께 언급하는 디테일을 챙기며.
이는 대체로 인간 심리의 오류에 기인할 것이다. '화교들은 유대인에 비견할 만큼 상업적 수완이 좋다'는 류의 통념이 이에 속한다. 간단하게 생각해봐도, 중국 인구만큼이나 화교 이민자의 전체 모집단은 타민족 이민자에 비해 규모가 클 것이다. 그렇다면 성공한 화교 사업가의 수는 타민족 사업가보다 더 떠올리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성공하지 못한 화교 이민자의 수가, 성공하지 못한 타민족 이민자의 수에 비해 더 많을 것이라는 사실은 간과한다.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의 전형적인 예다.
이 책을 읽은 계기는 최근 중국 주식 투자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그리고 독서 모임에서 중국 관련서를 읽게 되어서였다. 저자들의 메시지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근거 없는 통념을 좇아 함부로 예단하지 말라' 정도가 될 것 같다. 디테일이 상당히 충실하므로 이렇게 짧게 요약한 글은 내용을 충실히 담아내지 못한다. 앞으로 중국 관련 주제를 접할 때마다, 기회 될 때마다 여러 번 다시 들춰볼 것 같다. 꼭 투자나 경제에 국한해서가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