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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환 Oct 09. 2019

불평등의 세대

기득권이 된 386, 다른 세대와 연대할 수 있을까.

저자는 미국 시카고대, 유타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미국 사회학회지 부편집장을 역임한 뒤, 한국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 사회의 불평등이라는 주제를 기존 학계의 주된 설명 틀인 계급이 아닌, '세대'라는 설명 틀로 조망한다. 저자의 주장을 단순화해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1. 386 세대는 사회 각계에서 산업화 세대(30년대 생)의 기득권을 몰아내며 권력과 부를 독점했다. 그러나 기득권이 된 386은 포스트 386세대에게 민주화와 경제 성장의 과실을 공정하게 분배하지 않았다. 포스트 386 세대는 경제, 정치 권력 모두에서 배제되고 있다.
2. 386의 권력 독점 기저에는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응집력 있게 구축된 학벌, 노동조합 네트워크가 있다. 97년 금융위기와 세계화의 물결에서 산업화 세대가 정리 해고될 때, 대리-과장급이던 386은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386은 노동유연화에서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똘똘 뭉쳤고, 정규직과 노조라는 울타리를 쌓으며 재벌 대기업과 타협했다. 이 울타리는 후세대에게는 양질의 일자리에 대한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진입에 성공한 이들도 386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의 임금에 만족해야 한다.
3. 산업화 세대와 386 세대에게는 한국의 고도성장에 편승해 급속도로 자산을 증식할 기회가 있었다. 자산 증식 기회의 불평등은 세대 간 불평등과 후세대의 세대 내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산업화 세대 내에서 벌어진 승자와 패자의 양극화는 포스트 386 세대의 수저로 상속되어 세대 내 불평등을 낳았다. 현재 50대가 된 386도 같은 작업을 진행 중이며, 후세대의 세대 내 불평등을 더욱 심화할 것이다.
4. 이제 사회 각계에서 조직의 상층부가 된 386은, 동아시아 사회 특유의 위계구조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며 사회의 자원을 독점하고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적 위계 사회는 공정성과 효율성 모두에서 지속 가능하지 않다. 기술혁신과 글로벌 무한 경쟁의 시대에서, 연공제를 타파하고 능력주의를 도입하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기업은 생존이 어렵다. 
5. 386에게 자신들의 기득권을 스스로 내려놓기를 기대하기란 어려우므로, 후세대는 스스로 조직화된 정치적 행동으로 실력 행사를 해야 한다. 
6. 세대 불평등을 해소하고 세대 간 연대를 위한 방안으로 1) 386세대의 2차 희생(양보)과, 2) 고용과 훈련 안전망의 확대를 제시한다.


이 책의 중심 변수는 '세대'다. 심리학을 전공한 나에게, 사회 구조나 거시 변수를 이용한 분석은 이론적, 방법론적으로 호소력이 강하지는 않다. 다만, 이 책의 주장 자체는 매우 직관적이고 호소력이 있었다. 사실 평생을 살아오며 계속 느껴왔던 질문들에 대한 사이다 같은 대답이었다. 


서른이 넘도록 철이 들지 않았던 나는 뒤늦게야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이력서를 내며 광탈당했던 경험에서, 한국 사회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체감했다. 당시 나의 경험은 울타리 안에서 한 번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가려는 것을 거부당한 자의 좌절과도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한편 사회에서 겪어온 조직 상층부의 사람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종종 했던 것 같다. '저 사람들은 참 편하게 사네. 운이 좋은 세대구나. 근데 아마 본인들이 운이 좋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 듯이 말하고 행동하는구나'


어린 시절 내가 가지고 있던 386에 대한 냉소는 대략 이러했다. 학교 다닐 때 화염병 던지면서 세상을 바꾸자고 부르짖었고, 그런 시대적 소명을 수행하는 와중에 학업을 태만히 하며 막걸리 마시는 일탈은 허락받은 세대. 졸업 후 별다른 어려움 없이 굴지의 대기업을 포함한 양질의 일자리를 차지할 기회를 누렸고, 금융위기 때 윗세대들 날아갈 때 살아남아 조직의 상층부를 차지했고, 2000년대 정보 혁명과 정치 혁명의 기회를 움켜잡을 수 있었던 사람들. 어렵사리 취업에 성공해 바닥부터 기고 있는 현재의 젊은 세대들에게 '뭘 그 정도 가지고 죽는소릴 하냐, 우리 땐 훨씬 더 했는데'라든가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말을 무심히 던질 수 있는 사람들. 그런데 정작 겪어보면 나의 세대에 비해 그다지 똑똑하지도 성실하지도 않은 사람들. 


이 책은 위에 내가 적은 것과 같은 불만에 대한 사회학자의 답변과도 같았다. 대중서이지만 이론적, 방법론적 엄밀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며 체계적인 데이터도 제시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흥미로운 데이터는 세대 불평등의 증거로 소득, 근속연수, 자산, 주요 기업 임원 비율, 국회의원 수를 제시한 것과, 임원 중 고 연령자 비율이 높은 기업일수록 자본수익률이 낮다는 것이었다. 물론 여기에 대해 모든 학자가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고, 학계에서 학자 간의 이론 논쟁은 얼마든지 뒤집고 뒤집히기를 반복할 수 있지만, 대중을 설득하는 데는 이 정도 데이터도 충분히 호소력이 있다.


저자는 세대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몇 가지의 대안을 제시했다. 분배와 복지 정책에서 세대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다. 그러나 기득권 주류인 386이 스스로 양보할 가능성은 희박하니 젊은 세대 스스로가 정치적 행동을 해야 한다고 적었다. 동의한다. 그럼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현재 정치권은 세대 불평등 문제에 주목하고 있는가? 최소한 인지라도 하고 있는가?'


아쉽게도 조국 정국으로 몇 달째 정치권이 마비되고 국론이 분열되어 있는 지금, 세대 불평등 문제에 주목하는 정치인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 조국 정국이 수습된 뒤엔 이 문제가 주목받을 가능성이 있을까?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조국 정국 이전에도 '세대 갈등'을 전면에 내세운 정당이나 정치인이 없었던 것으로 봐서는. 나이브한 생각으로, 정치인이 세대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유는 그들 자신이 386 이 주축이 된 기성세대이기 때문이다. 공감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복지와 분배에 더 민감한, 이른바 진보진영에 속하는 정치인들 사이에서 이른바 '관점의 전환'이 일어나기를 기대해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 같다. 저자에 따르면 세대 불평등론에 대해 기존 사회학 이론의 주류인 계급론은 쉽게 동의하지 못하는 것 같다(마르크스, 막스, 부르디외 등). 과거 경험에 미뤄 보았을 때 정치인들, 그중에서도 특히 왼쪽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공부하고 헌신해왔던 이념에서 탈피하는 생각을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계급 갈등'이라는 틀이 그들의 관점과 사고를 구속하고 있다면, 그걸 세대 갈등으로 뒤집어 생각하고 그에 맞는 정책을 개발하는 걸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저자의 주장이 사회적으로 반향을 얻고, 386이 스스로를 자성하고 다른 세대와 연대할 생각을 하게 되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정치권에서도 청년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는 정치인과 정당이 나오고, 실제로 작동할만한 정책을 개발해주길 기대한다. 청년들은 투표로 응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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