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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엽 Oct 05. 2019

스스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왜 누군가를 휴가를 가라고 해도 화를 내는 것일까?

 전 회사 전략팀에서 일하면서 이런 일이 있었다. 대부분 회사의 전략팀이 그러하듯, 전략팀의 주요한 업무는 의사결정권자에 대한 보고이다. 그리고 의사결정권자에 대한 보고는 의사결정권자의 스캐쥴에 맞추어 목표 일정이 셋팅되는데 반해, 실제 그것을 준비하는 실무부서에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의 입김이 작동한다. 그렇기에 언제나 끝의 끝까지 일이 미루어지다가 마지막 순간의 야근과 주말 출근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당시에 나와 내 선배가 그러한 상황이었다. 새롭게 투자를 하고 있던 신규 비즈니스의 시장 진입 전략을 준비하고 있었고, 보고는 월요일 오후였다. 당연히 주말 출근과 야근이 이어졌고 다행히 보고는 무사히 마쳤다.


 지금까지 내 마음속에서 최악의 상사라고 기억되는 당시 팀장은 나와 내 선배에게 고생 많았으니 내일 하루 월차 쓰고 푹 쉬라고 말했다. 알겠다고 대답하고 나온 뒤 나와 둘이 있는 자리에서 선배는 이런 말을 했다.


걔가 뭔데 내 월차를 쓰라 마라야?


 나는 솔직히 굉장히 의아했다. 나나 그 선배나 당시 스트레스는 극에 달해있었고 몸은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다행히 하루 월차를 쓰고 쉬라는 말을 들었는데, 왜 선배는 화를 내는 것일까?

 그 순간에는 특별히 이해를 하지 못 하고 지나쳤지만, 돌이켜 생각했을 때 그 선배가 화를 낸 이유는 "자기통제 (Self-Control)"의 부재에서 온 것이다. 휴가를 쓰건, 일을 하건 본인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서 하고자 하는데, 당시의 상황은 자기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이었기에 화가 난 것이다.

 그 선배는 꽤나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고, 그만큼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도 크고 잘하고자 하는 의지도 강한 사람이다. 일반적으로 그런 사람일수록 자기통제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설령 밤을 새워서 일을 하더라도 스스로의 의지로 시행한다면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고, 월급 도둑처럼 사무실에서 일을 거의 하지 않다가 휴가까지 가는 등 편한 회사 생활이 이어진다 하더라도 스스로 원하지 않는 것이면 마음이 불편하고 안절부절하게 된다. 




 흔히 자유로운 기업문화라고 하면 짧은 근무시간과 많은 휴가, 여유로운 근무환경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핵심은 일주일에 35시간을 일하는지, 52시간을 일하는지가 아니다. 휴가를 1년에 하루도 쓰지 못하는지, 한 달을 쓰는지가 아니다. 어떠한 선택지던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사람의 행복감은 대부분 거기에서 나온다. 휴가가 무한대인 회사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휴가를 사용하지 않고 밤낮없이 일을 하곤 한다. 그러면서도 왜 휴가를 사용하지 못했는지 불평하지 않는다. 나는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에도 그 권리를 나 스스로의 의지로 사용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 휴가를 사용하지 못해서 화가 날 때는 그 휴가를 상사의 의지, 업무 상황, 조직 상황 등 외부 요인에 의해서 쓰지 못할 때이다.


 구글로 대표되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자유로운 기업문화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놀면서 일하는 것일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놀면서 일해서는 절대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없다. 놀면서 일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지만 그들은 놀기보다는 열심히 일하는 것을 택한 것이다. 물론 필요하다면 쉬기도 하고 휴가도 가고 회사에서도 여유를 가지고 즐겁게 일할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흔히 자유와 자율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자유는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있는 것이고 자율은 그 안에서 스스로의 원칙과 의지에 근거하여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자기통제 욕구'가 강한 사람은 자유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스스로 원칙을 세우고 판단하여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누군가는 놀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음에도 열심히 일하는 것일까? 자유가 주어졌을 때, 왜 누군가는 방종으로 치닫게 되지만 누군가는 자율적으로 노력을 하는 것일까?


 그것은 '성취욕' 때문이다. 성취욕의 동기는 경쟁자를 이기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고, 돈을 더 벌고 싶은 마음, 스스로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마음,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마음,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은 책임감 등 다양한 곳에서 올 수 있다. 어느 곳에서 기인하였든 높은 성취욕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쟁취하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 여기에 앞서 말한 '자기통제 욕구'가 결합이 되면 스스로를 통제하고 노력하는 방식으로 성취를 하고자 하며, 그것이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성취욕'은 많으나 '자기통제 욕구'가 없다면, 주변으로부터 빼앗거나 환경을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성취를 달성하고자 하므로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을 것이다. 반대로 '자기통제 욕구'가 강하지만 '성취욕'은 없다면 스스로 만족하는 방식으로 삶을 꾸려나가면서 세속적인 성취와는 거리감 있는 삶을 살 가능성이 높다. 이렇듯 '성취욕'과 '자기통제 욕구'가 결합이 될 때 환경과 상관없이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된다.




 그런 사람을 채용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 회사는 발전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채용 과정에서 모든 회사에서는 끊임없이 후보자가 경험한 업무에 대한 동기를 확인하고자 한다. 업무를 선택하고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자발적인 동기를 가지고 임했는지, 스스로 적극성을 발휘하였는지, 성취를 어떻게 정의하고 그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혼자만의 고민과 노력을 하였는지를 항상 평가하고자 한다. (여담이지만 그런 것을 평가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미 평가된 다른 잣대 - 학력, 학벌, 학점, 시험 점수, 자격증 같은 것으로 평가를 대신하고자 하는지도 모르겠다. '저 학교에서 저 정도 성적을 낸 사람이라면, 성취욕도 있고 스스로 노력하는 타입일 거야'라고 다른 잣대를 가져와서 평가해버리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평가를 하던, 채용은 중요하다. 조직을 성장시킬 수 있는 DNA를 갖춘 사람들로 팀을 꾸리는 것이다. (각자 분야의 전문성과 실력도 갖추어야 함은 물론이다) 해고가 자유롭지 않은 한국에서는 어려운 일지 모르지만, 채용 과정에서 실패가 있었다면 - 다시 말해 원치 않는 형태의 인재가 유입이 되었다면 늦지 않게 조직에서 내보내는 것도 필요하다. 채용을 중시하는 만큼이나 이 부분 또한 강조되고 고민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이미 성취욕과 자기통제 욕구로 충만한 사람들로 채용하는 데 성공했다면, 굳이 조직에 많은 제약사항과 가이드라인을 만들 필요는 없다. 자유를 마음껏 주어도 조직은 무리 없이 굴러갈 것이고, 앞서 말한 것처럼 오히려 자유의 크기가 작다는 느낌이 들면 가장 자의식이 강한 사람부터 회사를 떠나게 될 것이다. 


초창기 스타트업과 같이, 조직이 도전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통제의 힘만으로는 달성해내기가 어렵다. 통제를 할 만한 제도도, 여유로운 자원과 시간도 없기 때문에, 최대한 강한 야망 (성취욕)을 가지고 스스로 일할 수 있는 (자기통제 욕구) 사람을 모아서 높은 목표에 도전해야 한다. 운이 좋다면 J 커브를 그리는 데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스타트업이 커지면서 매번 높은 기준을 가지고 채용을 하긴 어려울 수 있다. 줄 수 있는 연봉과 복지 수준의 제약이 있거나, 채용을 늦출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성장을 한다면 마냥 높은 기준의 잣대를 가지고 기다릴 순 없을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앞서 말한 조건에 미흡한 누군가가 채용되기도 한다. 당장 수행하는 업무의 퀄리티는 큰 차이가 없을지 몰라도, 스스로 사고하고 업무를 만들어 나가는 사람과 주어진 일을 해내는 사람의 성과는 결국 나게 마련이다. 스타트업이 커지면서만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서비스업이나 제조업처럼 단순 반복적인 업무를 수행해줄 일손을 요구하는 산업이라면 아주 작은 사이즈의 기업일 때부터 스스로 열심히 하는 사람만으로 팀원을 구성하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다. 


 조직이 커지면서, 혹은 애초부터 스스로 동기 부여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지 않게 된다면, 조직은 규율을 필요로 하게 된다. 회사에 도움이 되고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방향으로 스스로 행동하지 않고, 개인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행동하거나 혹은 제대로 일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행동들을 규제해줘야 한다. 퇴사, 감봉과 같은 명시적인 형태의 채찍과 승진, 보너스 같은 명시적인 형태의 당근이 필요하다. 또한 이에 더하여 상사로부터의 꾸지람, 칭찬과 같은 정서적인 형태의 당근과 채찍도 필요로 하다. 그런 과정에서 회사에서는 규정이 만들어지고, 전결 권한이 생기며 평가와 보상제도, 상벌제도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규정된 제도를 가지고는 스스로 일하는 사람의 수준을 절대로 달성해낼 순 없다. 강한 틀 안에 조직원들을 가두어 놓는다면 실수를 최소화하고, 운이 좋다면 선형적 (linear) 성장은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구성원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지수적 (exponential) 성장은 만들어 낼 수 없다. 조직이 커짐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채용, 후속적인 내부 교육, 탄탄한 기업문화를 통해 지속적으로 자발적 노력의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런 기업은 성공한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느새 아이를 넘어 청소년이, 반쯤 어른이 되어가는 조카들을 보면서 예전 학창 시절에 공부하는 시절 생각이 날 때가 가끔 있다. 그때 당시에는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머리가 좋거나, 노력을 많이 하거나 (혹은 둘 다 이거나)라고 생각을 하였는데, 이제 와서 다시 보면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스스로 동기 부여하는 힘이야 말로 공부를 잘하는데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런 동기부여의 힘도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일종의 자질이다. (후천적으로 습득되는 것인지,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는 학창 시절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의 나도 그러할 것이다. 나는 더 높은 곳으로 가고자 하는 성취욕과 그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자기통제 욕구를 충분히 가지고 있는가? 나는 그런 시각으로 팀원들을 뽑고 피드백하여 우리 팀을 스스로 생각하는 팀으로 만들어 내고 있는가? 우리 회사는 그런 사람을 채용하고 있으며, 문화를 가꾸어 나가고자 노력하고 있는가?

 생각은 많이 들지만 어느 하나 시원하게 답을 하긴 어려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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