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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환 Dec 12. 2018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

리처드 탈러의 삶과 행동경제학 이야기

저자 리처드 탈러는 2008년 출간된 '넛지'를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개척한 행동경제학은 '인간은 제한적으로만 합리적'이라는 심리학의 관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인간은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는 주류 경제학의 가정을 근간부터 뒤흔들어 놓았다.



저자는 2015년 미국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2017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이젠 경제학 내에서 행동경제학의 위상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음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러나 저자가 처음 이 분야의 연구를 시작한 1970년대에는 사정이 많이 달랐다. 이 책은 저자가 '인간은 합리적 행위자'라는 가정 위에 쓰인 기존 경제학계의 권위와 편견에 맞서 행동경제학이라는, 당시 경제학계 내에서는 이단에 가까웠던 분야를 개척해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


내가 심리학 전공자라는 모집단을 얼마나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난 그저 심리학을 전공하고 생업인의 삶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의 마음으로 이 책을 읽으려 했다. 그리고 이 의도는 성공하지 못한 것 같다. 학위를 마친 지 이제 7년, 그간 심리학에서 많이 멀어진 삶을 살아왔건만 역시 이 책을 그저 중립적으로 읽어내진 못했다. 중립적이라 함은 심리학, 경제학 어디와도 아무런 연을 맺지 않고 살아온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이미 내가 전공 공부를 시작했던 십수 년 전, 보통 수준으로 진지한 심리학도의 모든 생각의 전제는 대략 이러했을 것이다 - '인간은 합리적이라는 근대적 인간관을 갈아엎은 위에서 모든 논의를 시작하자'. 이런 생각을 바탕에 깔고 바라봤을 때 경제학자들은 참으로 머나먼 존재들이었다. 경제학 원론 수업에서 교재로 쓰던 맨큐의 경제학은 수학책만큼이나 따분했다. 아마 입장을 바꿔놓고 보면, 당시에 보통 수준으로 진지한 경제학도들도 비슷한 수준의 낯설음으로 심리학자들을 바라봤을 것이다.


서로 참 낯설고도 먼 사람들, 어릴 적 회고를 적고 보니 책의 줄거리가 자연스레 겹쳐 보인다. 중립 포지션인 사람, 즉 심리학과 경제학 어디와도 관련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이 관전 포인트를 품고 책을 읽으면 읽는 맛을 한층 더할 수 있을 듯싶다. 경제학계의 이단아 탈러가 심리학이라는 듣보잡 무기를 들고 경제학계에 쳐들어가 지극히 이단적인 연구 결과를 내어 놓은지 수십 년, 그 결과 듣보잡으로부터 노벨상 수상자의 지위에 오르기까지의 여정. 저자의 삶에 대한 회고이자, 심리학이 경제학의 변방으로부터 무대 근처까지 진출하는 과정에 대한 생생한 묘사. 이제야 대접을 잘 받고 있다지만, 탈러가 이걸 시작하던 당시에는 정말 가시밭길이었을 것이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학자로서 지적 도전의 삶을 한 평생 추구해 온 저자의 삶에 존중을 표한다.

  

한 편으로, 이 이상 책의 내용을 섣불리 요약하진 않고 싶다. 그 이유는 두 가지쯤 되는 것 같다.


먼저, 책에서 소개하는 인간 심리의 편향과 오류가 그다지 단순하지 않다. 비합리적이고 바보같이 보이는 착각과 행동거지를 책에서 한 두 번 읽고 개념적으로 이해한다 쳐도, 대부분의 보통 사람은 일상으로 돌아오면 다시 늘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며 살아간다. 안다고 해도 정말 아는 게 아니고, 고친다고 쉽게 고쳐지는 것도 아니다. '내가 언제라도 한심한 멍청이가 될 수 있는데,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의 후보에는 이런저런 것들이 있다'는 경구를 마음에 품고 현명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늘 노력하는 정도가 최선이지 않을까. 또한 어느 정도는, 그런 모자란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 인간은 원래 불완전하고 누구나 실수를 저지른다. 실수, 후회, 반성, 성찰, 학습, 이 모두 불완전한 인간의 몫이다. 누구나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서로 포용할 수 있다면, 더 현명해지고 함께 더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심리 상담 전문가를 찾고 싶은 마음이 들면 한 번 찾아가 보는 것도 좋다. 나의 선후배 동기들도 보통 사람들과 다 함께 더불어 먹고살아야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나는 심리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이 책이 다루는 주제에 편파적일 수밖에 없다. 서평이네, 독후감이네, 하고 주저리주저리 적은들 나의 주관적 감상이 들어갈 여지가 너무 다분하다. 그리고 정직하게 말하자면, 심리학 전공자에게 행동경제학은 그다지 재미있지도 않다. 탈러도 본문에서 지적했듯, 심리학자들은 자신의 연구 분야에 관심이 있지 경제학의 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리고 그보다 더 진실에 가까운 얘기는, 이제 나는 심리학도가 아니며 심리학 연구에도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생업인에게 최대의 관심사는 돈 많이 벌고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다. 심리학이라는 지적 유희는 그냥 이따금의 온전한 여가 생활로 남겨두고 싶다.


마지막으로 사족 하나.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 행동과학(Behavioral Science), 행동재무학(Behavioral Finance) 모두 다 좋다. 다만 '행동주의(Behavioralism)'라는 번역은 오역의 소지가 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행동주의 심리학(Behavioral Psychology)라고 하면 번역자의 의도로부터 좀 많이 벗어나게 된다.


심리학에서 행동주의는 20세기 중반 미국에서 유행했던 사조로, 인간의 마음은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되기에는 너무 추상적이고 사변적이므로, 심리학의 연구 대상은 '행동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학파다. 대표적인 개념으로 고전적 조건 형성(파블로프의 개), 조작적 조건 형성(스키너 박스)을 들 수 있다. 실증 과학의 엄밀성과 실용성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나, 인간의 마음 그 자체는 연구대상이 아닌 블랙박스로 치부해버렸다는 점에서 허버트 사이먼, 카네먼 & 트버스키의 지적 전통과는 대립점에 서 있으며, 따라서 행동경제학과도 전혀 결이 다르다. 한 시대를 풍미하고 지나간 유행가, 현재의 관점으로 복기해봐도 '나름의 철학과 격조가 있었던 복고' 정도로 음미할 수는 있겠다. 그러니 번역이나 서평을 하시는 분들께서는 이제 그만, 행동경제학을 언급하면서 '행동주의 심리학' 워딩은 자제를 부탁드립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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