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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환 Sep 16. 2018

어느 주식투자자의 회상

제시 리버모어의 삶을 회상하다

탐욕과 공포를 이해한 추세매매의 선구자, 제시 리버모어의 삶을 그린 전기. 독서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두 번째로 이 책을 읽었다. 지난번 읽었던 게 올해 5월이었으니 네 달만인데, 처음 못지않게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은 마치 소싯적 읽었던 무협소설 마냥 생동감 넘치고 흥미진진하다. 에드윈 르페브르라는 소설가가 쓴 작품이라 필체가 아주 맛깔스럽고 번역도 훌륭한 편이다. 게다가 곳곳에 좋은 교훈을 담고 있다. 이 글에서는 책에서 인상 깊었던 문구들 위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오늘 주식시장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에 일어난 적이 있었고, 앞으로도 다시 일어날 것이다."


1장의 서두에 나오는 문구다.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소극적으로 읽으면 차트를 읽는 것과 같이 과거 패턴을 관찰해 미래의 주가를 예측한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인류가 인간이라는 종의 본성을 유지하는 한, 인간사에 특별나게 새로운 일은 없다'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본성은 리버모어가 강조했듯 무지, 탐욕, 공포, 희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 바로 이 인간 군상들이 바로 주식시장의 참여자라는 얘기다. 리버모어는 인간의 나약한 본성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평생을 연구하고 노력했으며, 다른 참여자들이 본성에 지배당할 때를 이용해 큰돈을 벌었다. 리버모어 철학의 핵심 중 하나가 '단순히 차트를 좇는 것이 아니고 추세가 전환되는 심리적 변곡점을 이용한다'라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주식시장에는 오직 한 가지 면만 있다. 강세론이나 약세론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에 서는 것이다"


3장의 서두에 나오는 문구다. 리버모어는 시장이 상승과 하락으로 큰 추세를 잡을 때 그 추세에 동행해 롱과 숏 포지션을 자유로이 취했다. 꼭 주식 투기에만 적용되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릴 적 나는 가치 논쟁을 좋아했지만 이제는 꼭 해야만 하는 상황이 아니면 잘 하지 않으려 한다. 내가 전반적인 생각의 틀을 가치 지향적 사고에서 가치 중립적 사고로 전환하게 된 계기는 아마도 주식 투자를 시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치 논쟁은 대개 화자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지향점에 기반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자기가 옳다는 결론을 가지고 시작한다. 토론이 끝나도 한쪽의 논리가 다른 쪽의 논리를 설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인간의 도덕적 마음은 자신이 옳다는 생각을 거의 절대로 바꾸지 않으며, 사전에 만들어 놓은 결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논리라는 도구를 사용한다. 그러므로 많은 경우 가치 논쟁은 자신이 '옳다'라는 생각을 서로 우기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가치 논쟁을 하는 자세로 주식시장에 들어가 종목을 고르고 매매를 하면 100%의 확률로 돈을 잃을 것이다. 돈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이 틀릴 것을 인정할 가능성을 언제든 열어둬야 하고, 이익과 손실을 확률과 개연성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말의 뜻을 알면서도 종종 시장과 가치 논쟁을 벌인다. 인간의 본성은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어려워하는데, 이 때문에 시장과 가치 논쟁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리버모어조차도 시장과 싸우다가 네 번이나 파산을 하지 않았던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알았다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기 시작한 것이다!"


4장 말미에 나오는 문구다. 유년 시절 불법 거래소에서 승승장구하던 리버모어는 월스트릿으로 가서 거래를 시작하는데, 초반에 계속 돈을 잃는다. 게임의 규칙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아는 건 전혀 모르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통계학의 관점으로 세상의 모든 변동을 정의하면, 세상에는 특정한 법칙을 따르는 체계적인 변동과 우연으로 움직이는 비체계적인 변동이 있다. 누군가 어떤 패턴을 관찰해 특정한 법칙이 있다고 해석하면, 그는 이 변동을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은 그 변동이 다른 법칙을 따르고 있거나, 그저 우연한 변동일 수도 있다. 어떤 법칙을 잘못 이해하고 이에 기반해 돈을 거는 건, 사이비 종교에 이끌려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것과 같은 행위일 수 있다. 차라리 '나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니까 돈을 걸지 않겠어'라고 하는 게 훨씬 낫지 않은가.



"자네도 알다시피, 지금은 강세장일세"


올드 터키라는 별명을 지닌 노인의 일화 중, 올드 터키가 즐겨 쓰던 대사다. 작가의 묘사가 너무 생동감 있어서 자연스럽게 이 장면을 상상하며 읽었는데, 아마 영어로는 'As you know, this is bull market' 쯤 되지 않았을까 싶다. 메시지는 간단하다. 지금 대세가 강세장이라고 판단하면 소소한 변동성 따윈 무시하고 포지션을 꾹 지킨 채 눌러앉아 있으라는 얘기다. 흔히 '살짝 내렸다가 다시 오를 거니까, 지금 팔았다가 내려갔을 때 다시 사면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강세장에서 팔아버린 주식은 다시 살 기회를 주지 않고 그대로 날아가 버릴 수 있다.


한편으로 작가의 글맛이 참 쏠쏠하다. 터키 노인의 다음 대사는 시적이기까지 하다.


"지금 그 주식을 팔면 나는 포지션을 잃어버릴 겁니다. 그러면 나는 어디에 있게 될까요?"


확률, 통계, 개연성의 관점으로 생각해도 터키 노인에게 동의할 수밖에 없다. 하루하루의 미세한 변동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예측을 포기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은가.


매수를 하기에 주가가 너무 높다거나 매도를 하기에 주가가 너무 낮은 법은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첫 거래 후에 수익이 나지 않았다면 두 번째 거래를 하지 말자.


7장 제목이다. 리버모어의 매매 기법은 수익이 발생하는 포지션을 늘려가는 피라미딩 기법으로, 평가손실이 발생할 때 포지션을 얹어가는 물타기 애버리징의 정반대다. 전혀 다른 투자 철학을 구현하는 방법론이기 때문에 정반대의 전략이 만들어진다. 사실 어느 한쪽의 말도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없지만, 위 문구는 리버모어의 철학을 선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매입한 주식이 하락해 평가 손실이 발생하면 '존버, 손절매, 애버리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의 본성 상 제일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운 게 손절매다. 오히려 충동적으로 가장 넘어가기 쉬운 대안이 애버리징이다. 인간의 마음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애버리징을 했는데도 가격이 계속 내려가면 그 결과는 참혹하다.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별개다. 나 역시 이를 알면서도 애버리징을 하고 나서 결과의 참혹함을 고통스럽게 받아들여야 했다. 이와 같은 상황을 아주 적절히 묘사하는 구절이 책 후반부에 있어 인용해본다.


"내가 아무런 이유 없이 바보 같은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귀중한 교훈이었다. 투자자는 명석한 머리로 그럴듯하게 말하는 매력적인 사람의 설득에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기 위해 나는 수백만 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그 대가가 100만 달러였더라도 나는 아주 분명히 배웠을 것이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내가 수업료를 정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그 신은 교훈을 전달하고 계산서를 제시한다. 그 금액이 얼마이건 간에 지불해야 한다. 나는 내가 얼마나 멍청이가 될 수 있는지 뼈저리게 깨닫고 마무리를 했다. 그리고 퍼시 토마스는 내 삶에서 퇴장했다."


이와 관련하여 10장 말미에 멋진 문구가 있어서 또 인용해본다.


"자연스러운 충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과 거꾸로 가야 한다. 희망을 갖고 싶을 때 두려워해야 하고, 두려움이 느껴질 때 희망을 가져야 한다. 손실이 더 큰 손실로 가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며 수익이 더 큰 수익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해야 한다."



다음 문구는 주식시장의 정보의 과잉과 그 질에 대한 얘기다. 수많은 '전문가'들의 정보가 범람하는 오늘날의 현실이, 리버모어가 살았던 100년 전과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 역시 남의 말을 함부로 믿으면 안 되며, 신중하게 생각해 자기 판단을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는 교훈을 되새기게 된다.


물론 그동안 정기적으로 매일 주식시장을 예측하는 기사들을 읽어왔다. 모든 투자자들이 그렇게 한다. 하지만 그런 기사들 중 상당수는 뜬소문이고, 일부는 고의적인 거짓이며, 나머지는 단순히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다. (8장 중)



다음 문구는 8장에 등장하는데, '기회를 발견한 다음 성급하게 뛰어들지 말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작가가 아주 생동감 있게 묘사한 대목이라 인용해본다.


... 그것은 내게 기회였다. 나는 최대한도까지 공매도했고 그다음에 주식은 다시 반등했다. 그 바람에 나는 빈털터리가 되었다. 판단을 잘했지만 파산했다!
... 자초지종은 이렇다. 나는 앞에 있는 큰 돈더미를 봤다. 그 돈더미 위에는 커다랗게 '원하는 만큼 가져가라'라고 쓴 표시판이 꽂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로렌스 리빙스턴 운송회사'라고 쓰인 손수레가 서 있었다. 내 손에는 새로 산 삽이 쥐어져 있었다...
... 나는 생전 처음 보는 엄청난 돈더미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돈더미에 도착하기 전에 바람이 불어와 나를 쓰러트렸다. 돈더미는 아직 그 자리에 있었지만, 나는 삽을 잃어버렸고 손수레도 사라졌다. 너무 성급하게 너무 빨리 달려갔던 것이다.



다음 문구들은 비밀정보(tip)에 의존하지 말라는 교훈을 전한다.


사람들이 정보를 원하는 것은 지독한 바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희망이 담긴 칵테일에 취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정보를 주는 사람은 정보의 질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 정보를 찾는 사람이 정말 훌륭한 정보가 아니라 아무 정보라도 구하기 때문이다.



마무리하며


이 책은 역시 다시 읽어도 너무 재미있는 책이다. 여러 사람이 추천사에서 극찬을 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야말로 시대를 초월해 영속할 수 있는 투자 시장의 고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내용이 가물가물해질 만할 쯤이 되면 다시 찾아서 읽어야겠다.


다음은 처음 읽었던 당시에 쓴 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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