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럴리스트, 어쩌면 모두의 성장법
새로운 회사에 온 지 이제 5개월이 지났으니, 이전 회사인 원티드에 퇴사 의사를 밝힌 지 6개월 정도가 된 것 같다. 원티드 대표님께서 굉장히 강하게 만류를 하셔서 퇴사 의사를 밝히는 과정이 쉽진 않았는데, 결국 마지막에는 대표님께서 더 이상 잡지 않으시고 나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해 주셨다. 그 마지막 면담에서 굉장히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셨는데, 이 중 한 가지를 이 글을 통해 남겨보고자 한다.
성장은 곱셈이다
대표님이 말씀해 주신 내용의 핵심은 이 한마디이고 이 글의 제목과 같다. 아래와 같은 수식처럼 사람 개인의 역량 전체 크기는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 역량의 크기들을 곱한 것과 같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역량의 크기에 대하여 덧셈이라고 이해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셈의 문법이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라는 점은 굉장히 많은 차이를 가져다 준다.
개인 역량 전체의 크기 = 역량 A의 크기 x 역량 B의 크기 x 역량 C의 크기 x 역량 D의 크기...
어떤 역량이 필요하고 어디에 좀 더 가중치를 두는지는 사람마다, 직무마다 다르겠지만 다양한 역량이 필요하고 그것을 곱한 것으로 전체 역량의 크기가 결정된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당시 내 R&R이었던 ‘사업부문장’이라면, 사업전략 / 제품 / 마케팅 / 영업 / 재무 / 인사 / 리더십의 역량이 모두 필요하다. 현재 담당하고 있는 사업전략이사 역할이라면 전략 / 기획의 역량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그 외에도 제품 / 재무 / 마케팅 / 조직 관리 등에 대한 역량도 있어야 한다.
좀 더 다양한 측면에서 이 내용에 대한, 대표님의 조언과 나의 해석들을 아래에서 상술해 보도록 하겠다.
'곱셈'의 연산에서는 전체 항목 중 한 개라도 0이 껴있다면 전체 연산의 결괏값은 0이 되고 만다.
대표님께서는 "이제 너는 C레벨을 생각하면서 성장해야 하는 단계인데 C레벨이 되기 위해서는 Tech도, 전략도, 서비스 기도, 마케팅도, 인사도, 재무도 모두 알아야 한다. 1개라도 못 해내면 C레벨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CTO도 재무를 알아야 하고, CFO도 기술을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비단 C레벨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필요로 하는 역량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갖추고 있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예전에는 단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성장하기를 권장하던 시대였고, 요즘은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성장하도록 권하는 추세이다. 하지만 내 직무에서 필요로 하는 역량들 중 크리티컬 한 부족함을 가지고 있다면 반드시 이 부분은 극복해야 한다.
최근에 커리어 관련하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본인은 제너럴리스트를 목표로 한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이직이나 직무 전환이 점점 자유로워지고 다양한 역량을 통합적으로 필요로 하는 경우가 늘어나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간혹 내가 그런 분들에게 조언이나 코칭을 하는 경우에 "너무 자주 직무를 바꾸다가 간혹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커리어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곤 한다.
스티브 잡스가 했다고 알려져 있는 "Connecting the dots"라는 말이 있다. 미래를 보면서 점을 연결하는 것은 어렵지만, 과거를 돌아보면 나의 발자취들이 어떻게든 연결이 된다는 맥락이다. 하지만 우선 각각의 점이 또렷하게 찍혀있을 때 비로소 연결하는 것이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마케팅 2년, 전략 1년, 서비스 기획 0.5년, 영업 1년, 이런 식으로 커리어를 보내다 보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 어떤 분야도 또렷하게 잘하지 못할 수도 있는 애매한 커리어가 될 수 있다. 남이 보는 커리어뿐만 아니라 내 역량 관점에서도 3개월 해봤던 일은 결코 내 역량이 될 수 없다. 해봤다는 기억만 남고 어떻게 하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최소한 6개월, 대부분의 경우 1년 이상 특정 업무를 깊게 고민하고 열심히 갈고닦아야 나중에 그 영역을 곱셈을 했을 때 내 전체 역량이 더 커진다
나 역시도 재무에서 시작하여 전략과 사업개발을 거쳐 지금은 다시 전략을 하는 식으로 직무를 자주 변경한 케이스이다. 하지만 재무 5년, 전략 3년, 사업개발 5년을 거쳐 다시 지금 전략을 하고 있다. 재무 업무를 하지 않은지 어느새 8~9년이 흘렀지만 그래도 5년이나 열정을 쏟은 덕에 웬만한 재무담당자에 준하는 수준은 지금도 발휘할 수 있고, 재무 영역은 나만이 가진 나만의 장점이 되었다.
커리어의 점을 찍으려면 적어도 그 크기가 "1"보다 커야지만 전체 역량을 상승시키는 요소로 작동한다. 앞으로 내 커리어에 필요한 역량이라면 최소한 1 이상의 역량을 갖춰야 한다. 여러 영역의 점을 찍는 제너럴리스트가 되고자 한다면 점의 개수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각의 점들을 또렷하게 찍어두는 것도 중요함을 명심하자. 일단 찍어놓으면 뭐든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해당 영역의 전문가에 준하는 수준으로, 이 업무는 내가 확실하게 끝낸다는 수준까지 각 역량을 디벨롭해야 한다.
'곱셈의 성장 공식'에 의하면 커리어 성장의 초기 단계는 더디게 느껴진다. 노력을 기울여서 A역량을 3에서 4로 1을 성장시켰는데, A역량에 곱해지는 B역량xC역량xD역량의 크기가 작으니 A역량이 1이 성장하더라도 전체 내 역량의 크기는 아주 크게 성장하지 않는 셈이다. 노력에 비해 스스로 느끼는 성장의 뿌듯함이나 타인으로부터 받는 인정의 크기가 작으니 실망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우리는 곱셈으로 성장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경험과 역량이 쌓인 이후에 성장 속도는 점점 가팔라진다. 소위 말하는 J커브를 그릴 수 있는 셈이다. 물론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충분히 각각의 역량들을 1 이상의 크기로 쌓아놓았을 때 이것들이 모여서 곱셈의 힘이 발휘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충분히 또렷한 점들을 찍어놓았다면 그것이 연결되어 언젠가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명확하다. 그러니 초기에 성장의 크기나 속도가 작게 느껴진다고 해서 너무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나중에 엄청난 성장을 만들어낼 밑거름을 지금 만든다고 생각하고 꾸준히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나 역시도 한 10년 차 정도 되었을 때쯤이었나? 그동안 해왔던 재무, 자금, 전략, 영업, 사업개발 등 각각의 역량들이 종합이 된다는 느낌이 들었고 '이제 무언가를 좀 알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던 기억이 있다.
게임을 하듯이 레벨 1에서 레벨 2, 레벨 2에서 레벨 3으로 단계적으로 진행이 되는 것이라면... 혹은 학생시절처럼 배워야 할 과목과 순서, 평가의 기준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커리어 고민이 훨씬 적을 것 같다. 하지만 막상 10년 넘게 일을 해보면 그 고민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게임이나 학교공부처럼 단계적으로 구조화되어 있지 않고,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들이 뒤섞여 있다. 나에게 적용되는 공식이 다른 누군가에게 적용될 수 없고, 그때의 정답이 지금의 오답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그런 것들을 조금이라도 쉽게 비유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내가 계속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오늘의 이 글 역시도 그런 맥락에서 작성해 보았고 고민 많은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 원티드 이복기 대표님 좋은 인사이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