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예 Dec 21. 2015

프랑스 대통령의 제빵사


문화유산만큼 소중한 빵  

이미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빵을 즐겨먹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빵’이라고 하면 엄지를 치켜드는 이유가 뭘까?   

프랑스의 식탁에서 빵은 식전부터 디저트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식사를 돕는 음식으로 자리잡아 왔다. 프랑스 사람들의 97%가 날마다 빵을 먹으며, 대다수가 식탁에 빵이 없는 식사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여긴다. 흔히 프랑스 빵의 대표 하면 길쭉한 막대기 모양의 ‘바게트’를 첫 번째로 꼽는데, 에펠탑을 배경으로 여행객들이 바게트를 들고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의 사진이나, 각 국의 프랑스 제과점 광고에서 바게트는 단골 손님처럼 자주 등장한다. 에펠탑에 버금가는 상징성을 수 많은 먹거리 중 하나인 빵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새삼 놀랍지 않은 사실이 되었다.   

‘프랑스의 빵’이라는 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닌, 프랑스의 문화가 녹아있을 뿐만 아니라, 민족을 대표하는 의미라는 것은 프랑스인들의 빵에 대한 인식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프랑스 정부는 ‘빵’을 문화유산으로 여겨, 직접 그 정의와 만드는 법을 법률로 지정해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빵은 밀가루, 물, 소금만으로 만들어져야 하며, 자연발효 혹은 이스트를 사용해야 하고 반죽이 냉동되거나 다른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아도 프랑스인들의 빵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굉장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골목 빵집 히어로의 변(變)  

빵이 프랑스 사람들에게 주요하게 자리잡은 만큼, 빵집 또한 거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에는 획일화된 커다란 프랜차이즈 빵집들과는 달리 좋은 재료와 맛으로 묵묵히 그 위치에서 손님을 기다리며 가게의 신념을 지키고 있는 작은 빵집들이 많다.   

지하철 13호선 플레장스 Plaisance역 부근에 위치한 작은 가게. 아침에 먹을 빵을 사오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프랑스 주부들로 오픈 시간인 오전 6시가 가까워 오면 이 곳 앞은 어느새 길게 줄을 선 사람들로 매일같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대망의 내 인생 첫 인터뷰가 이루어질 오 파라디 뒤 구흐멍 Au paradis du gourmand이다. 인터뷰 주인공인 이 집의 주인장인 리다 카데르 Ridha Khadher는 2013년 파리 바게트 콩쿠르에서 1위의 영예를 차지한 최고의 제빵장인이다.   

우승 상금은 무려 4,000유로. 그 뿐만이 아니라 1년 동안 프랑스 대통령궁인 엘리제궁에 빵을 납품하는 자격까지 주어진다. 까다로운 심사는 물론 55~65cm의 길이, 250~300g의 무게 그리고 밀가루 1Kg당 18g의 소금 함유량이라는 엄격한 기준이 있어 우승하기는 정말 어렵다고 한다.   

인터뷰를 계속 망설여오다 ‘이번에는 도전하자!’고 마음먹고 사전에 약속도 따로 잡지 않고 무작정 그가 있는 빵집에 가기로 결심했다. 역시나 그 명성처럼 빵집 앞에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보니 긴장과 기대감, 떨림과 설렘이 마구 교차되어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질문지를 미리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말이 꼬이고 질문을 제대로 하지 못할까 싶어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빵집 주위를 스물 바퀴는 더 돌면서 내 소개를 어떻게 할 지 되놰다 나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빵집에 문을 밀고 들어갔다.   

실내는 비교적 아담한 공간으로 베이지풍의 벽과 바닥으로 꾸며져 있다. 바게트 대회에서 받은 상장과 올랑드 대통령과 찍은 사진도 눈에 띈다. 또 바게트, 마들렌, 크루아상 등 수많은 종류의 빵들이 향긋한 냄새를 내며 진열되어 있다. 리다 카데르씨는 건장한 체격에 후덕한 인심이 묻어나는 인상을 가졌다. 그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빵집 안쪽에 위치한 그의 서재에서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바게트 같은 남자  

튀니지 출신인데 프랑스에는 언제 왔죠?  

15살 때 18구에서 빵집을 경영하는 친형 알리 Ali를 돕기 위해 프랑스로 왔어요. 처음엔 프랑스어도 전혀 못했어요. 날씨도 튀니지에 비해 너무 춥고 사람들도 튀니지만큼 상냥하지 않았죠. 형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매일밤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열심히 훈련에 임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파리에서 제빵사가 되는 꿈을 갖기 시작했고 역량을 더욱 개발하기 위하여 여러 제과제빵 전문 교육도 받았습니다.  


오늘날의 성공이 쉽지 않았겠어요.  

저만의 빵집을 갖기 위한 방법은 하나였죠. 돈을 많이 버는거요! 낮에는 제빵 실습을 했고 밤에는 경호원으로 변신해 자멜 드부즈 Jamel Debbouze, 조니 할리데이 Johnny Hallyday 등 수많은 스타를 위해 일했어요. 또 복싱계에서 제게 러브콜을 보내와 복싱게임 (웰터급)도 나갔어요. 그래도 자금이 부족해서 대출을 받으려고 했는데 어떤 은행도 제게 대출을 해주려고 하지 않았어요. 기나긴 설득 끝에 겨우 한 은행이 승인해주었죠.. 지점장은 빵이 맛있는지 확인해보기 위해 빵집에 까지 왔었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제 빵집을 연지 7년이 되었네요. 그리고 그 이후로 한 번도 가족과 바캉스를 떠난 적이 없어요.  

 

삼중생활이라니…… 그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어머니께서 뒤에서 많이 응원해주셨어요. “넌 잘 될 거야. 견뎌내야 해. 동생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렴. 네가 내 행복이야”라고. 진지함, 바른 자세, 뜨거운 심장로 살라고 하셨죠.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면 더 넘치도록 받게 되는 이치를 가르쳐주셨어요. 배고픈 사람들이 오면 절대로 그냥 가게 두지 않아요. 샌드위치나 빵을 꼭 줘요. 어머니를 떠올리기만 해도 삶에서 더욱 전진하는 기분이 들어요.  

 

세계 언론이 주목하는 빵집이 되었는데 이 갑작스러운 유명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영광이죠. 최고의 프랑스 전통 바게트를 만들어냈으니까요. 제가 이 프랑스 사회에 잘 동화(통합)되었다는 걸 느껴요. 열심히 정성을 다해 일했어요.   


1위로 뽑히고 달라진 점이 있다면?   

총 매상고 30%가 올랐고, 외국인 손님들이 많아졌어요. 손님들은 대통령과 똑 같은 바게트를 먹는걸 좋아해요.. 손님들이 와서 “올랑드 대통령과 똑 같은 바게트를 먹을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답니다.   

한 번은 올랑드 대통령이 프랑스 장관과 사업가들과 함께 튀니지 방문할 때 저도 데려갔어요. 그 때 대통령과 함께 다니면서 일정을 소화했는데 피곤하더군요^^; 대통령의 인생은 힘든 것 같아요.   



바게트 맛의 비결은?

옛 전통 방식 그대로 재현해 만들어요. 도구의 힘보다는 사람의 노력과 정성으로 만드는 거죠. 인위적인 재료를 쓰지 않고 밀가루, 소금 그리고 1%정도의 아주 적은 양의 효모를 섞어 24시간 발효시켰다 굽는 빵이라고 보면 돼요. 저희 집 전통 바게트는 제가 24년간 매일 17시간 일하면서 얻은 진정한 열매의 산실이에요. 바게트 레시피는 완성되기까지 3년이 걸렸죠.   


대통령께서는 어떤 빵을 좋아하시나요?  

올랑드 대통령은 몸매 관리를 위해 작은 사이즈의 빵을 선호하죠. 미니 전통 바게트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드세요. 또한 바삭바삭한 식감을 가진 바게트를 좋아하세요. 제가 매일 아침 배달해드리고 있습니다.   


근데 살이 빠지지 않으셨더라구요.^^;   

바게트가 맛있으니 잘 드실 수 밖에 없겠죠. 하하하  


프랑스 사회에 통합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나요?  

네. 프랑스에 온 이유가 프랑스 사회에 잘 동화되어서 성공하기 위해서였으니까요. 그리고 이렇게 이민자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례를 만들었다는 것이 큰 기쁨이 됩니다.   


외국으로 진출할 생각은?  

브라질과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어요. 어쩌면 미국도요. 일본에서는 바게트 천 개를 비행기로 실어갔어요. 그리고 80명 정도 되는 일본인 관광객이 버스 한 대를 대령해서 매일 저희 빵집에 와서 바게트를 사가고 사진도 찍어가죠. 한국에도 수출하고 싶어요.   


선생님에게 빵이란?  

빵이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 단순히 기호식품을 넘어서 프랑스 인들의 삶과 직결되는 하나의 상징이죠.     


장황한 말보다는 짤막한 그의 답변에 24년간 제빵사로서 외길인생을 걸어온 그의 자긍심이 느껴졌다. 이 곳의 바게트는 불에 그을린 듯한 갈색의 단단한 껍질과 대비되는 촉촉한 속살 때문에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 빵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이곳을 이끄는 리다 카데르 제빵사의 모습이 겹쳐진다. 아마 그가 지난 세월의 고단함을 모두 이겨낸 강인한 승리자의 모습 너머로 부드러운 감성을 간직한 사람이어서일까.  

인터뷰를 마치고 그가 선물로 준 종이봉투에 담긴 바게트를 안고 가까운 공원에 앉아, 하늘을 보며 그 시간을 혼자 즐겼다. 바게트의 질기고 딱딱한 표면을 뜯으며 ‘오늘 수고했다.’라며 하루를 돌아보다가, 결국에 드러내는 폭신한 빵 속을 혀로 녹이며 ‘인터뷰를 해내다니 행복해!’하고 실실 웃었다.^^


*Au Paradis du Gourmand

156 Rue Raymond Losserandm 75014 PARIS

Tel +33 (0)9 62 3 47 13


매거진의 이전글 퐁피두광장의 시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