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슈아 그린의 옳고 그름을 읽고 조나단 하이트의 바른 마음을 다시 읽다
올해 초 '바른 마음'을 읽었다. 도덕 심리학자 하이트는 진화심리학의 설명 틀로 인간의 도덕적 마음을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평생의 연구 결과를 해박한 지식과 적절한 비유로 재치 있게 써낸 대중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판적으로 읽기를 포기하면 안 된다(적어도 난 사회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이지 않은가...)
'코끼리와 기수' 비유는 아주 좋았다. 논리는 대체로 직관을 설득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만약 저자에게 동의하기 싫은 어떤 심리학 연구자가 눈을 부릅뜨고 파고든다 한들, 아마 그럭저럭 인정해야 할 것이다. 직관적으로 봐도 사실이 그러하지 않겠는가.
'여섯 개 미각 수용체' 비유도 아주 좋았다. 코끼리와 기수 비유 못지않게 전달력이 좋다. 또한 저자가 평생 수많은 연구를 통해 데이터를 쌓아 놓았을 테니 학계에서 쉽게 허물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최소한 현상의 어떤 부분적인 단면만큼은 제대로 포착하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결론이다. 저자가 책의 말미에서 전하는 메시지를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서로 다르단 걸 인정해라. 진화라는 거대한 흐름 안에선 진보와 보수는 옳거나 그른 것이 아니라 다 그만한 적응적 가치가 있는 것이다. 둘 다 나쁘지 않다. 그러니 그만 싸우고 서로를 존중하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 같은 찜찜함이 느껴진다. 그렇다, 양비론이다. '둘 다 나쁘지 않다. 그러니 그만 싸워라'는 주장은 살짝 뒤집으면 '둘 다 나쁘다. 그러니 그만 싸워라'와 같은 얘기다. 저자가 대중서의 결론으로 양비론을 내민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첫 번째로, 저자가 발을 딛고 선 시대 상황을 생각해봤다. 이 책을 써낸 2012년, 오바마 2기가 시작하던 당시 저자가 미국 사회에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가 '그만 싸워라'였다면 어쩐지 수긍이 될 법도 하다. 자신의 조국이 두 갈래로 찢어져 격렬하게 싸우는 모습을 그만 보고 싶었을 수 있다. 저자의 도덕성 기반 모형에 따르면 '눈먼 진보주의자'는 아니라고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어쩜 도덕성 기반 모형을 평생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6가지 미각 모두에 민감해지려 스스로 노력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
두 번째로, 그가 사회심리학 연구자이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고도 생각해본다. 사회심리학은 사회적 맥락 가운데 놓인 인간의 마음을 '가치중립적'으로 탐구한다. 인간의 도덕적 마음이란 본질적으로 매우 가치 의존적인 현상이지만, 심리학 실험 설계에 집어넣을 땐 가치 같은 건 다 털어내야 한다. 과학자의 가설에는 정치색이 들어갈 수 없다. 가설을 만든 생각의 근원에 그 어떤 개인적 사연이 있건 가설 그 자체는 가치중립성을 담보해야만 한다. 이렇게 사고하도록 훈련받고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연구자라면, 대중서의 결론을 쓸 때 '결벽적으로 중립을 지키고 싶은 동기'를 지니게 될 수 있는 것도 매우 자연스럽다.
세 번째로, 아무런 근거는 없으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욕망이라는 측면에서 의심해보면, '적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대중적인 영예를 안정적으로 오래 누리기 위해서는 적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일신의 출세와 영달에 도움이 된다. 하물며 '둘 다 나쁘지 않다'는 양비론은 그 누구도 공격하지 않는 덕분에 '둘 다 나쁘다'라는 양비론보다도 탁월하다. 물론 이 추론은 그냥 추측일 뿐이다...
자, 그럼 이제 비평을 해보자. 대중서 작가로서 하이트가 미국 사회에 던진 양비론은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우리 사회가 맞서고 있는 증오와 폭력은 하이트가 전하고자 했던 '싸우지 말고 서로 이해해라'로 해결하고 치유할 수 있는가? 최근 조슈아 그린의 '옳고 그름'까지 읽은 뒤의 나의 결론은, '하이트의 처방은 충분하지 않다'이다.
하이트가 적었듯 전통적인 가치나 종교 같은 것들이 적응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해도, 그런 낡은 가치나 비과학적 신념들이 가져오는 부작용은 어찌할 것인가. '오래된 낡은 책에 신이 남자의 갈비뼈 하나를 떼어내 여자를 만들었다고 적혀 있으니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말뼉다귀 같은 말은 2018년 한국에서 더 이상 존중받을 가치가 없다. 이건 교회의 기능적 가치를 존중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이렇게 해야 우리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 이제 우리에겐 이런 게 필요하다. 양비론은 예나 지금이나 원조건 응용이건 실용성이 떨어진다.
위와 같은 맥락에서 조슈아 그린의 처방은 하이트보다 실용적이다. 그린의 메시지는 '이성의 힘을 잘 쓰라'는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도덕 철학자인 그린은 심리학자 하이트보다 한결 과감하게 '존중받을 자격이 없는 부조리엔 맞서라, 현명하게'라고 일갈한다. 난 과학을 믿는 평범한 생업인으로서 그린에게 동의한다.
p.s 하이트의 대중서 Righteous Mind 에 대한 학계의 건전한 비평은 이미 충분히 있었던 것 같다. 뭐 과학계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자정 작용이지 않겠는가. 다음은 System Justification Theory로 유명한 대가 John Jost의 비평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