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책상하나, 그 위에 타자기 한 대,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한 사내, 그의 손은 타자기 위에 올려져 있다. 행인이 멈춰 서서 그에게 한 단어를 불어넣는다. 그러자 그는 무언가를 쓰기 시작한다. 퍼블릭 시인1 앙투안 Antoine이다.
랑뷔토 가에서 우리는 그를 발견할 수 있다. 당신이 주제를 정하면 그 내용을 담는 것은 그의 몫이다. 그가 시를 쓸 동안 곁에 앉아 잠자코 기다리고 있는 이 잠깐의 순간, 당신은 그의 시적 영감이 되고 그는 당신의 시어(詩語)가 되는 것이다.
그를 발견한 뒤 나는 나무 뒤에 섰다. 글을 쓰기 전에 골똘하게 머릿속에 문장을 구사하고 있는 그를 방해할까봐 선뜻 다가가기가 힘들었다. 이윽고 틱!톡!틱!톡! 엔틱 타자기의 경쾌한 타음이 길에 울려 퍼진다. 이 아날로그 로맨티스트의 타자기 소리가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이렇게 우리들이 잊고 살던 아날로그 감성이 어느 젊은 커플의, 엄마와 딸의…. 이 거리의 모든 사람들 마음에 하나둘씩 피어난다. 나도 용기를 내어 그에게 ‘파리’와 내 친구 ‘아델’을 위한 시를 부탁했다.
그의 작업을 마감하고 함께 퐁피두센터 앞 광장에 앉았다. 큰 키에 금발 그리고 파란 눈. 30대의 미소년이랄까? 우린 처음 만나는 사이였지만 어색함 없이 어울렸다. 하늘의 구름도 아름답게 흐르고 있었고 달콤한 맥주도 한 잔 마시며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로 석양이 질 때까지 얘기를 나누었다.
어떻게 이 아이디어를 갖게 됐나요?
2010년 미국 뉴올리언스에 도착한 날, 길에서 시를 쓰는 사람을 봤어. 그를 본 순간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래서 2011년 3월 파리에 들어와서 퍼블릭 시인이 됐지.
퍼블릭 시인의 역할은?
옛날에는 프랑스 전통적으로 문맹자들을 위해서 행정기관에 보내는 공문이나 프로포즈 편지를 대신 작성해주는 퍼블릭 작가가 존재했었어. 그래서 나도 사람들의 각자의 상황에 필요한 시를 쓰고 싶었어. 아까 네가 파리에 대해서 써달라고 했을 때 내가 바로 응하지는 않았었지. 아마 파리에 대해서는 그동안 150번 정도 요청을 받았을 거야. 그래서 너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한 거지. 파리의 건물들, 벽, 창문, 지나가는 사람들은 넘쳐흐르지만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파리에 대한 일상적인 이미지라고 할 수 있겠지. 나는 너만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야. 네가 간직하고 있는, 예를 들면 파리에 대한 지독한 고독, 영원한 축제, 기쁨같은거 말이야. 그래서 그런 특수성에 제일 주의하는 것 같아. 사랑이야기도 저마다 특징이 있고 유일한 것이 있어. 나는 그 특징을 파악하여 내 시를 이끌어나가게 만들지.
당신 앞에 가장 많이 멈추는 사람들은 누군가요?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야. 한 부류의 사람들로 정해져있지 않지. 문학적인 교육은 못 받았지만 작은 시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시를 쓰는 기회도 종종 있는데, 그들을 위한 좋은 시를 쓰려고 노력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나에게 시를 주문한 사람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는 것은 스스로 용납할 수 없어. 정말 정성을 다해서 친절을 베풀며 그들을 바라봐. 그 누구더라도 ‘이 사람은 매력 있다’, ‘이 사람은 놀랍다’ 라고 여겨. 그렇지 않으면 좋은 글을 쓸 수 없거든.
오늘 너도 봤겠지만 프랑스어를 하나도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 하지만 오늘 그 독일 커플들에겐 프랑스어로 시를 썼지. 그들은 내게 시를 쓰는데 큰 자유를 줬어. 그들은 바로 지금 내가 느끼는 파리에 대한 감정을 써달라고 주문했지. 그래서 난 정말 진실된 얘기를 했어. 귀엽고 로맨틱한 걸 쓰지 않았어. 힘들고 무거운걸 썼지. 하지만 그들은 그걸 원했어. 내가 통역해 줬고 내가 쓴 시에 대해 굉장히 만족해했지. 만약 내가 ‘또 관광객이네’라고 생각했다면 글을 쓰는 게 정말 지루했을 거야. 그들이 찾던 게 바로 이런 거였고 그들은 행복해했고 나도 마찬가지였어. 파리에서 3일 동안 머무는 그들에게 어쩌면 이 시는 유일한 ‘진짜’일지도 몰라.
사람들은 그들 자신을 위한 시를 요청하나요?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기 위해서?
대체로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기 위한 거야. 근데 만 가지의 경우와 가지각색의 이야기가 존재해 : 그들 자신을 위한 시, 다른 사람들을 위한 시, 다른 사람을 주제로 한 다른 사람을 위한 시, 자신을 주제로 한 다른 사람을 위한 시, 다른 사람과 나를 주제로 한 시, 사라진 사람에 관한 시, 새로 온 사람에 관한 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사람에 대한 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주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할게. 어떤 소녀가 내게 이런 주제를 줬어. ‘저는 아빠를 사랑해요. 그를 갈망해요. 남자친구도 알고 있답니다. 저는 아빠에 대한 사랑에 빠졌어요. 그 누구도 아빠 위에 있을 수 없어요.’ 내 뇌를 분리해서 바퀴를 단 뒤 멀리 도망치고 싶었어. 근친상간의 욕망이라니! 이치에 맞지 않는 거잖아.
어쨌든 주제가 나에게 와 닿지 않는다면 좋은 시를 쓸 수 없어. 누가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서 얘기한다면? 초상 당한 사람을 위해서 시를 써야 될 때도 있거든. 그 사람이 한 마디 말을 꺼낼 때 이미 나는 그 감정의 무게를 느끼곤 해. 그럼 나도 내가 잃었던 사람을 다시 회상하곤 하지. 누군가의 죽음이 어떤 건지 알고 글을 쓰기 위한 유일한 내 방법이야.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결혼한 적 없고, 아이도 가져본 적이 없어. 60세인 적도 흑인인 적도 파리에 있는 한국여자였던 적도 없어서 상상, 감정이입, 공감 노력을 많이 요구해. 내가 그의 입장이 될 수 있도록 최대한 나의 마음을 열려고 하지.
컴퓨터보다 타자기로 시를 쓰는 것이 생각에 영향을 주나요?
컴퓨터의 시초는 계산기였지. 타자기는 문서를 작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야. 물론 가지각색의 글쓰기 도구들이 있지만, 예를 들어 핸드폰으로 어떻게 좋은 글을 쓸 수 있겠어? 그건 분명한 사실이야.
타자기는 글쓰기를 실행하는데 영향을 주는 것 같아. 타자기는 실용적인 기계야. 인터넷에 의해 방해받지 않고. 화면에 의해 방해받지도 않지. 내가 쓴 글의 문자에서 벗어날 수 있는 틈이 없어. 집에 타자기랑 같이 있다고 생각해봐. 집을 나갈 때 타자기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책상에 앉으면 바로 앞에 있는 타자기와 원고가 날 꾸짖으며 말을 걸지. “글을 써. 너 글을 안 쓰는구나. 글을 써야 돼.”라고. 타자기는 물리적으로 존재해.
책의 형태로 출판할 계획은 없는지?
작업한 시는 보관은 하지만 책을 펴낼 계획은 없어. 각각의 시는 하나의 특별한 이야기에 해당돼. 시에 대한 소개가 필요하지. 공중 앞에서 시를 낭독하거나 나만의 시집을 출판하는 건 가능하겠지. 그러나 내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쓰는 시들은 정말 특별해. 특별한 사람을 위해 쓴 시지. 이 특별한 사람의 특별한 상황에 맞춰 쓴 시는 절대적으로 출판할만한 좋은 시라고 볼 수 없어. 그 사람에게 내가 바치는 시이고 그 사람의 상황이랑 너무 완벽하게 일치하기 때문에 그 상황이 아닌 독자는 이해할 수 없을 지도 몰라. 아름답다고 생각할 순 있겠지만 그 당사자만큼 말하진 않을 거야.
당신의 시가 누군가의 삶을 바꾼 적이 있는지?
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됐을 때, 공부벌레인 남자가 한 명 있었어. 한 여자를 정말 사랑했는데 그 여자도 공부벌레였지. 그녀는 친구가 없었고 그 남자도 친구가 없었어. 그 남자는 나한테 그녀를 위한 시를 부탁했지. 어느 날 그 남자가 돌아왔어. “그래서 성공했어?”라고 물었더니 “응~~!!! 대박 성공했어!”라고 대답했어. 이런 경우엔 확실히 알 수 있지.
또 내 책상 주위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사람들도 있어. 내가 만들어 낸 공간은 시를 읽으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도시의 리듬이 탄생하는 곳이거든.
내 시가 사람들의 인생을 바꾼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하지만 그 변화의 시점을 뒷받침 하지. 그 변화를 밝게 비추고 사람들이 그 변화를 받아들이도록 독려할 수 있겠지. 어떤 일이 벌어졌다는 것에 대한 증거자료인 셈이지. 그 순간을 존재하게 함으로써 그 순간을 회상하고 기운을 되찾게 해주는 도구로 기능할 수 있을거야.
예쁜 아가씨와 늙은 아저씨의 시 가격은 동일한가요?
최소 가격으로 10유로를 요구하지만 손님들이 결정하는 거야. 그리고 예쁜 아가씨에게 공짜시를 쓰지는 않아.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우리 시대에 특별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시는 유용하다.”라고 말하면 이상하려나? 이 시대는 시를 필요로 해. 아니라면 난 손님이 없었겠지. 누군가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조금은 다른 형태의 언어(일상의 언어가 아닌)도 듣는 거야. 삶을 풍성하게 해준다는 개념은 아니야. 오히려 그 삶의 단어들을 관통하고 쪼개기도 하는 거야. 정제된 표현들의 결정체, 이것은 마법 즉 신기한 힘을 가진 물건이지.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한 것이야.
미래 계획은?
내 목표는 정말 시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루하루 글을 쓰는 거야. 나는 “시 원하시는 분~ 시 써드릴게요~”라고 하지 않아. 나를 방해할 용기를 무릅쓸 정도로 치열하게 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기다릴 거야. 누가 정말 시를 원하는지 선별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지. 내가 진지하게 이 일에 임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나를 믿고 싶어 하고, 나와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 말이야. 때론 힘들 때도 있어. 내 시가 유치하다거나 사기꾼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 내 시는 항상 좋을 수만은 없어. 어느 날은 내 시가 완벽하고 아름답고 경이로워서 너무 행복할 때도 있고, 잘 써도 불행한 날도 있어. 물론 못써서 불행한 날도 있고. 어떤 날은 너무 행복하지만 글은 정말 형편없을 때도 있지. 맨날 달라. 의지의 문제가 아니야. 내 심장과 열정으로 한다면 뭘 하든 좋은 걸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내가 사람들을 싫어하기 시작한다면 난 정말 사기꾼이 될 테고 시를 더럽히는 사람이 될 테지. 그 때는 그만둘 거야. 이 일을 하면서 나만 생각하게 된다면 그 때는 그만둘 거야.
현대의 디지털 시대의 문학의 역할을 퍼블릭 시인이 아주 잘 구현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사는 삶은 절대로 디지털화할 수 없고 수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다. 문학은 우리가 삶의 순간이나 의미, 혹은 감정들을 다 포착할 수 없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문학을 통하여 인간은 삶의 가장 지적이며 매력적인 유희를 즐기는 것이 아닐까?
내가 요즘 만나고 있는 파리의 모습을 앙투안이 시로 적어주었다:
파리
나를 안달나게 하는 파리
나의 자유로운 파리
나의 절도 있는 파리
나의 꽉 쥔 주먹
나의 결심
네 입술을 열어
루브르의 내부보다
너의 닫힌 문 앞보다
더욱 많은 것을 본다
나의 도도한 파리
나의 비밀스런 파리
나의 금지된 파리
내게 말 하는 파리
내가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은 파리
네 입술을 열어
널 맛 본다
내 자신과 하는 대화에서
너의 혀가 내 창문에서부터 들려주는 대화에서
그리고 내 자신을 발견한다
*Antoine Berard, 퍼블릭 시인
날씨가 포근한 날 오후 4시에서 8시 사이에
대개 영화관 맞은편 랑뷔토 Rambuteau가에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