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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환 Aug 11. 2019

워런 버핏 바이블

자본주의의 이상을 제대로 실천한 자본가

이 책은 버핏이 매년 작성하는 주주서한과, 버크셔 헤서웨이 주총 참석자들과의 대담을 모아 편집한 내용을 담고 있다(기간 - 1991 ~ 2017년). 편집자 리처드 코너스는 2006년부터 워싱턴 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버핏에 관한 강좌를 진행해오고 있는 버핏 신봉자다.


책의 목차는 편집자의 의도대로 시간 순서를 무시하고 세부 주제 별로 구성되어 있다(주식, 채권/외환/파생상품, 기업 인수, 버크셔 기업 문화 등등).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그냥 시간 순으로 구성했으면 세월이 지나며 버핏의 생각이 변해오는 과정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편집자의 생각은 나와는 달랐던 것 같다.




무려 20여 년에 걸친 주주서한과 주총 대담을 담은지라 중복적인 내용이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이는 버핏의 철학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읽으면 될 것 같다. 책 전반에 걸쳐 드러나고 있는 버핏의 투자 철학은 마지막 장 감수자 후기('한국의 워런 버핏은 어디에 계신가요?')가 잘 요약하고 있다. 감수자에 따르면 버핏 투자 스타일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플로트(float)를 활용하여 투자하기를 좋아한다. 이 플로트의 대부분은 보험업 자회사의 지급 준비금으로 구성된다.

2. 우량 기업을 통째로 인수하기를 좋아한다. 오너 경영인으로부터 회사 지분을 100% 인수하고, 경영 자율권을 100% 보장한다.

3. BPS와 내재가치를 중요시한다.


감수자는 이외에도 버핏의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지면 관계상 생략했다고 적었다. 기억 속 책 내용을 더듬으며 내가 이해한 버핏의 투자 철학을 조금 더 풀어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1. 위험 관리에 매우 철저하고 보수적인 기준을 적용한다.


2001년 주주서한을 읽어보면, 버핏은 9/11 테러를 겪은 뒤 자회사인 재보험사 제너럴 리가 대규모 테러에 대한 위험 프리미엄을 지나치게 낮게 책정하고 있었음을 시인한다. 그리고 만일의 위험에 대한 대비를 항상 갖추고 있어야 하며, 이 때문에 약간의 단기 수익을 포기하면서 200억 달러 이상의 재무부 국채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유동성 확보의 원칙은 제너럴 리가  9/11 테러 수습에 대한 보증을 가능하게 했으며,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 금융계를 강타했을 때도 버크셔 헤서웨이가 150억 달러가 넘는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나심 탈렙의 표현을 빌리면 부정적 블랙스완이 터졌을 때, 그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얘기가 되겠다. 발생 가능성이 희박하고 파급효과가 큰 전대미문의 사건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같은 철학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는데, 대처 방법은 전혀 다르다. 버핏의 방법은 막대한 유동성을 항상 보유하는 것이다. 그 유동성의 원천은 다양한 산업군에서 경제적 해자가 뛰어난 기업들을 통째로 사들여 지속적인 현금흐름을 창출하고, 플로트를 확보하고, 부채를 사용하지 않고, 보수적인 투자 원칙을 고수하고, 승산이 높은 대상에만 베팅하는 것 등이다.



2. 미국 자본주의의 가치를 열렬히 신뢰하고 낙관한다.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 "미국인들은 참 복 받은 사람들이구나". 버핏이 미국 자본주의에 보내는 무한한 신뢰는 그가 그저 낙관적인 성격의 소유자이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그는 미국 자본주의의 이상을 진심으로 신뢰하며 이를 자신의 투자에서 실천하고 있다. 버핏은  2011년 연차보고서에 이렇게 적었다


이렇게  되면 전문가들은 급락하는 실업률을 보면서 놀랄 것입니다. 이들은 1776년 이후 항상 옳았던 사실을 다시 깨달을 것입니다. 미국의 전성기는 시작되지도 않았다는 사실 말입니다.


자본주의는 자본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건강하게 작동한다면 세상은 언제나 더 생산적인 방향으로 진보해갈 것이다.


19세기 이후 미국은 자본주의를 가장 잘 꽃 피울 수 있는 환경에서 번영을 거듭했다. 건국 초기부터 구성원의 자유와 책임이라는 가치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민주적 정치 제도를 발전시켜 왔다. 남북 전쟁 당시 미국은 세계 최대 규모였던 100만 명의 군대를 육성하여 총력전에 이용한 뒤, 종전 1년 반 만에 6만 5천 명만 남기고 모두 해산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경제 발전에 집중해 자본주의를 고도로 발전시켜 나갔다. 두 번의 세계 대전을 지나며 세계 최강대국의 지위에 오른 미국은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었을 것이다. 미국의 기업가들은 인구 수억 명과 세계 최대의 자본을 소유한 최강대국에서 자본주의의 과실을 독보적으로 키워갈 수 있었다. 20세기 초반에 미국 중산층 백인 가정에서 태어난 버핏은, 21세기에도 미국 자본주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진심으로 신뢰하고 낙관한다. 세계 최대의 자본가가 여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이 진정 부럽다.



3. 기본적 가치와 원칙을 강조하고 끈질기게 고수한다.


다른 투자 대가들과 다르게, 버핏의 철학은 일반적인 '투자자'의 관점을 초월하는 면모를 보여준다. 버핏은 피인수 기업 경영진과 버크셔의 주주들을 '동업자'라 칭한다. 피인수 기업의 경영진에게 최대한의 권한을 위임하고 자율성을 보장하며, 그들이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려 최선을 다한다. 버크셔 주주의 99%는 배당금을 지급하지 말고 재투자에 사용하라고 한다. 이건 다른 일반적인 회사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버크셔 헤서웨이에는 정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주주들은 진심으로 자신들을 버크셔의 소유주이자 버핏의 동업자라고 믿는 듯이 보인다. 버핏도 주주서한에서 버크셔의 문화를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고, 책 편집자도 버크셔의 기업 문화를 모아서 따로 한 장을 할애하고 있다(7장). 버크셔 헤서웨이의 문화란 대체 무엇일까.


내 생각에 버크셔의 문화는 아주 기본적이지만 대체로 다른 사람들이 무시하거나 잊고 사는 중요한 가치들에 대한 강조와 지속적 실천에서 나오는 것 같다. 자율과 책임, 신뢰, 원칙, 공정함, 명예 같은 것들 말이다. 다음의 내용을 종합하면 이런 가치들로 수렴시킬 수 있을 것이다.


- 버핏은 버크셔의 인수 기준에 부합하는 초우량 기업들을 우호적으로 인수하고, 경영진을 그대로 일에만 집중하게 한다.

- 어떠한 악재가 닥쳐도 대비할 수 있는 유동성을 항상 보유한다.

- 성과에 공정하게 보상한다.

- 주주, 경영진, 노동자의 이익을 일치시키 시스템을 설계하고, 일관성 있게 실천하고 있다.


'주주-경영진-노동자의 가치를 일치시킨다'는 점이 특히 중요하지만 실천하기는 정말 어려운 대목이라고 생각되어 조금 더 풀어서 적어본다. 버핏의 자산 99%가 버크셔 헤서웨이 주식이라는 점에서, 그의 자산 포지션은 언제나 주주들과 일치한다. 피인수 기업 경영진의 자율성을 보장함으로써 상호 신뢰를 이끌어내고, 버크셔의 이익에 최대한 기여할 수 있게 한다. 노동자에게 공정한 성과 보상을 함으로써 버크셔의 지속적 이익에 기여할 수 있게 한다.


이렇게 주주-경영진-노동자 가치의 일치를 지향할 수 있는 기업의 다른 사례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이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자율과 책임과 존중과 상호성의 문화가 고도로 자리 잡은 사회의 매우 성숙한 기업이어야 가능한 일이다. 미국에도 이런 사례는 버크셔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참으로 부럽다. 한국에는 이런 회사가 언제쯤 나올 수 있을까...



생각을 마무리하며.


훗날 역사는 버핏을 어떻게 평가할까. 대략 다음과 같은 수식어가 붙지 않을까 싶다.


자본주의의 이상을 제대로 실천한 자본가. 세계 최대의 거부였지만 검소했고, 박식하고 지혜로웠지만 겸손했고 평생을 공부 기계로 살았던, 자본주의의 이상을 긍정했지만 어두운 면에 대한 고민 또한 놓치지 않았고, 그 실천으로 재산의 99%를 사회에 돌려주고 간, 유쾌하고 긍정적이었던 멋쟁이 할아버지.


멋진 사람이다. 이런 자본가를 가진 미국 사회가 진심으로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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