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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환 Sep 09. 2018

원칙

레이 달리오가 전하는 인생과 일의 원칙. 인공지능, 연역과 귀납.

레이 달리오, 이 시대 가장 위대한 투자자이자 기업가. 1975년 방 두 개짜리 아파트에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를 설립해 40년 만에 세계 최대 규모의 헤지펀드로 성장시킨 사람. 저자가 이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아래 동영상에서 저자의 육성으로 확인할 수 있듯, 그의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던 원칙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특별하고 대단해서가 아니라, 일과 삶의 원칙을 잘 세우고 실천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독자들도 자기 자신의 좋은 원칙을 세우고 성공적인 삶을 살기를 바라며.


동영상 : 레이 달리오가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는 인사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간결하지만 다 읽고 글로 정리하기까지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렸다. 난 서평을 쓸때 대개 책 내용을 요약하고 내 생각을 덧붙이는 형식을 취하는데, 저자의 공력과 책 내용에 깊이가 있을수록 내용 요약이 어렵거나, 요약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 되어 버린다. 이 책의 경우도 그러하다...


역시 짧은 글 몇 줄로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하는 일은 어려울 것 같으므로, 읽으면서 내 나름으로 느낀 인상적인 대목들 위주로 적어보기로 한다.



기계 비유


이 책의 전반에 걸쳐 드러나는 저자의 독특하고 재미있는 관점이 있다. 저자는 현상을 기계로, 자신을 기계의 설계자이자 기계를 작동하는 노동자로 바라보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이 관점은 저자가 2013년에 유튜브에 공개한 동영상 How the Economic Machine Works 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다시 말해 저자는 경제, 기업, 시장 등 모든 현상과 사람을 '기계' 비유로 이해할 수 있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현상을 기계로 이해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관점은 대부분의 현상을 시스템, 즉 특정한 인과법칙에 의해 작동하는 구조물로 이해할 수 있고, 이를 이해하면 자신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도록 설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이런 관점 자체는 과거 철학자, 신경생리학자, 공학자, 심리학자들에 의해 꾸준히 제기되어 오늘날의 인공지능으로 이어지고 있으나, 학자들이 이론 논증을 통해 이 생각을 발전시켜온 것과 달리 저자는 자신의 삶을 통해 이 생각을 체화한 것으로 보인다.


세상을 특정 인과법칙에 의해 작동하는 기계장치로 바라본다면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 기계를 작동하는 인과법칙을 이해하고, 이를 이용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규칙을 설계하는 것이다. 내가 이해한 바대로 다소 거칠게 표현하면, 삶이라는 기계 장치에 지배당하지 않고 이를 효과적으로 이용해 원하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저자가 스스로 설계한 규칙이 바로 원칙(Principles)이다.


저자의 이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컴퓨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경제라는 기계장치를 작동하는 인과법칙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이 규칙을 'what if  then else if~'와 같은 논리연산으로 표현할 수 있다. 경제 기계가 작동할 수 있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컴퓨터에 입력해 그 예상 결과를 계산하도록 하고, 자신이 스스로 추론한 결과와 비교하면, 실수할 가능성을 크게 낮출 수 있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다음은 본문 발췌 (86페이지)


이 가운데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내게 생각하는 법을 알도록 도와준 컴퓨터였다. 컴퓨터가 없었다면 브리지워터는 지금처럼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중에 퍼스널 컴퓨터로 알려진 소형 컴퓨터는 1970년대 후반에 시장에 출시됐다. 나는 계량경제학자들처럼 컴퓨터를 활용했고,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분석하기 위해 경제 데이터에 통계와 컴퓨터의 연산 능력을 활용했다. 1981년 12월에 한 논문에서 주장한 것처럼 나는 "이론적으로 세계의 모든 사실을 입력해 처리할 수 있는 컴퓨터가 있다면, 그리고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것 사이의 관계를 수학적으로 표현하는 완벽한 프로그램이 있다면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믿었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인공 지능


앞에서 소개한 저자의 생각은 컴퓨터 과학의 선구자들이 공유했던 이른바 '일반 연산 기계장치' 라는 개념과 정확히 일치한다. 2018년 현재 각광받고 있는 인공지능과 연결되는 개념이다. 다만 저자는 인공지능에 대한 맹신에는 주의를 표한다. 인공지능, 컴퓨터를 이용해 인간의 지능을 모사하는 방법론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요즘 각광받는 딥러닝 같은 방법들의 취약점에 대한 경고로 해석할 수 있다. 다음은 본문 발췌 (300페이지)


나는 사용자들이 인공지능에 대해 깊이 이해하지 못한 채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이 만들어낸 알고리즘이 추정한 인과관계를 받아들이는 (더 나쁜 것은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경우에 인공지능의 위험성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에 앞서 용어들을 분명하게 정리하고 싶다.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은 완전히 다른 용어인데, 일반적으로 유사어로 받아들여진다. 나는 컴퓨터를 활용하는 의사결정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 모방 (Mimicking),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이라는 세 가지 유형으로 폭넓게 분류하고 있다(이것은 기술 세계에서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분류 방식이다).

전문가 시스템은 브리지워터에서 사용하는 것이다. 인과관계에 대한 논리적 이해에 기초한 기준들을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다른 환경에서 각각의 시나리오들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하지만 컴퓨터들은 패턴을 관찰한 다음 그 이면에 있는 논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의사결정에 적용할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을 모방(Mimicking)이라고 부른다. 모방은 변하지 않는 규칙이 지배하는 게임처럼 동일한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면서 잘 변하지 않을 때 효과적이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상황은 변하고, 그 결과 모방 시스템은 쉽게 현실과 괴리된다.
최근 기계학습의 핵심은 데이터 마이닝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데이터 마이닝은 강력한 컴퓨터들이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소화하고, 유형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런 접근법은 인기가 있지만, 미래가 과거와 다를 때 위험에 노출된다. 기계학습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동반하지 않고 만들어진 투자 시스템은 위험하다...
...깊은 지식이 없다면 당신은 과거에 발생했던 일이 정말로 가치 있는 것인지도 알지 못할 것이다. 설사 가치가 있다고 해도 그 가치가 사라졌는지, 그렇지 않은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모방이나 데이터 마이닝이 쓸모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나는 어떤 일들의 미래 환경과 범위가 과거와 비슷하다면 모방 시스템과 데이터 마이닝은 의사결정 과정에 매우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막강한 컴퓨터 연산 능력은 가능한 모든 변수를 고려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훌륭한 체스 선수들이 특정 환경에서 말을 어떻게 움직였는지 분석하거나, 외과의사의 탁월한 수술 방법을 연구함으로써 체스 게임이나 수술에 활용되는 가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1997년에 딥 블루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이런 기계학습을 이용해 세계 최고의 체스 선수인 가리 카스파로프를 이겼다. 하지만 이런 접근법은 미래가 과거와 다른 경우 그리고 당신이 인과관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경우에는 실패한다. 이런 인과관계에 대한 이해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실수할 때 나는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가 가장 대표적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미래가 과거와 비슷할 것이라고 가정했다.


나는 직업으로 데이터 분석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 대목을 좀 더 집중해서 읽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저자가 쉽게 풀어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인공지능을 작동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전문가 시스템과 데이터 마이닝은 작동 기제가 전혀 다르다


전문가 시스템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의 연역추론을 논리 연산으로 구현한 방법이다. 논리적 추론에 바탕한 인과관계를 프로그램으로 구현한 것이다.


데이터마이닝(혹은 머신러닝, 딥러닝)은 과거에 발생한 사건들의 데이터를 수집해 이 데이터에서 관찰되는 패턴을 알고리즘에 학습시키고, 새로운 데이터가 주어졌을 때 과거 데이터의 연장선상에서 미래의 패턴을 예측하는 것이다.


저자는 데이터마이닝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남용하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다.


이 대목에서 또 자연스럽게 생각의 흐름이 연역추론과 귀납추론의 대비로 이어진다.


연역추론은 인과관계 자체에 집중하기 때문에 경험적 증거가 필요없다. 귀납추론은 경험적 증거로부터 잠재적 인과관계를 뽑아내기 때문에 반증 사례가 하나만 나와도 가설을 뒤집어야 한다.


레이의 관점으로 2008년 금융위기에 대한 시장의 예측 실패를 복기하면, 과거의 패턴에 기반한 미래 예측이 실패한 것이다. 즉,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가짜 인과관계의 영향력을 과대추론했기 때문이다.


한편 이 사건에 대해 나심 탈렙은 조금 다른 맥락에서 블랙스완을 경고했다. 이는 탈렙의 생각으로 풀어보면 운(randomness)을 실력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탈렙의 지적 영웅은 칼 포퍼다. 포퍼는 귀납추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반증가능성을 제안한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과 생각이 만난다...


다시 책으로 돌아오면, 그렇다고 저자가 데이터마이닝에 대해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견해만을 보인 것은 아니다. 저자는 자신의 선호를 밝히지만, 한편으로 솔직하고 개방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다음은 본문 발췌(302페이지)


사실 우리가 이해하는 것에 너무 집착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의식적인 사고는 이해의 한 부분일 뿐이다. 우리가 변화를 위한 공식을 만들고, 이것을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기 위해 활용하는 것만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해하지 못하는 알고리즘에 의존하는 것보다 인과관계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교육적 가치와 즐거움이 훨씬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이런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이 낮은 수준의 선호도와 습관일까, 아니면 나의 이성과 논리일까? 나는 잘 모르겠다. 나는 인공지능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이 문제에 대해 탐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나에 대해 연구하는 것도 환영한다).
우리는 컴퓨터가 발견한 이해할 수 없는 인과관계에 점점 더 중요한 결정을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이 가운데 일부는 성공하겠지만 다른 것들은 역효과가 발생할 것이다. 나는 인공지능이 엄청나게 빠르고 놀라운 발전으로 우리를 이끌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우리를 망하게 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느낀다.
우리는 흥미진진하고 위험한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늘 그런 것처럼 나는 이런 현실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것보다 새로운 세계에 대처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 더 낫다고 믿는다.



상당히 많은 분량을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책 내용 중 극히 일부분에 대한 해석만을 다룰 수 있었다. 사실 저자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삶과 일의 원칙이다. 이는 개인 수준의 원칙(2부 삶의 원칙), 이를 확장한 조직 수준의 원칙(3부 일의 원칙)으로 구성된다. 자기 계발서로도 매우 훌륭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조직 관리자들도 배울 점이 특히 매우 많다.


특히 조직 관리자들이 꼭 한 번씩 읽어볼 것을 권한다. 늘 반복되는 참사와 같은 무의미하고 비효율적인 회의, 실효성없는 조직 개편, 왜 자신의 조직이 성과를 못내는지 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계기를 줄 것이다. 참고로, 레이 달리오의 브릿지워터는 매우 성공적인 조직 운영 사례로 하버드 등 유명 대학 조직심리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기도 했다.


저자의 원칙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을 직접 읽어야 하므로 내용 요약은 여기서 그만. 다만 몇 가지 키워드를 적어보자면 극단적인 진실 추구, 극단적 투명성, 아이디어 성과주의, (조직과 조직 구성원이라는 기계장치를 효과적으로 작동시키기 위해 도와주는) 좋은 도구들의 활용 등이 있다. 사실 나도 아직 다 이해하지 못했고 흉내라도 내는 것은 먼 미래가 될 것이므로, 원칙 목록은 생각이 날 때마다 다시 들춰보며 다시 생각할 것이다.





마무리 하며


대가의 책을 읽고 쓰자니 점점 내 밑천의 한계를 느낀다. '서평자의 자질이 매우 뛰어난 수준이 아니라면, 서평은 서평자의 수준을 드러낼 뿐'이라는 탈렙의 말이 귓속에 맴돈다...


또 한편으로 프로그래밍 스킬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야겠다는 생각을 다잡게 되었다. 하루의 시간이 한정적이므로 책읽고 글쓰기와 코딩 간에는 제로섬의 관계가 존재하며 나는 책읽기를 더 좋아하지만, 책을 읽은 뒤 컴퓨터를 활용하는 의사결정의 강력함을 새삼, 재차 실감하게 되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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