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사다리를 오르기보다는 맞는 자리를 찾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
이 말은 페이스북 COO인 셰릴 샌드버그 (Sheryl Sandberg)가 2012년 Harvard Business School 졸업 축사에서 했던 말이다. (셰릴이 영상에서 밝히기를 동료인 로리 콜러가 그녀에게 해준 말을 인용한 것이라고 한다) 기존 세상에서의 커리어는 사다리와 같다. 아래에서 출발하여 위로 올라가는 하나의 방향만 있을 뿐이고, 올라가느냐 떨어지느냐의 선택지만 있을 뿐이다. 새로운 시대에서의 커리어는 정글짐이다. 전후, 좌우, 위아래의 3차원으로 모두 움직임이 가능한 정글짐에서는 단순히 위로 올라가는 것이 유일한 목표가 아니라, 때로는 아래로 내려가기도 옆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사다리에서는 내 윗자리에 누군가가 있다면 그가 나보다 앞서 있는 사람이고, 그 사람이 위로 오르거나 떨어지기 전에는 내가 딱히 움직일 여지가 없다. 반면 정글짐에서는 내 위에 누군가가 있다고 하더라도 내 움직임에 자유도가 있다. 반드시 위로 올라가는 것이 가장 즐거운 방법이 아니라 오히려 위로, 아래로, 옆으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이 정글짐을 즐기는 법이다. 혹시나 위로 올라가고 싶다면 앞사람이 떨어지길 기다리거나 밀쳐낼 필요 없이, 옆으로 돌아서 새로운 길을 찾아 올라갈 수도 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구체적으로 이 말의 의미를 체득하기보다는 '왠지 멋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저장해놓았던 기억이 난다. 커리어를 주제로 강연을 하게 될 때 강연의 마무리에 해당 문구를 자주 인용하곤 했다. 상하관계로 해석되는 사다리의 관점에서 커리어를 바라보면 위로 올라가기 버거운 현실에 지치게 마련인데... 강연의 마무리를 희망적인 메시지로 마무리하기에 적합한 문구였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 말의 의미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내 손으로 직접 체득하고 이해한 '진짜 내 지식'이 되기까지는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지나온 내 커리어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커리어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혹은 그런 것들을 바탕으로 누군가의 커리어를 상담해주기도 하면서 조금씩 이 말의 의미를 체득하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내가 지나온 커리어를 바탕으로 어떻게 이 말을 이해하고 해석했는지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결국 일이라는 것은 어떤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에 따라서 달라진다. 어떤 회사에서 일을 하는지가 나에 대한 처우, 동료, 일하는 방식 등을 결정하게 된다면, 어떤 일을 하는지(직무)는 실제 내가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을 무엇을 하면서 보내는지를 결정하게 된다. 어떤 직무를 택할지는 단기적으로도 나의 회사생활이 어떤 시간으로 구성되는지를 결정하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도 어떻게 성장할 것인지를 결정하기에 끊임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주제이다. 보통 첫 취업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회사에 대해서 많이 고민을 하지만, 앞으로 수십 년 간의 나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결정하게 되는 '직무' 선택이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곤 한다.
직무의 변경 가능성은 사람에 따라 매우 다양한데, 처음 커리어를 시작하면서 맡게 되는 직무를 꾸준히 유지하는 사람도 있지만 여러 이유로 직무가 바뀌는 사람도 있다. 금융, 법률, 개발, 디자인 등과 같이 전문영역이 좀 더 명확한 경우에는 1가지 직무를 쭉 오래 하는 경우가 많고, 상대적으로 전문영역이 불분명한 직무를 선택하거나 직무 순환이 많은 대기업에서 커리어를 이어가게 되면 이런저런 다양한 직무를 경험하게 된다. 나 같은 경우에는 경력에 비해서 다양한 직무를 많이 경험해본 편인데, 크게 보았을 때 아래와 같이 3가지의 직무를 경험하게 되었다.
재무 4.5년 @ 두산중공업
전략 2.5년 @ 두산중공업
사업개발 3.5년 @ 원티드
내 직무가 변화하는 과정을 간단하게 요약해보자면, 좀 더 비즈니스 현장에 가까운 방향으로 이동해가는 과정이었다. 사업 뒤에 있는 숫자를 다루는 재무 업무에서 시작하여, 장기적인 사업 방향성을 다루는 전략을 거쳐 당장의 매출을 만들어내고 직접 테스트할 수 있는 사업개발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첫 커리어의 시작인 재무에서는 사업에 의해서 파생된 자금 흐름을 다루는 일을 하였는데, 이 일을 하다 보니 사업적인 의사결정이 끝난 이후의 재무적인 상황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사업의 결정 과정에 관여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싹트게 되었다. 그래서 직무 전환의 기회가 생겼을 때 전략 업무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막상 전략 업무를 경험해보니 대기업의 전략 업무라는 것은 실질적인 사업의 의사결정을 직접 하기보다는, CEO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직에 가까웠다. 거기에서 느낀 아쉬움을 해소하기 위해 전략 직무 이후에는 직접 사업에 관여를 할 수 있는 PM이나 영업 업무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하게 되면서 사업개발 직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회사마다 사업개발의 역할은 조금씩 다르지만, 원티드의 사업개발은 그야말로 창업에 준하는 경험으로 신사업을 내 손으로 모두 일궈내는 업무였는데... 당연히 그러다 보니 내가 희망하는 데로 전략적은 의사결정은 물론이고, 영업/마케팅/제휴에 더해 수많은 노가다와 약간의 개발, 디자인, 영상 편집 등의 사업의 많은 영역들에서 직접 발로 뛰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적극적이고 나서는 것을 좋아하는 내 성격을 고려해보았을 때, 비즈니스 일선으로 계속 이동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근 10년에 걸친 나의 커리어 패쓰(career path)를 통해 좀 더 나에게 맞는 업무, 내가 원하는 업무에 결국 도달하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비즈니스 현장에 더 가까운 일'을 하고 싶은 방향으로 끊임없이 전진해온 결과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경험한 각각의 직무 변화들은 '전진'이라고 해석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때로는 원하거나 기대하지 않았던 직무의 변화가 발생하기도 하였고, 변화의 과정들에서 기존에 쌓아온 나름의 전문성들이 완전히 날아가서 마치 신입사원이 된 것처럼 0에서부터 업무를 배워나가야 할 때도 있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아도, 각각의 변화들은 앞으로 전진하는 것인지, 아래로 퇴보하는 것인지, 옆으로 이동하는 것인지 판단할 수 없는 변화였다. 그냥 매번 내가 더 관심이 가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나만의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계속 비즈니스 현장에 더 가까운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 역시 정답은 아니었던 것 같다. 태양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이카루스의 날개가 타버릴 수 있는 것처럼, 치열하게 피가 튀기는 비즈니스 전쟁터에 다가갈수록 스트레스도 심했고 부담도 심했다. 내가 적극적인 성격은 맞지만 그 적극성의 온도가 마냥 뜨거워서 계속 사업 일선으로만 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재무-전략-사업개발 사이의 어디쯤에 나에게 적당한 온도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사업개발이 나에게 맞는 옷인가? 사업개발보다는 한걸음 더 물러난 업무가 나에게 맞는 것은 아닐까? 한두 번 고민해본 것이 아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전에 사업부문장을 맡게 되면서 특정 직무가 아니라 모든 직무를 다 알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이 내용은 아래에서 다루도록 하자)
나에게 맞는 자리를 찾아서 정글짐을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고민했었던 또 다른 직무가 "인사"이다. 꽤 오랫동안 조직문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사 업무를 해보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두산중공업에서 원티드로 이직하는 과정에서 모 스타트업에서 인사와 재무 등의 관리업무를 총괄하는 역할을 제안받고 매우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도 있었다. 그 선택지를 택하지 않은 이후로 인사 업무를 내 전문 직무로 맡게 될 기회는 앞으로도 없을 것 같지만, 반드시 직무를 전환하지 않더라도 인사 업무를 해볼 기회는 기대보다 훨씬 많았고 앞으로도 무궁무진할 것 같다. 원티드라는 조직이 성장하면서 평가/채용/보상과 같은 인사 제도, 조직문화 등을 갖추어 나가는 과정에서 조직 리더 중 한 사람으로서 항상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또한 지금도 조직장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조직관리/채용/평가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고, 우리 조직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경험도 쌓고 있다. 게다가 우연의 일치로, 내가 맡고 있는 사업부문이 유저의 커리어 성장을 도와주는 콘텐츠/커뮤니티/교육을 제공하는 '커리어 사업' 인데, 이 또한 굳이 직무를 따지자면 '인사'의 HR development에 해당하는 업무이다. 꼭 해당 직무로 커리어를 전환하지 않더라도 내가 해보고 싶었던 업무를 충분히 기존의 내 커리어 안에서 경험해보고 있는 셈이다. 어떻게 보면 내 직무와 상관도 없고 쓸데없는 일을 조직의 필요에 의해 맡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해석을 해보자면 해보고 싶었던 일을 간접 경험하면서 '나'라는 사람의 틀도 커지고 실제로 그 직무를 내 본업으로 할 때 어땠을지를 탐색해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10년이 조금 넘는 내 커리어는 나에게 맞는 직무가 무엇이고, 내가 하고 싶은 업무는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탐색해온 시간이었다. 여전히 답을 찾았고 시원하게 대답할 수는 없는 것 같고 항상 불안감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그러한 불안감들이 스트레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과 기회의 원천임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커리어의 초기에는 누구나 배움의 시기를 거치게 된다. 업무에 대해 파악을 하고 지식과 경험을 쌓아나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내가 업무나 조직에 미치는 영향력은 적고 오히려 다른 누군가가 나와 내 업무에 미치는 영향력은 큰 시기이다. 커리어가 점점 쌓이다 보면 점점 내 업무는 오롯이 나의 것이 되고, 이제는 오히려 내가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소위 말해서 '관리자'가 되어 가는 과정인데, 이러한 변화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를 찾자면 '커리어 성장'이지만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직관적으로 편하게 이해가 되는 단어는 "승진"인 것 같다. (물론 위와 같은 변화들이 반드시 직급의 변화와 동반되는 것은 아니고 내가 일하고 있는 IT 스타트업들에서는 '승진'이라는 표현을 잘 사용하진 않긴 하지만, 좀 더 직관적인 이해를 위해 승진이라는 표현을 사용해보도록 하겠다) 이러한 승진 또한 일차원적으로 해석을 해보자면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지만, 좀 더 깊게 생각을 해보자면 이 또한 반드시 전진이라고 해석할 수 없는 다양한 관점과 의미가 숨어있다.
앞서 말한 '승진'의 개념으로 내 커리어를 돌이켜보면 사원/대리 등 타이틀은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팀원'으로서 약 8.5년 ('10년 말 ~ '19년 초)의 시간을 보냈고, 이후 약 2년('19년 초 ~ '21년 중) 간의 팀장 시절을 거쳐 올여름부터 '부문장'이라는 직책을 맡게 되었다.
커리어를 시작하고 8년 정도가 지났을 때 '팀장'을 맡게 되었다는 것은 꽤나 빠른 일인데, 기존에 다녔던 두산중공업 기준이라는 과장 직급에 해당하는 연차였다. 과장이라는 타이틀이 "장"이라는 글자를 달고 있긴 하지만 실질적인 조직관리를 하는 리더의 역할이라기보다는 실무자로서 꽃을 피우는 단계인데, 내 경우에는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한 덕분에 4명밖에 되지 않은 작은 팀이긴 했지만 팀장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또 2년이 지나서 "부문장"이라는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1개 팀과 2개 스쿼드에 속한 20명이 넘는 인원으로 구성된 개별 사업부 전체를 관리하게 되었다. 아직 팀장의 역할에 채 익숙해지기도 전에, Manager of managers의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물론 속해있는 조직의 성격이 제조업 기반의 전통 대기업인 두산중공업과 신생 IT 스타트업인 원티드의 차이가 워낙 크고, 나 개인의 성장보다는 3년 간 10배 이상의 매출 성장, 4배 이상의 인원 성장을 이뤄낸 회사의 성장 덕분에 이러한 변화가 이뤄진 것이 맞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적인 영향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책임감과 권한이 있는 역할을 맡았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더 큰 역할을 맡게 되었다는 의미에서 주변에서 축하도 많이 받았고, 나 또한 더 큰 역할 하에서 더 많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뿌듯한 마음도 컸다. 커리어 성장을 '사다리'라고 해석한다면 분명히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리더, 조직장의 역할을 맡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만은 아닐 수 있고, 본인의 성향과 상황에 따라서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승진'이라는 변화를 긍정적인 요소만 있는 '전진'의 의미가 아니라 다른 상태로의 '변화'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변화가 나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고민해보고, 나에게 맞는 자리가 어디 일지를 찾아나가는 과정이 여기서도 필요하다.
조직의 관리자가 되면 누군가를 관리하는 업무가 본인의 주 업무가 되면서 본인 스스로 업무를 하고 전문성을 키워나갈 시간은 상대적으로 부족해진다. 누군가를 관리하는 업무보다는 내 전문성을 키우는 업무를 더 선호하는 사람들에게는 조직장으로서의 '승진'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많은 조직들에서 조직의 관리자로 성장하는 매니저 트랙과 해당 직무의 전문가로 성장하는 전문가 트랙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원티드 또한 두 가지 트랙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조직의 필요에 따라 팀장 역할을 수행하시던 분들께서 본인의 희망에 맞추어 전문가 트랙으로 이동하는 케이스도 있었다. 개인의 성장과 행복의 관점에서나, rignt person을 right position에 배치해야 하는 조직의 관점에서나 너무나 긍정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나 같은 경우에는 직무전문가로서의 성장보다는 조직의 관리자로서 성장하는 것을 더 희망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높은 탑을 쌓기 위해서는 아래층부터 넓고 단단하게 다져나가야 되는 것이 당연한데 지금의 내가 그런가에 대한 불안감이 항상 존재한다. 실무자로서 8년가량 일을 하면서 항상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해왔고 그렇게 쌓인 실력과 경험이 있기에 지금 내가 관리자로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은 내 커리어를 생각해보았을 때, 내가 쌓아놓은 초석들이 앞으로의 10년을 든든하게 받쳐줄 정도로 충분히 넓고 단단한지에 대한 의문이 간혹 든다. 물론 관리자로서 배운 지식과 경험도 너무나 소중하고 이 분야 또한 너무나 어려운 하나의 전문영역이고 앞으로 배울 점이 무궁무진한 것도 인정한다. 그렇지만 실무자로서의 탄탄한 전문성이 없는 가운데 관리자로서의 스킬만 쌓는다면 혹시나 3년 후, 5년 후에 '저 사람 실력 없어'라고 손가락질받는 리더가 되진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초석을 쌓기 위해 지금 다시 실무로 돌아가야 하는 것인가? 원티드에서 그렇게 하기 어렵다면 그런 기회를 찾아 이직을 해야 하는가? 걱정과 의문은 많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이다.
비단 그런 고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너무 일찍 관리자가 되어서 앞으로 커리어에 있어서 선택지가 축소되지는 않을까, 바꾸어 말해 혹시나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하게 된다면 내가 실무자로서 경쟁력이 있는 것일까 하는 것도 고민이 된다. 직급과 직책이 가져다주는 편견으로 인해 기회가 제한될 수도 있고, 나 스스로도 실무자로서 일하는 근육이 풀어져버리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러한 고민들에 대해서 답을 찾진 못 했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이러한 고민이 필요한 고민이고 앞으로도 계속될 고민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커리어는 사다리가 아니라 정글짐입니다'라는 화두를 가지고 그동안 나의 커리어를 돌아보았다. 결론적으로는 커리어는 사다리가 아니라 정글짐이다. 전진과 후퇴, 승자와 패자로 나뉘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전진 같아 보이는 후퇴, 지름길 같아 보이는 우회로,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 무수한 선택이 존재하는 복잡한 미로이다. 그 복잡한 미로 속에서 나에게 맞는 자리가 어디인지 찾아나가는 과정 자체가 커리어 여정이다. 승리하지 못한다고 해서, 성장하지 못한다고 해서 패배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커리어 여정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그 자체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는 이야기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그런 메시지가 나에게, 혹은 이 글을 읽은 누군가에게 작은 에너지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