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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연 Jan 17. 2023

일단 경찰서로 같이 갑시다.

임의동행과 출석요구

전화로 출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경찰관들이 직접 당신을 찾아갈 수도 있다. 직접 찾아갈 정도면 보통은 체포영장이라는 서류를 들고 찾아가지만, 갑자기 “조사할 것이 있으니 따라오라”고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이걸 법률용어로는 ‘임의동행에 의한 조사’라고 한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임의’라는 건 내가 알아서 간다는 의미인데, 나는 경찰관이 오라고 해서 가야 하는 줄로만 알고 간 것이지 내가 알아서 가겠다고 한 적은 없지 않은가.


이상하게 느끼는 것이 정상이다. 제대로 된 임의동행을 하려면 수사관이,


가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그래도 이번 기회에 저희와 함께 가서 조사를 받으시겠습니까.”

조사 받다가 언제든지 나가셔도 상관없습니다.”


라고 말하고 당신이 자유롭게 갈지 말지를 결정해서 출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믿어도 좋다. 내가 아니라 대법원에서 정해준 기준이다.


수사관이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이유는, 원칙적으로 영장 없이 강제로 사람을 데려갈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영장이 없는 상태에서 같이 가서 수사를 받자고 말하는 것은 당신의 허락을 구하는 부탁이지, 명령이 아니다.


그런데 막상 수사관으로부터 얘기를 들어보면 당장 같이 가지 않으면 일이 날 것이니 당장 뛰어오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많고, 명령조로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다.


안 그런 수사관들도 많이 있지만, 만약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그건 피의자를 우습게 보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피의자가 형사 절차에 대해서 잘 모르고, 수사관에게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용해서 적법한 절차를 회피하려고 하는 것이다.


수사관들은 왜 임의동행을 해서 당신을 조사하려고 할까. 갑자기 들이닥쳐서 경찰서로 끌려가면 일단 정신이 없다. 뭘 추궁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가족들에게 회사에 뭐라고 이야기 할지도 생각이 안나는데 쉴 새 없이 물어본다. 그리고 사방에 수사관들이 천지인 경찰서, 검찰청 안은 분위기부터 사람을 위축시킨다. 여기저기서 고성이 난무하고, 조사 받는 사람들은 모두 죄인처럼 혼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질문에 대해서 제대로 답변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자신의 혐의가 뭔지도 제대로 모르는 상황에서. 게다가 수사관이 가자고 하니까 넙죽 따라가는 사람들은 조사 받으면서 변호사를 선임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변호사 선임할 정신이 있었으면 아마 애초에 경찰서에 가자는 요구에 응해서 따라가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경찰서에 가서라도 정신이 들었다면 반드시 변호사를 불러달라고 해야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경찰서에 가서 빨리 조사 받는 게 더 편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하도록 하자. 길거리에 껌 뱉는 정도의 경범죄가 아닌 이상, 빨리 조사 받는 게 더 편한 경우는 없다.


물론 당신이 안 가겠다고 하면 수사관들은 “별거 아니니까 빨리 조사 받고 끝냅시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또는 짜증내며 말을 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 별것도 아닐 것 같은가. 수사관에게는 정말 별것도 아닌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당신은 바로 그 조사 때문에 인덕원에 있는 서울구치소나 문정동에 있는 동부구치소에 가게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수사관에게는 별일 아니기는 마찬가지다. 수사관이 구치소에 갇히는 것은 아니니까.


경찰서에 가서 빨리 조사를 받아도 될 일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어렵다. 보통 사람들에게 조사는 평생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 번 조사를 받아 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조사를 빨리 받아야 하는지 아닌지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때문에 당신은 이 말을 외워두어야 한다.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변호사에게 물어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수사관이 화를 내면서 뭔 잘못을 했는데 변호사에게 물어보냐. 당장 시원하게 조사를 못 받는 이유가 뭐냐. 빨리 튀어오지 않으면 당장 영장을 들고 가겠다 라는 등등의 이야기를 해도, 당신의 답변은 오직 한 가지.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변호사에게 물어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다른 말을 하지 말고 저 말만 무조건 반복하라. 그리고 나서 변호사에게 사건에 대해서 조언을 들어야 한다. 변호사들 먹고 살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을 듣지 않고 수사관 말만 믿고 그대로 들어가서 조사 받다가 신세를 망친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이 봐왔다. 아무런 조언 없이 조사를 받다간 오해를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기 때문이다. 물론 내 말을 듣지 않아도 된다. 억울한 죄명을 뒤집어 쓰거나, 막대한 변호사비를 쓰는 것에 개의치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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