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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윤 Mar 01. 2024

세 대의 카메라, 4일의 밴쿠버 #3

Day-3




"1시간 뒤에 그쪽에서 만나면 되는 거지?"



"응. 어차피 주변에 별 게 없어서 바로 찾을 수 있을 거야. 정 안되면 와이파이 되는 데 가서 앱으로 연락해."



"Sounds Good. 조금 이따 보자고." 




나와 D는 전날과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또다시 하루를 온탕 찜질로 시작했다. 먼저 샤워를 마치고 나서 머리를 말리고 있었는데, 약간 미적거리는 그를 보고서 나는 홀로 호텔 앞 근처를 돌아봐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원래 같았으면 같이 움직이자고 했을 법했던 녀석이었지만 이틀 간의 강행군 때문이었는지 지친 기색이 확연히 얼굴에 묻어나 있었다. 물론 나 또한 그렇게까지 쌩쌩하지는 않았지만 이틀간 찡그린 표정을 짓고 있던 이 도시가 3일째 되는 이 날부터 화사한 웃음을 띠기 시작하자 가만히 앉아있는 시간조차 아까워졌다.








오랜만에 우산으로부터 자유를 되찾은 왼손 덕분에 로비를 나서자마자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스트랩을 손에 감았다. 빛의 강도는 캘거리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날카로웠고, 이전에 갔던 방향과는 다르게 왼쪽으로 몸을 틀어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큼지막한 컨벤션 센터와 몇몇 조형물들이 비치된 곳을 넘어 펜스 쪽으로 다가가자 주차되어 있던 여러 대의 수상비행기들과 함께 자연과 건물이 뒤섞여 꾸며진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9시가 약간 안 된 시간이었지만 주변에는 나와 비슷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이런 쾌청한 날씨를 즐기기 위해 자전거 라이딩과 산책을 나온 이곳의 시민들이 함께했다. 오른편에 놓여 있던 캐나다 플레이스에서 만나기로 해서 그쪽으로 천천히 걸으며 처음 눈에 비친 맑은 날의 밴쿠버를 기록해 갔고, 중간에 A를 만나 같이 전 날에 갔었던 Powell Street 가 보이는 지점을 마지막으로 구경한 뒤에 D가 아침을 먹고 있던 카페로 이동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유일하게 이 날 일정을 정할 의견 충돌이 빚어졌다. 뭐 그렇다고 투닥거리며 싸운 것은 절대 아니고, 적당한 마지노선을 그려야 했는데 D와 A의 생각이 조금 달라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 도시의 경험이 제법 있었던 D가 유일하게 가지 못했던 곳이 바로 북쪽 지역, 그리고 그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던 섬에 펼쳐진 자연 풍경이었는데, 비용도 비용이었지만 이곳을 위해서라면 하루를 꼬박 다 사용해야만 했을 정도로 긴 시간이 소요됐다. 마지막 날이었던 A는 조금 더 다양한 선택지들을 원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결국 키는 내가 쥐고 있었고, 더 많은 시간을 낭비하기 전에 빠른 결정을 내려야 했기에 최대한 절충되는 의견을 뱉어내고서 우리는 북쪽으로 가는 작은 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 시간도 있으니까 너무 깊게 가는 건 무리일 것 같아. 저거 타고 근처만 둘러본 다음에 바로 남쪽으로 내려가서 너네가 원하는 피시 앤 칩스를 점심으로 먹고, 가까운 해변에서 마무리하는 거 어때? 오늘 날씨도 좋아서 석양을 보기에는 알맞은 날일 것 같아."







20분 정도 물살을 가르며 도착한 북쪽의 육지에 발을 디딘 우리는 오른쪽으로 나 있던 수많은 상점가들과 로컬 마켓들을 구경한 뒤에 얼마 안 가서 왔던 곳이 저 멀리 보이는 장면을 앞에 두고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계속해서 당분과 카페인을 몸에 밀어 넣으려고 하는 것과, 따로 말은 하지 않아도 틈만 나면 어딘가에 앉으려고 하는 행동들을 보면서 서로의 컨디션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각개전투가 필수불가결이 된 상황에서 나는 두 사람을 뒤에 두고 조금 더 둘러보기로 했다. 그래봤자 5분 여 정도 떨어져 있던 뷰포인트가 끝이었지만 충분히 나아가 볼 가치가 있었다. 아침에 마주쳤던 사람들의 비율이 여기서도 이어졌지만, 이곳의 평균 나이는 그보다는 조금 더 높아 보였다. 




"잠깐 놀러 온 관광객이죠? 아무리 봐도 현지인 같지는 않아 보여서요."



"네 맞아요. 여기는 왔던 곳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것 같네요."



"아무래도 은퇴한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어서 그렇게 느껴질 거예요. 우리도 그 부류 속에 들어있는 거고요."



"여기서 아무 걱정 없이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그게 바로 파라다이스 일 것 같네요."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60대의 나이지만 가끔씩 지루할 때도 있지요. 물론 배부른 소리란 것도 잘 알지만요." 




한 손에 들고 홀짝이던 아이스커피와 함께 우연히 만난 노년의 커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와중에 D 가 나에게 손짓을 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이제 다시 다운타운으로 돌아가야 했고, 반가웠다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친구들 쪽으로 향했다. 배차간격이 15분이었는데 바로 직전에 한번 놓치는 바람에 랜딩 타이머가 다시 15로 돌아간 것을 확인한 우리는 '오히려 좋아'라는 마인드로 바로 옆 패스트푸드 점에 들어가 아이스크림 콘을 하나씩 손에 들고 다음 편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어지는 목적지는 바로 Granville Island. 주목적은 위에서 잠시 먼저 언급했던 피시 앤 칩스였다.



버스를 타고 가는 중에 갑자기 D가 탄성을 질렀다. 왜 그런가 했더니 본래 가려고 했던 식당이 이 날 문을 열지 않았던 것. 급한 대로 바로 근처에 비슷한 퀄리티를 가지고 있던 곳을 찾아간 우리는 각자 다른 종류의 생선튀김을 주문했다. 나는 클래식한 대구살, D는 본인이 그토록 먹어보고 싶었다는 연어, A는 메뉴 중에서 가장 비싼 알래스카산 넙치로 선택을 했다. 같이 나온 한 조각의 레몬을 적절하게 뿌린 뒤에 반 피스 정도를 서로 나누어 맛을 봤는데, 개인적인 입맛에는 예상외로 연어가 제일 잘 맞았다. 2 피스면 부족할 줄 알았지만 감자튀김과 함께 나온 순도 100% 튀김 요리이다 보니 속은 기름통에 절여진 것 마냥 미끌거리면서도 포만감으로 순식간에 가득 찼다.







해가 질 때까지는 시간이 어느 정도 남아 있어서 우리는 다시 각자 원하는 대로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이 장소 또한 규모가 작아서 대략 10분마다 서로를 마주칠 수 있었고, 나는 또 다른 아메리카노 한 잔을 새로이 건네받아 물가 근처에서 공연을 하고 있던 한 남자를 바라보며 벤치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다. 비가 잔뜩 쏟아지고 난 다음 날이어서 그랬는지 유독 바람이 더욱 차게 불어닥쳤고, 나는 집에서 약간의 기모가 들어간 맨투맨 상의를 챙겨 오지 않은 것을 자책하면서도 곧바로 체온을 올리기 위해 반 강제적으로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맹렬하게 쏘아붙였던 태양빛이 약간 누그러진 시간에 번잡한 중심 부에서 조금 벗어나 배들이 정박해 있던 곳으로 향한 나는 조금씩 흔들거리는 나무판자들을 밟아가며 더욱 가까이 메인 피사체였던 통통거리는 보트들에 다가갔다.



이곳저곳 이끼가 잔뜩 낀 곳에서 올라오는 물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사진이 우선이었기에 크게 게의치는 않았다. 한 구역을 넘어 이어져 있던 다른 스폿까지 다 돌아보고서 다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즈음 스마트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데이터가 없어서 캘린더에 저장해 둔 스케줄 알림인 줄 알았으나 아까 전에 한 건물에서 연결했던 와이파이를 타고 넘어온 A의 메시지였다. 곧 해변가로 갈 거니까 빨리 광장 쪽으로 다시 오라는 내용이었다.







도보로 가기 가장 수월했던 Kitsilano Beach에 닿기 위해 우리는 다시 뭉쳐서 보행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어플에서 표시했던 일몰 시간까지는 1시간 정도가 남아있었지만 하늘은 생각보다 빠르게 어두워져 갔다. 여러 다른 그룹들도 우리와 같은 목적을 가지고 동일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고, 그런 그들을 보고 반대편에서 지나가던 한 한국인은 모두 해가 지는 것을 보러 가는 것 같다며 자기네들 또한 지금이라도 방향을 트는 게 맞지 않겠냐고 친구를 설득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부지런히 걷다 보니 다행히도 해가 수평선 위쪽에 걸려있는 시간에 모래사장에 도달했고, 우리는 지나가던 행인에게 도움을 구한 뒤에 셋이 한 프레임에 들어간 기념사진을 남기는 것을 끝으로 밴쿠버 여행을 1차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난 이제 가볼게. 덕분에 즐거웠다. 내일까지 잘 마무리하고 돌아와."



"같이 와줘서 진심으로 너무 고마웠어. 너 아니었으면 나도 이런 추억 못 만들었겠지. 가서도 2주 정도 시간 있으니까 또 모여서 밥 먹자."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던 A와 작별을 하고 단 둘이 남은 나와 D는 이 위치에서 Granville Street로 가는 가장 가까운 버스정류장을 찾아 몸을 옮겼다. 횡단보도를 하나 남긴 상황에서 바로 버스가 정차해 간신이 올라탄 둘은 지친 우리를 하늘이 도와준다고 외쳤지만, 10분이 안 되어서 다리를 점거하고 시위를 하는 사람들 때문에 예정보다 먼 거리를 다시 내려 걸어가야만 했다. 가뜩이나 약간의 경사가 져 있던 것도 그들을 마음을 더욱 속상하게 만들었다. 저녁식사가 한창인 시간대였지만 둘의 머릿속에는 오직 호텔 방으로의 컴백만을 되새기고 있었고, 우리는 서로 아무 말 없이 앞보다는 바닥을 더 자주 보면서 숙소로 향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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