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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환 Nov 11. 2018

달러 이야기

미국의 역사, 유대 자본과의 공생의 역사

저자의 약력이 사뭇 흥미롭다. 코트라에서 세계 각국의 무역관장을 지내고 정년퇴직 후, 대학원 학위가 없음에도 배재대와 세종대 교수를 역임. 지금까지 베스트셀러인 '유대인 이야기'를 포함 70여 권의 책을 출간. 약력만 봐도 엄청난 내공의 소유자일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저자의 삶은 학습과 실전, 이론과 실제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그 자체였을 것이다.




이 책은 아메리카 신대륙의 개척 과정과 근대 국가 미국의 출현, 유대 금융 자본이 주도한 무역과 상공업의 발달, 그 과정에서 오늘날 기축 통화인 달러가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재미있게 그려낸다. 책을 읽으며 생각한 내용을 적어본다.



1. 제국주의 시대, 콜럼버스가 실수로 발견한 아메리카


1492년, 콜럼버스는 스페인 여왕 이사벨라와 유대인 사회의 후원을 얻어 신대륙을 발견한다. 자신이 발견한 신대륙을 인도라고 믿었던 콜럼버스와 달리 아메리코 베스푸치라는 사람은 신대륙이 인도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후대 사람들은 아메리코의 생각을 존중해 신대륙에 아메리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제국주의의 신대륙 개척을 자극한 직접적인 동인은 후추 등 향신료였다고 한다. 중세 유럽에선 향신료가 특권층의 전유물로 전량을 동방에서의 수입에 의존했기 때문에 같은 무게의 금처럼 귀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콜럼버스가 발견한 아메리카 대륙은 후추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16세기 향료 무역은 동방 항로를 개척한 포르투갈의 차지가 되었다. 아메리카 대륙 동쪽에 상륙한 유럽 탐험가들은 비록 후추를 찾진 못했지만, 당시 비싼 값에 팔렸던 비버 모피를 얻기 위해 서쪽으로 나아간다. 당시 아메리카 원주민은 조가비를 화폐로 사용하고 있었다.


한편으로 영국 청교도와 유대인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에 건너온다. 청교도와 유대교는 근면, 직업윤리, 자본 축적에 대해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미국 자본주의를 태동하게 한다.



2. 미국의 독립과 정치 경제의 발전


1776년, 당시 13개였던 미국 자치주들은 영국 왕실의 착취에 맞서 독립전쟁을 선포한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프랑스의 지원을 얻어냄으로써 미국은 독립을 쟁취한다. 당시 유대인들은 뉴욕과 필라델피아 지역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했다고 하는데, 독립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심지어 유대 자본가들은 독립 전쟁에 막대한 재정 지원을 한 공로로 전후 워싱턴 대통령에게 감사 서한을 받기도 한다.


독립 후 미국 정치 경제의 역사는 한 덩어리로 굴러간다. 북부 공화당은 상공업과 금융자본을 지지 기반으로 하여 연방 정부의 권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남부 민주당은 농장주들을 지지 기반으로 하여 자치주와 개인의 권리를 더 강조하는 입장이었다. 이 대립은 화폐 발권력에 대한 대립으로 이어져, 알렉산더 해밀튼으로 대변되는 공화당은 중앙은행을 설립해 연방정부가 발권력을 통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 반면, 토마스 제퍼슨으로 대변되는 민주당은 다양한 민간은행이 자유롭게 발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나의 미 연방'을 중시한 북부 공화당과 '자치주 자립'을 중시한 남부 민주당의 철학적 대립은 후일 남북 전쟁으로 이어져 북군의 승리로 마무리된다. 물론 그 이면에는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었다.



3. 기회의 땅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자격을 지닌 사람, 즉 백인 남성에게 미국은 진정 기회의 땅이었다. 금광을 개척하고 원주민을 몰아내고 흑인 노예를 잡아다 농장을 일구고 철도와 전신을 깔고 유전을 캐고 자동차와 선박을 대량 생산해 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아메리칸드림이 현실로 이루어져 가는 과정이었다. 로스차일드, 모건 등 유대 자본은 적재적소에 자본을 공급해 산업화를 촉진하고 지배해 나간다.


같은 시기 한국의 선조들은 무얼 하고 있었을까, 궁금해져서 찾아본 내용을 간략하게 적어봤다.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일본군에 의해 조선반도가 파죽지세로 함락

1636년 병자호란 발발. 청군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던 인조, 삼전도에서 항복

1659년 북벌을 준비하던 효종 사망

1659, 1674년 예송논쟁. 남인 - 서인 붕당 정치, 이후 노론 - 소론 대립으로 이어짐

18세기 영정조, 탕평책으로 붕당정치의 폐단을 저지

19세기 안동 김 씨 세도 정치에 이어 대원군의 섭정


아메리카 대륙의 눈부신 발전 과정에 비하면 조선 반도는 거의 존재감이 미미했던 수준으로 보인다. 조선 반도뿐 아니라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이었겠지만. 아메리카 대륙이라는 무궁무진한 신천지를 무대로 개발, 약탈, 착취를 일삼으며 세계 최강대국의 기틀을 잡아갈 수 있었던 미국민은 진정 운이 좋은 사람들이었다. 아메리카 대륙 이민자의 자손으로 태어난 백인 남성은 조선 반도에서 양반으로 태어났던 사람과 비교도 할 수 없는 기회를 손에 넣었던 셈이다. 오늘날의 미국민은 운이 좋았던 선조들의 덕을 톡톡이 누리고 있다. 뭐 조선 반도의 후손들도 20세기 후반 빡센 역사를 지나온 결과 그럭저럭 먹고는 살만한 수준이 되기는 했지만, 미국민처럼 운 좋은 선조들의 덕을 보진 못한 것은 분명하다.



4. 달러 이야기, 그리고 암호화폐


저자에 따르면 기축통화의 역사는 세계 교역을 선도하는 국가의 역사라고 한다. 그 역사는 아테네의 드라크마 은화, 로마 제국의 금화 아우레우스와 은화 데나리온,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금화, 영국의 파운드화, 그리고 미국 달러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한 편으로 화폐의 역사는 실물에 기반한 태환 화폐와 불태환 화폐의 역사로 구분할 수도 있다. 1971년 닉슨 정부가 미국 달러의 금태환을 중지하기 전까지 세계 화폐의 역사는 대체로 실물 기반 화폐였다. 실물 기반 화폐의 왕좌는 그 희소성 덕분에 금이 가장 오랫동안 지위를 누려왔다. 그러나 화폐의 유통이 곧 상거래의 필수 조건임을 감안하면, 실물 화폐의 증가 속도가 경제 발전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때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때문에 자본주의의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순간, 유한성에 근거한 실물 기반 화폐는 그 명운을 다 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또 한 편으로 화폐의 역사는 금권의 역사이다. 화폐는 부와 동일어, 발권력은 금권이다. 미국의 근대사에서 중앙은행의 설립 과정은 금권을 둘러싼 대립의 역사를 보여준다. 막강한 금융 자본과 이를 견제하려는 민주당 정치 세력의 대립이 세기를 이어 계속되었고, 최종 승자는 금융 자본이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은 민간 은행의 연합체로 출범했다. 저자는 서문에서 '민간기구가 달러 발권을 독점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에 대한 판단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라고 적었다. 저자의 말을 다시 풀어보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다수의 민간은행들에게 발권력을 허용했을 때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지는 근대 미국의 역사가 보여주었다. 자유주의 이념의 수호자였던 민주당의 선조들이 민간은행들에게 자유로이 발권력을 허하자, 미처 예견하지 못한 부작용이 뒤따른다. 유동성이 넘쳐나 자산 가치에 버블이 생겨나고,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오고, 수많은 민간화폐와 위폐가 난립해 교환 수단의 지위조차 상실하게 된다. 미국 사회는 이런 혼란을 경험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1913년 연준을 설립하게 된다.


이렇듯 복잡한 역사를 거쳐 현재의 화폐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물론 상당한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다. "불태환 화폐이자 기축통화인 달러를 무한정 찍어낼 수 있는 권한을 민간자본이 독점하고 있는 것이 정당한가?" 최근 각광받은 암호화폐의 열풍 근저에는 이러한 반감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다. 불태환 화폐를 찍어내면 찍어낼수록 화폐의 실질 가치는 감소하는데, 화폐 가치 감소의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암호화폐 진영은 민간기구 연준이 불태환 화폐를 무한정 찍어내는 행위를 도덕적으로 강하게 비판하며 대중의 공감을 얻었다. 나는 암호화폐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한 생각을 더해, 암호화폐 옹호론자들에 대한 기존의 내 반론을 조금 더 다듬어보았다.


첫째. 통제되지 않는 절대권력은 위험하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통제되지 않는 자생적 권력의 난립이다. 가상화폐 옹호론자들의 생각의 원류를 따라 올라가면 미국 민주당의 선조 토마스 제퍼슨이 있다. 제퍼슨과 그의 후예들이 수많은 민간은행들에 발권력을 이양한 결과는 극도의 무질서와 혼란을 초래하고 실패로 마무리됐다. 암호화폐 옹호론자들은 과거와 같은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블록체인이라는 신기술을 통해 위변조나 사기거래를 원천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난 동의하지 못하겠다. 위변조나 사기거래 같은건 근본적으로 신뢰의 문제다. 기술 진보만으로 신뢰를 담보할 수 있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 혹은 고의적인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수많은 대안 화폐의 난립이라는 상황 자체가 초래하는 불신과 무질서는 어찌할 것인가.


둘째. 유한성 문제와 관련하여, 난 화폐가 유한성에 기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화폐를 유한한 부의 저장 수단으로 보는 시각과, 필요에 따라 양을 늘이고 줄일 수 있는 교환 수단으로 보는 시각이 대립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가상화폐 옹호론자들은 2008년 금융 위기를 불러온 것이 달러 발권 남용과 월가의 탐욕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이를 되묻자면, 2008년 금융 위기나 대공황 같은 사태가 벌어졌을 때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유동성을 공급하지 못한다면, 누가 상황을 수습할 수 있을까? 유한성에 기반한 화폐 시스템은 이런 비상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다.


난 이렇게 생각한다. 화폐 체제가 유한성에 기초하건 무제한의 발권력에 기초하건 인간의 투기심은 언제든지 금융시장에 버블을 만들어낼 것이므로, 설령 암호화폐가 법정통화를 대체하는 날이 온다 해도 버블은 다시 생겨나고 터지기를 반복할 것이다. 관건은 이런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조절하고 수습할 것이냐의 문제다.


유한성에 기반한 화폐는 유동성을 공급할 능력이 없다. 여기에 더해 앞서의 결론으로 다시 돌아오면, 이는 공권력의 통제를 받는 절대권력이 필요한 이유이며, 설령 공권력의 통제력이 다소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쳐도 절대권력을 존치시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893년 대공황 때 제이피 모건이 했던 역할을 누군가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좋건 싫건 간에.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비상 상황에서 절대권력이 상황을 수습하지 못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경제적 약자들이다.


마지막. 도덕적 비판이다. 비트코인 보유량 상위 1퍼센트의 사람이 전체 코인의 89퍼센트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운이 좋았고 재빠르게 행동한 극소수의 특권층이 90%의 물량을 깔고 앉아 있는 것은 정당한가? 한 줌 밖에 안 되는 웨일이 무수한 개미들의 법정화폐를 빨아들여 거대한 부를 깔고 앉아 있는 상황은 정의로운 것과는 거리가 멀다. 적어도 그들은 연준, 월가, 유대 자본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암호화폐 유통 시장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그냥 '난 돈 벌고 싶어서 돈 넣었다, 투자 판단은 스스로 내리는 것'이라고 정체성을 명확히 하면 좋겠다. 정의, 도덕, 평등, 뭐 이런 허무맹랑한 가치를 집어넣어서 순진한 사람들을 홀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5. 생각을 마무리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미국과 유대 자본의 역사에 대해 알아볼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저자는 유대인 전문가로 '유대인 이야기'라는 베스트셀러를 출간하기도 했다는데, 이어서 유대인 이야기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다만 나는 특정 인종이나 민족의 역량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관점은 지양하고 싶은데, 기본적으로 호모 사피엔스 종의 유전자가 뭐 별반 다를 것이 있겠냐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냥 한 시대와 역사를 살아온 인간 무리들이 공유했던 생각과 행동 양식이 대를 이어 문화로 계승되었던 정도가 아닐까. 그 후예들이 조선 반도가 아닌 아메리카 대륙에 터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 혹은 그들의 신이 내린 축복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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