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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환 Dec 01. 2018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현대 경제사상의 이해를 위한 입문서

트레바리 클럽의 지난 시즌 독서 목록에서 이 책의 이름을 보고 기억에 넣어 두었던 차에, 회사 서가에서 책을 발견하고 냉큼 집어 들었다. 책의 내용은 어렵지 않아 술술 읽혔지만 어찌어찌하다 보니 다 읽고 글로 정리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요즘 읽고 싶은 책이 많았기 때문이며, 짧은 여행을 몇 차례 다녀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 늦기 전에 책을 읽고 한 생각을 글로 적어 본다. (여행 사진과 글은 다 언제 정리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성격은 부제 '현대 경제사상의 이해를 위한 입문서'가 잘 표현하고 있다. 애덤 스미스, 토마스 맬서스, 데이비드 리카도, 존 스튜어트 밀, 칼 마르크스, 앨프레드 마셜, 존 소스타인 배블런과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로 대표되는 제도학파, 존 메이너드 케인스, 밀턴 프리드먼, 공공선택학파, 합리적 기대 이론으로 이어지는 현대 경제학의 주요 사상의 흐름을 교양서 수준의 쉬운 문체와 예시로 풀어내고 있다. 원서는 1989년, 번역서 초판은 1994년에 출간되었다. 2009년에는 근래 주목받은 행동경제학까지 서술한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나는 1994년 발행본을 읽었다. 빛바랜 책 속 누런 책장에선 묵은 책의 꿉꿉함이 느껴졌다. 뭐 가끔 이렇게 낡은 책을 읽으면서 얻는 즐거움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다만 읽은 뒤엔 필히 비누칠을 해서 손을 씻어야 한다.


이 책은 경제학의 탄생에서 현재까지 이르기까지 경제학과 현실 세계에 주요한 영향을 끼쳤던 사상의 흐름, 즉 경제학의 역사를 다룬다. 출간된 지 근 30년이 된 책이지만 현재의 기준에서 봤을 때 초판의 서술에 수정할 내용은 딱히 없는 것 같다. 만약 그랬다면 2009년 개정판에 초판의 목차를 그대로 유지한 채 행동경제학을 추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1776년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세상에 내놓은 뒤 250년 남짓이 흘렀다. 여기서 30년을 더하건 빼건 경제학이라는 커다란 생각의 흐름의 원류가 뒤집힐리는 없다. 나처럼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처음 경제학에 입문하기에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현대 경제학사라는 방대한 주제를 가벼운 교양서 한 권으로 요약한 책이므로, 이 책을 다시 요약하는 일은 가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냥 책을 읽으면 된다.


책을 읽으며 했던 생각 중 하나만 정리해서 적어보자면, 인간의 생각은 그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시대 안에서만 자유롭다는 점이다. 종종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당대의 지식의 한계점을 뚫고 나가 대담한 생각을 하고 다음 세상을 열었다고 평가받지만, 그들의 생각 또한 당대의 지식 위에서만 출발할 수 있다. 스미스가 분업의 효율성을 논증하기 위해 들었던 핀 공장의 사례는 현대의 스마트 팩토리에 비견하면 실로 귀여운 생각이지 않은가.


또한 그들은 그들 시대의 지식으로 아직 설명되지 않았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때로 창의적인 상상력을 동원해야 했다. 예를 들어 '보이지 않는 손'은 수요자와 공급자의 인센티브가 균형점을 이루는 현상을 설명해 내기 위해 스미스가 창의력을 동원해 발명한 개념이지만, 이게 과학적 설명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당대의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생각은, 그러므로 과거의 위대한 사람들이 했던 생각을 존중하되 맹종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과거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면,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이론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아이돌을 추앙하는 십대 아이들처럼 흥분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젠 세월이 지난 만큼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생각하는 방식도 많이 변했나 보다. 이젠 그 어떤 권위자의 말에도 맹종할 생각이 없다. 한 발 더 나아가면, 이젠 그 어떤 ism에도 따르고 싶은 의사가 없다. 시대정신,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정의에 부합한다면 존중 정도는 해줄 의사는 있다만.


이 다음 경제학 책으로는 몇 년 전 읽었던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를 다시 읽기로 했다. 이 책보다는 더 현대적 관점으로 경제학의 각 사상을 리뷰하고 현실 세계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던 책으로 기억한다. 당시 읽고 나서 글로 적어두지 않아 기억나는 내용이 많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쉽다. 역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뭐, 이제 이 책을 읽고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를 다시 읽으면 또 새로운 즐거움을 얻을 수 있겠지. 그땐 제대로 된 독후감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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