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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예 Dec 01. 2015

펩스-우산의 집

파리의 우산 수리공 인터뷰

마레지구 중심에 위치한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파사쥬 Passage 중의 하나인 파사쥬 드 랑크르 Passage de l'Ancre에 왔다. 이른 아침, 안개 낀 날씨에 어울리는 고즈넉한 분위기가 자못 신비롭기까지 하다. 

이 파사쥬에는 정말 신비로운 장소가 존재한다. 바로 유럽에서도 독특한 우산 수리소인 펩스 PEP'S이다. ‘PEP’은 오베르뉴지방의 은어로 우산을 뜻한다. 거기에 영어식으로 S를 덧붙여 ‘우산의 집’이란 의미이다.

이 ‘우산의 집’에서 자칫 쓰레기통에 버려질 수도 있는 고장난 수많은 우산들이 마법의 손(?)을 통하여 새롭게 태어난다. “그 마법의 손의 주인공인 이 집의 주인은 어떤 사람일까?”하는 궁금증으로 가득 차서 출입문으로 다가갔다. 문 앞에 붙은 “2층 아뜰리에에서 작업중, 벨을 누르시오”라는 푯말을 따라 벨을 누르니 초록색 공방앞치마를 두른 인상 좋은 아저씨가 문을 활짝 열고 맞아 주었다. 띠에리 미에 Thierry Millet - 이 ‘우산의 집’의 주인인 그는 프랑스의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라고도 불리며 뛰어난 기술능력을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공로 훈장 기사장 슈발리에를 수여받기도 하였다.     



나에 대해 소개하자, 최근 에어프랑스 매거진에 자신의 이야기가 실렸다면서 자랑스러워했다. 공통점을 서로 발견하니 더욱 친밀감이 느껴진다.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되었나요?

프랑스 명품가구 브랜드 로쉐보부아(Roche-Bobois)란 회사의 임원으로 있다가 하루아침에 실직하게 되었지. 정말 힘든 시기였어. 스스로는 아직도 가치 있고 능력 있고 실적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우리가 원하는 사람은 당신이 아니야”라고 하는 거야. 조건에 완벽히 부합하는 사람만을 원하는 사회이니 그들에겐 합리적인 방법일 수도 있겠지.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가 나에게 “길을 걷다가 우연히 작은 상점을 하나 발견했는데 그 안에 있는 널 봤어.”라고 하더군. 그 말이 참 마음에 들었고 뭔가 느껴졌어. “그래, 한 번 가보자.”며 그 곳을 갔는데 처음엔 실망했지. ‘우산수리소’라니.. 사라져가는 업종이고 상황을 보니 돈벌이는커녕 문 닫기 일보직전이었어.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발견해야하는 시점이라는 판단이 들었고, 다시 활기를 되찾기 위해 뭔가 해야 한다는 마음에서 도전장을 내밀었지. 인터넷 사이트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10년 전이기 때문에 인터넷 사이트가 막 생길 무렵이라 홍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줬지. 홍보팀에서 일해 왔던 내게 이보다 더 좋은 출발은 없었어! 

모두 첨단을 향해 달려가는 21세기에 구닥다리 같은 수리소란 게 어림이나 있겠어? 그래도 여기 하나 있다우~.



우산수리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우산을 수리하는 데 굳이 의미를 부여한다면 3가지로 얘기할 수 있겠지.


첫째는 새로 우산을 사는 것 보다 수리하는 게 더 저렴하기 때문이야. 그게 바로 수리공의 존재이유지.  

국제화와 과잉생산으로 인해 저렴하게 물품을 살 수 있게 됐지만 1회용 등 질은 떨어지고 소비를 많이 하게 되는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지. 그래서 한편에서는 ‘옛 것’, ‘수리해서 쓰는 것’이 새로운 가치로 주목받게 될 거야.      


둘째는 감성적인 측면인데, 프랑스 시인 라마르틴의 시 끝자락에 나오는 표현 “무생물들이여, 당신들은 영혼이 있나요? Objets inanimes avez-vous donc une ame?”라는 이 문장, 너무 예쁘지 않니? 정확히 우리의 영혼에 애정과 사랑의 힘을 불어 넣어주는 문구지. 옛 물건을 소중하게 여기는 문화를 만들자는 의미가 있어.  

옛 물건을 복원시키는 일은 미래 세대와의 연결고리를 제공해. 이젠 모두 인터넷에 저장되니 사진앨범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 우리 가족의 역사나 조상님은 전혀 없는 거야. 

부모님의 추억이 깃든 물건들을 갖는다는 건 부모님의 이야기와 그 시절의 향수와 함께 살아가게 해주지. 나에겐 중요한 것들이야. 우리 자식들도 내가 죽고 나면 내가 쓰던 거울, 액자 등을 갖고 싶다고 말하는데, 그건 그들이 부모님의 추억을 갖고 싶어 한다는 것이고 나도 그들에게 좋은 상태로 물려주고 싶어.     


세 번째 의미는 생태계를 위해서야. 노점이나 대형마트에서 사서 고장난 우산은 재활용이 안돼. 프랑스에서는 매년 천 이백만에서 천 오백만개의 우산이 버려져 땅속에 묻혀. 나일론, 폴리에스테르, 폴리아미드, 탄소섬유 다 썩지 않는 소재이고 완전히 분해되는 데 1억 5천만년이 필요하다고 해.  

인간은 사라져도 우산은 여전히 지구에 남아 있는 거지. 우리는 쓰레기에서 살게 되겠지. 그렇다면, 우린 대체 뭘 망설이고 있는 걸까? 지혜롭게 좋은 질의 물건을 구매함으로써 소비를 절약하고, 비용을 줄이고, 환경을 덜 오염시키는 건 어떨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너무 손상되어서 고칠 수 없는 우산을 보관해뒀다가 다른 우산을 고칠 때 새롭게 재활용해서 사용하는 거야. 내가 지구와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선물이지. 

나는 매일 우산을 분해해. 분리된 우산의 부품들은 다른 우산을 고칠 때 사용될 수 있어. 

수리해서 재활용하는 것, 이게 바로 펩스의 놀라운 컨셉이야. 우산의 세계에서 이보다 더 나은 컨셉이 있을까?   



우산에 얽힌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을까요?

정말 화려하고 위엄있는 사람들, 실명은 거론할 수 없지만 미국 유명 배우, 프랑스 배우 등의 우산을 내가 고쳤지. 특히 아카데미 프랑세즈 출신인 소설가 모리스 드뤼옹 Maurice Druon과 수다를 떨며 함께 반나절을 내 아뜰리에에서 보낸 적이 있어. 우산 수리공인 나에겐 뜻밖의 사건이었지. 재밌지 않아? 

또 어느 날, 한 신사가 내게 우산을 가져왔어. 프랑스 고급 브랜드의 아름다운 우산이었지. 완전히 수리하고 기쁜 마음이었지. 10년 동안 일하면서 그런 우산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크기도 남달랐고 특별한 우산이었거든. 하지만 그는 찾으러 오지 않았고 그렇게 1년, 2년, 3년이 지났지.. 편지도 보내봤지만 아무 소용없었어. 그래서 따로 보관을 해두었지. 원래 평범한 우산은 1년이 지나도록 찾으러 오지 않으면 고아원에 기부하거든. 4년이 지나도 찾으러 오지 않고 아뜰리에에는 더 이상 자리가 없어서 내 집에 갖다놨지.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부인이 찾아와 “제 오빠의 집에서 우산 수리 보관증을 발견했어요. 저희 오빠는 돌아가셨고 그 우산은 어머니께서 오빠에게 마지막으로 주신 선물이었죠. 혹시 그 우산을 아직도 갖고 계시나요?” 즉시 나는 그게 어떤 우산인지 알아차렸고 “네, 그 우산을 갖고 있어요. 다음주에 찾으러 오시죠.”라고 했어. 인간적으로 정말 예쁜 이야기지 않아?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 부인은 적어도 그 우산을 다시 되찾게 된 것에 대해서 기뻐했단다. 모든 물건은 이렇게 정다운 이야기가 깃들여져 있어.    


에펠탑 우산에 대해서 설명해주세요.

친구들과 즐거운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다들 거나해 있었지. 우리 중에 관광가이드가 한 명 있었는데, 관광객들을 편리하게 안내할 수 있도록 친구들이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했어. ‘프랑스 국기를 건 깃발은 어때?’, ‘아니야, 띠에리가 파란색, 흰색, 빨간색의 우산을 만들어줄거야’, ‘아니야, 띠에리가 에펠탑 모양의 우산을 만들어줄거라구.’ 그 순간 빠밤! 머릿속 아이디어 전구가 켜졌어. 아뜰리에에 와서 도안을 짜고 만들기 시작했지. 지금 이렇게 팔리고 있어. 디자이너 장 뽈 고티에가 에펠탑 우산의 형태를 본 딴 오브제를 최근 그랑 팔레에서 열린 패션쇼에 올리기도 했지. 나의 자랑거리야!   

 


당신의 직업의 의미는요?

수리공은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비천한, 겸손한 직업이기도 하지. 그리고 그 점이 내 마음에 꼭 들어.      


대박! 우산 수리와 관련하여 이렇게 어마어마한 의미와 철학이 있다니! 거기에 아나운서 못지않은 매끄럽고 듣기 편한 언어구사능력. 나는 어느새 이 엘리트 우산수리공(?)의 팬이 되었다.    


동화속의 향기가 풍기는 듯한, 이 작고 따뜻한 상점에서 띠에리씨는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옛날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주듯 인터뷰에 임해주었다. 자신을 따라오라면서 좁은 통로의 계단으로 안내해주었는데 삐걱삐걱하고 마법의 방이 열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2층에 올라서자 정말 마법의 방처럼 비밀이 가득한 작업실이 나타났다. 다양한 우산 부품들... 우산봉, 손잡이, 리테이너, 철핀 등이 즐비했다. “이 나무를 만져봐, 기가 막히지 않아? 얼마나 부드러운지 봐봐.” 한창 수리중이었던 양산이 모네의 그림 속 귀부인의 소유인 것처럼 빛깔, 무늬, 장식이 고급스럽고 정교했다.     



예전에 할머니댁에 자개로 만든 장롱이 하나 있었다. 그 눈부신 화려함이란 신비에 가까운 것이었다. 할머니는 틈이 나면 자개장을 닦아 윤을 내셨다. 이렇게 우리 생활 속에서 귀하게 다루어지고 쓰이던 세간들이 점점 자취를 감추더니 이제는 집 안의 장식으로 또는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물건이 되고 말았다. 우리의 삶이 물질적으로 나아졌다고 하지만 문화적으로는 오히려 메말라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손님들은 똑똑한 사람들’이라는 띠에리 아저씨의 말이 꽤 의미 있게 다가왔다.     


아저씨가 문까지 나와서 한참 동안 배웅해 준다. 나의 미래를 축복해 주고 나의 블로그에 번영을 기원해주면서….    



* PEP'S

Passage de l'Ancre, 223, rue Saint-Martin, 75003 PARIS

Tel +33 (0)1 42 78 11 67 

www.peps-par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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