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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환 Aug 12. 2018

자유로서의 발전

시민의 자유, 민주주의, 정부의 역할

아마티야 센이 쓴 자유로서의 발전을 읽었다. 영어 원제는 Development as Freedom으로, '발전'을 '개발'로 읽으면 내용 전달이 좀더 잘 되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인도 태생이며 후생경제학, 경제윤리, 소득분배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권위자로 1998년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저자의 주장 중 핵심적인 내용을 내 나름대로 풀어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부는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한 도구이며, 인간이 부를 통해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실질적 자유다. 따라서 개발의 목적은 부의 성취 그 자체가 되어서는 안되며, 사회 구성원들의 실질적 자유를 얼마나 개선하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실질적 자유는 그 자체로 개발의 목적이 되어야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부의 성취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즉 실질적 자유의 성취란 그 자체로 마땅히 옳은 일이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부의 성취 또한 자연스럽게 동반한다.
실질적 자유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도구적 자유를 확보해야 한다. 정치적 자유, 경제적 용이성, 사회적 기회, 투명성 보장, 안전 보장. 이 도구적 자유들을 누릴 수 있는 개인들은 실질적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니게 된다. 이 도구적 자유들은 상호작용을 주고 받으며 실질적 자유를 성취시키며, 결과적으로 부의 성취에도 긍정적 기여를 한다. 따라서 어떤 사회의 발전을 논할 때에는 부의 성취 외에도 도구적 자유가 개인들에게 얼마나 보장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저자의 핵심적인 주장은 명료하지만 책 본문이 400페이지가 넘어가는 이유는 논리의 전개가 그만큼 치밀하기 때문이다. 인용하는 문헌은 고대 그리스와 동양의 철학, 근현대 경제학, 진화론, 그외 관련된 모든 분야를 넘나든다. 아는 것이 매우 많음에도 시종일관 겸손하고 차분한 문체로 서술한다. 자신의 논리와 논파하고자 하는 논리 사이에서 균형잡힌 관점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매 순간 유지한다. 경지에 이른 고수의 공력이 느껴진다...



인상 깊었던 대목을 몇 개 짚어 정리해본다.


민주주의를 잘 해야 한다


저자는 '간단히 말해, 민주주의를 제대로 해야한다'고 적었다. 저자가 강조하는 실질적 자유를 달성한 사회의 전형은 민주주의가 발전한 사회다. 저자가 본문에서 논거로 제시한 증거들 중 사뭇 충격적이고 흥미로운 내용들이 있었다. GNP가 낮은 가난한 나라일지라도 민주주의가 발달한 경우에는 기근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 성 불평등이 만연한 나라들의 여아 사망률이 자연 사망률보다 높다는 점 등. 기근, 사망을 실질적 자유의 부재로 인해 초래된 극단적 결과라고 정의한다면, 이와 같은 부자유는 민주주의를 잘 함으로써 충분히 완화될 수 있다.

심지어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하지 않은 나라의 경우에도, 야당의 정부 비판 기능이 살아 있는 경우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다. 민주화 이전의 한국이 좋은 예다.



불평등의 문제를 소득 불평등으로 환원하는 것은 오류다


저자에 따르면 불평등은 소득 외에도 실질적 자유의 다른 요소들에 의해 더욱 심화되거나 완화된다. 미국의 흑인들이 인도 케랄라 주의 인도인들에 비해 1인당 GDP는 높지만 기대여명이 낮다는 사실은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좋은 사례다.



애덤 스미스를 왜곡하지 말라


책 감수자에 따르면 저자는 애덤 스미스를 자신의 지적 영웅으로 여기는 듯 하다. 저자는 애덤 스미스의 진의를 독자들에게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사실 경제학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이 책을 읽으며 새로 알게 된 사실이 많았다.


시장 만능주의와 관련하여, 애덤 스미스는 시장의 효율성을 강조했으나 전적으로 긍정하지는 않았다. 하나만 예를 들면, 스미스는 국가가 이자의 최대 상한에 대해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규제가 없을 경우 낭비자와 투기꾼이 대출을 독점하고, 이로 인해 실제로 자본이 필요한 생산활동에 자금이 공급되지 못하게 되는 것을 우려했다. 즉, 근시안적인 동기로 사적 이익을 추구한 결과 나타날 수 있는 사회적 손실을 우려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애덤 스미스는 시장의 효율성을 긍정하면서도 부정적인 역효과에 대해서도 우려를 보이는 균형을 유지했지만, 후대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스미스의 주장 중 자신에게 유리한 내용만 인용해대는 통에 스미스의 진의가 심각하게 왜곡되어 왔으며, 이를 매우 안타까워 한다. 아는 것이 많지 않아 깊게 공감하진 못하나, 기회가 된다면 국부론을 한번 읽어 스미스의 생각을 이해해보고 싶다.



마무리 하며, 책을 읽고 생각한 점을 다시 몇 자 적어본다.


한국의 현대사에 대한 단상


센의 주장을 군사독재 시절 한국의 현대사에 대입하면 다소 불편한 심경이 들 수 있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라 칭하는 한국의 고도성장은, 한국 사회의 실질적 자유가 노골적으로 억압받았던 60~80년대 군사독재 시절 이뤄졌다. 그렇다면 한국은 국민들의 실질적 자유를 찍어 누르면서도 유례없는 경제 개발에 성공한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뭔가 불편하다. 센의 주장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증 사례가 아닌가?


이 불편함과 관련하여, 책의 맨 앞에 있는 해제는 1985년 하버드 유학 당시 센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논쟁을 벌였던 감수자의 일화를 소개한다. '착취도 당하지 못하는 비참함은 착취당하는 비참함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더하다'는 인용구를 덧붙이며. 후일 감수자는 센이 공공정책과 기아에 대한 책을 집필할 때, 민주화와 사회 정의를 위한 저항과 투쟁이 박 정권의 타락을 막고 어느 정도의 진보성을 지켜주는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으며, 센은 그 내용을 흔쾌히 책에 반영했다고 한다. 센이 1999년에 쓴 이 책은 이런 생각들이 모두 반영된 결과를 담고 있다.


결론적으로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센의 논리와 배치되지 않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이 설명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독재정권은 사회 구성원의 실질적 자유를 억압했다. 센이 주장한 5개 도구적 자유 중, 특히 정치적 자유와 투명성 보장, 경제적 용이성을 크게 억압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보통 교육, 공적 의료보험, 치안 등의 제도를 잘 구축해 사회적 기회와 안전 보장이라는 도구적 자유를 제공했으며, 경제적 용이성 또한 점차 개선되어 갔다. 또한 시민사회와 야당의 지속적인 저항에 의해 정치적 자유와 투명성 보장 또한 점차 개선해온 결과 마침내 민주 정부가 들어설 수 있었을 것이다. 2018년의 한국은 상당한 수준의 부와 실질적 자유를 모두 성취했다. 물론 성취한 부의 규모에 걸맞지 않는 복지 제도, 부의 불평등과 같은 문제는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한편으로, 한국 경제 개발의 특수성은 센의 생각보다는 조 스터드웰의 생각으로 더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조 스터드웰은 자작농 육성, 수출 제조기업 육성, 금융 통제의 세 요인으로 동아시아 경제강국의 부상을 설명했다. 도덕철학에서 시작해 결론까지 자유의 궁극적인 당위성을 설파한 센과 달리, 스터드웰은 도덕은 논외로 제쳐두고 경제성장의 과정 그 자체에 집중했다. 문제를 더 잘게 쪼개 다루니 더 명쾌한 설명이 나올 수 있다. 도덕을 제껴놓으니 논리적으로 책임져야할 내용도 훨씬 가볍다. 때론 일반 이론보다 작은 이론이 더 간명하다.



현재의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최근 책을 읽고 생각할수록 계속 맞닥뜨리는 생각이 있다. 21세기 현재에도, 미래에도, 과연 정치권력이 경제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가? 민주주의는 자본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가? 민주주의 외에 대안이 없다지만, 실효성이 없는 제도가 언제까지 유일무이한 대안일 수 있는가?


책을 덮으며 자연스럽게, 센의 처방은 지금도 유효한가, 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센의 처방을 실행할 수 있는 방법론은 민주주의를 잘 하는 것이다. 삼권 분립을 잘 하고, 제도와 기구를 잘 만들고, 올바른 지도자를 선출하고,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실질적 자유를 보장해 공공선의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다. 과연 얼마나 가능할까?


본질적인 문제는, 민주주의는 국경 안에서만 작동한다는 점이다. 국가는 세금을 걷고 집행함으로써 공공선을 실천한다. 국가가 개인에게 보장하는 실질적 자유도 세금을 걷어서 집행함으로써 구현된다. 경북 영천의 농민이 서울 강남구 주민과 동등한 수준의 국가 의료복지를 누리게 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렇다면 짐바브웨 국민의 실질적 자유가 한국민의 수준에 근접하는 날은 언제 올 것인가? 국경 밖에서는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으므로 기약이 없다. 세계 각국 정부가 모두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하는 것이 국제 관계의 전제 조건이라면, 빈국의 국민이 선진국과 같은 수준의 실질적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빈국의 경제 개발이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쳐지지 않는 수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센은 부의 성취와 실질적 자유를 분리해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렇다고 부의 중요성을 평가절하하지도 않았다.


아마도, 센은 빈국이 선진국 수준의 부를 축적할 때까지 빈국민의 실질적 자유가 낮은 수준에 머물러야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 받아 들이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 같다. 빈국민의 자유가 선진국에 비해 더 열악한 것이 기정 사실이라면, 오히려 당장 개선해야 할 부자유들이 더 명확하므로 공공의 합의에 도달하기 쉬울 것이며, 그로 인해 얻는 실질적 자유의 개선과 공공의 효용 또한 더 클 것이라고 설파할 것이다. 왠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한편으로 글로벌 공룡 기업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구글, 나이키, GM은 한국 정부의 통제 밖에 있다. GM이 한국에서 철수하면 밥그릇이 걸려있는 사람들의 실질적 자유는 위협받는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미국의 GM본사를 강제할 수 없으므로, 한국 정부는 GM과 협상을 해야 한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노조는 적극적인 정치 참여의 자유를 잘 행사하는 것 같이 보이는데, 이들은 한국 정부와 여론을 압박해 밥그릇을 지켜내는데 어느 정도는 성공을 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밥그릇을 지키지 못한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밥그릇을 잃은 사람들의 실질적 자유를 보장하는 것 또한 국가의 역할이므로, 세금을 투입해서 필요한 일들을 할 것이다...


여기에서 다시 한번 빈국과 부국의 명운이 갈린다. 빈국의 정부는 단기적인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현금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할 것이다. 부국에 비해 경제적 변동성에 더 취약하며 글로벌 공룡 기업이 흔들면 더 심하게 흔들릴 것이다. 그럼 빈국은 누가 흔들면 흔드는대로 계속 흔들리고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빈국민의 실질적 자유는 계속 그렇게 위협받아야만 하는가?


결국 다시, 앞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빈국은 선진국에 비해 실질적 자유의 수준이 명확하게 낮다. 그러므로 더 시급하게 개선해야 하고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사안들이 많다. 그러므로 형편이 좋지 않은 것에 낙담하지 말고 할 일을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구성원의 실질적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민주주의를 더 잘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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