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플라이어 (Multiplier)'를 읽고...
부하직원의 입장에서 ‘좋은 리더’라고 할 만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냐마는, 전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같이 일했던 리더 중에는 유독 최악의 리더들이 몇 명 끼어있었다. 그 중에서 나를 화나게 만들었던 것은 마지막 팀장이었는데, 회사 생활하면서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내가 모든 팀원이 모여 있는 회의실에서 얼굴이 붉어지고 주먹을 부르르 떨정도로 크게 싸울 지경이었으니 그 불만의 크기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그 분과의 에피소드를 다 꺼내 놓는다면 몇 시간동안 글을 적어도 끝이 없겠지만, 가장 내가 불만을 가진 부분은 일을 하는 비효율적인 방식때문이었다. 팀의 모든 결과물은 본인의 머리 속에서 나와야하며, 팀원들은 그저 그 사람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일을 함에 더하여 그것을 팀장에게 이해시키고 설득시키는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그마저도 대부분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당시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팀원 하나하나의 능력이 100이고, 우리가 5명이니 그 힘을 모두 합한다면 500의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 팀워크의 문제가 있어 역 시너지 효과가 나서 팀 전체의 힘이 반감된다고 하더라도 500 x 60%인 300의 결과물은 나오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이 사람은 팀원들을 고작 본인 능력을 배가시켜주는 역할, 다시 말해 그 사람의 손발이 되어주는 방식으로 우리를 활용하니 고작해야 그 사람의 능력 100 x 150% = 150의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다’
(그 사람 개인의 능력이 100이라도 되는지 조차도 사실 의문이지만…) 이 생각이 당시 나를 떠나지 않는 생각이었다. 내가 단순히 그 사람의 팔, 다리 정도로 쓰임되는 것도 화가 나는 일 이었지만 더더욱 답답한 것은 500의 일을 할 수 있는 우리 조직이 150 밖에 못 하는 것이었다. 매일 야근을 하고 주말 근무도 심심치 않게 하면서 정작 내놓는 결과물은 신통치 않으니, 당시 대리였던 내가 보기에도 우리 팀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이 책에 정확히 동일한 상황에 대한 묘사가 있다.
“하나의 두뇌, 수많은 일손”
책에서 정의하는 부정적 리더 유형 ‘디미니셔 (Diminisher)’에 대한 중요한 묘사 중 하나이다. 구성원들의 능력을 100% 혹은 그 이상으로 발휘하는 긍정적인 리더 유형인 ‘멀티플라이어 (Multiplier)’와 반대로 능력을 제대로 끌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반감시키는 유형의 리더 ‘디미니셔(Diminisher)’를 다각도로 비교하고 어떻게 하면 멀티플라이어가 될 수 있는지를 얘기하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사실 워낙 유명한 저서이기에 이 책의 핵심 아이디어가 무엇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고, 굳이 책을 읽지 않았어도 일을 통해 경험적으로 좋은 리더의 모습이 어떠한지에 대해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굳이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현재의 내 상황에 기인한다. 지난 4월쯤 회사 조직 개편의 과정에서 난생 처음 팀장의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큰 문제 없이 해오고는 있지만 팀 매니징의 역량에 있어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잘할 수 있을까? 내가 혼자 고민하고 노력해서 잘하는 것을 넘어 ‘잘하는 팀’을 만들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이 책을 읽게된 계기이다. 그동안 많이 읽어온 책들이 ‘경영자’의 입장에서의 리더십을 다룬 책이라 내가 당장 실제 업무에 적용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많았으나, 이 책은 오히려 팀장급 리더십을 더 많이 다루고 있어 현재의 나에게 더 와닿는 내용이 많았다.
이러한 유형의 책 - 당연한 진리를 담고 있지만 글로 적어놓으면 뻔하고 실천하기는 어려운 책 -을 읽기에 가장 좋은 방법을 실천할만한 것들을 찾아내서 실행에 옮기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실행에 옮기고자 하는 포인트는 크게 3가지이다.
여기서 말하는 재능이라는 것은 흔히 인사평가나 이력서에서 말하는 강점, 핵심역량과는 다른 개념이다. 남들보다 뛰어나게 잘하면서도,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 돈과 같은 보상이 없이도 자발적으로 하고자 하는 일을 말한다.
보통은 팀원들을 파악하는데 (또는 나의 능력을 파악하는데) 업무 역량을 중심으로 파악을 하곤 한다. 팀에 주어진 임무가 있고 그것을 나와 내 팀원들의 노력으로 해결하려다보니 이 사람이 이 업무를 해낼 수 있는지, 저 사람이 이 업무를 했을때 더 큰 효율이 있는지를 중심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재능을 중심으로 팀원들을 파악하고 업무를 진행하는 것이 더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 배웠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개개인들이 자발적으로 하고자 하는 일, 큰 노력 없이도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주며, 이를 칭찬해주고 동기부여해주는 일들은 당연히 개인과 팀의 활력과 좋은 성과로 이어질 것이다.
책을 보고 내가 가진 재능은 무엇인지, 그리고 팀원 하나하나의 재능은 무엇인지를 정리해보고자 하였다. 평소 누군가를 편견 없이 바라보는 편이라고 자부하고 있던 나였지만, 그 작업은 쉽지 않았다. 더군다가 업무 역량이 아니라 ‘재능’을 기준으로 파악하는 것은 더욱 쉽지 않았다. 원티드 입사 이후부터 거의 2년 가까이 같은 팀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나, 심지어 전 직장에서부터 함께 일하여 10년을 알고 지낸 동료조차도 쉽지 않았다. 고작 생각 나는 것들은 업무 역량 관점에서 그 사람의 장점이거나, 이것이 A 동료의 재능인지 B 동료의 재능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모호하고 추상적인 재능이었다.
얼마나 평소에 그 사람에 대해서 몰랐는지 새삼 깨달았다. 팀원들은 함께 태스크를 처리해줄 ‘손’이었고, 업무 외적으로 시시콜콜한 농담따먹기를 나누는 ‘친구’였다. 그들의 능력을 이해하고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어야 할 동료로서의 의무가 나에게 있었으나, 제대로 해주지 못 한 것이다.
시간이 더 있다해도 크게 진도가 나갈 것 같진 않아서 일단 정리하던 문서를 닫았다. ‘재능의 발견’이라는 눈으로 평소부터 그들을 관찰하는 것이 우선 필요할 것 같다. 그런 노력을 쌓은 이후에 4주 뒤에 이 문서를 다시 열어보는 것으로 캘린더에 일정을 잡아놓았다. 지금보다는 조금 덜 부끄러운 마음으로 문서를 작성하길 기대해보며...
책에서 “뱅골보리수 아래에서는 아무 것도 자라지 못한다”는 C.K. 프라할라드 경영학 교수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능력이 뛰어난 리더가 존재하는 것이, 당장은 팀을 잘 돌아가게 만들고 팀원들을 보호해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팀원들이 성장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내가 뱅골보리수 같은 능력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남들보다 좀 더 잘하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위에서 말하는 ‘재능’일 수 있겠다) 그 중 하나가 생각의 속도이다. 특정 주제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여 탄탄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에는 취약하지만, 짧은 시간에 남들보다 많은 정보를 파악하고 빠르게 가시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데에는 자신이 있는 편이다. 그렇다보니 같은 시간이 주어졌을 때 조금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곤 한다. 예를 들어 회의를 할 때도 남들보다 빠르게 내용을 파악하여 스스로의 잠정 결론에 빨리 도달하는 편이다.
여기까진 어찌보면 장점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데, 결정되지 않은 애매한 상황을 극도로 싫어하는 개인적인 성향이 더해지면서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심리학에서 ‘인지적 종결욕구’라고 말하는 성향인데, 내가 이 성향을 굉장히 강하게 가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회의와 같이 여러 사람의 아이디어를 모아가는 과정에 있어서, 아무도 의견을 선뜻 내지 못한다거나 고만고만한 아이디어들의 논쟁이 지속되는 상황을 잘 견디질 못 한다. 더 쉽게 말하자면 기다리질 못 하는 것이다. 이미 내 나름의 결론은 내려놓은 상태이니, 참다 못해 이것을 먼저 꺼내버리곤 한다.
그 의견이 설익기도 하고 완벽하지 않기도 한 것도 물론 문제가 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의 제한한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생각하고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그 사람들의 동기부여 측면에서도, 성장 측면에서도 좋고, 나아가 더 많은 의견을 주고 받으면서 팀 전체적으로 더 좋은 결론에 도달할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 하지만 내 장점인 빠른 사고력을 발휘한다는 명목과 더 좋은 회의를 위해 누군가는 대화의 물꼬를 터야한다는 핑계를 대고 그런 가능성을 스스로 잘라내버린 꼴이다.
오늘 회사의 향후 6개월 전략과 제품 방향성을 결정하는 리더십 미팅에 참석하였다. 이를 준비하기 위해 대표님과 우리 팀은 몇 번의 사전 미팅과 준비하는 시간을 가진 상태였고, 우리 팀과의 미팅과는 별도로 대표님 스스로도 많은 시간을 들여 시장 조사와 고민을 마친 상태로 회의에 참석하셨다. 당연히 대표님 마음 속에는 어느 정도의 방향성을 가지고 회의에 참석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로 그 자리에서 그 아이디어를 꺼내놓지 않았다. 다만 ‘앞으로 우리가 뭘 해야 할까요?’,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고 회사를 운영해야 할까요?’를 끊임 없이 참석자들에게 물었고, 아무도 발언을 하지 않는 뻘쭘한 순간을 가만히 기다려 줄 뿐이었다.
아마 내가 대표였다면 아무도 의견을 선뜻 꺼내지 않는 그 순간을 견디지 못 하고 먼저 말을 꺼냈을 것이다. 대표가 먼저 회사의 전략을 말하였으니 다른 구성원들은 굳이 고민할 필요도 없고, 혹시 다른 의견이 있다해도 피력하지 못 하고 회의가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대표님이 계속 물어봐주고 기다려준 덕분에 회의는 생각보다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회사 전략 방향성을 결정하는 회의여서 조심스러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냈고 서로에게 반론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그 과정에서 좀 더 진지하게 회사 전략을 고민해보게 되는 기회, 리더십 팀의 일원으로서의 책임감,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피력했다는 정서적인 만족감, 더 좋은 아이디어가 교환될 가능성들이 생겨났다.
회의의 결론은 원래 대표님의 결론과 크게 벗어나진 않았을 것이다. 내 마음 속에 있는 잠정 결론과도 크게 다르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결론이 같다고 그 과정이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대표님의 기다림을 통해 우리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가치들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리더인 상황에서 먼저 말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 내 의견이 잠정적으로 나와있는 상황에서도 누군가의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일부러 말하지 않는 것이 내가 앞으로 채워나가야할 부분이라고 생각이 든다.
책에서 말하는 멀티플라이어가 ‘사람 좋은 스타일’은 아니다. 다시 말해 멀티플라이어는 최고의 결과를 이끌어내는 사람이지 조직원들이 기분 좋도록 비위를 맞추는 사람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조직원들이 그 사람을 좋은 리더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 사람이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이어서라 아니라, 함께 좋은 결과물을 위해 노력하고 이를 달성하는 경험을 좋게 평가해서이다. 리더로부터 수도 없이 혼이 나고 악전고투를 하면서도 그 사람은 좋은 리더다라고 누군가에게 말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생각보다 사람이 누군가를 평가할 때 감정적인 부분만을 가지고 평가하지 않고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마련이다. (물론 인간적인 면에서도 좋은 리더라면 당연히 더 좋겠지만)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사람’, ‘착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내면적인 욕구가 있다. 하지만 조직 문화를 건전하게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유롭게 능동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여유를 주되, 최고의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하는 치열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 더 좋은 조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책에서 나오는 말은 아니지만, 이것을 조직 문화의 ‘이중적인 잣대’라고 칭하면 좋을 것 같다. “생각은 자유롭게 해도 좋으나 최고의 성과를 내야 한다”, “실수를 해도 좋으나 그 실수를 반복해선 안 된다”, “실패를 해도 좋으나 실패로부터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와 같은 것이다. 따뜻한 감정적 배려와 함께 치열한 성과 추구가 동시에 공존하는 문화이다.
좋은 조직문화를 가꾸기 위해서, 구성원들의 생각과 행동에는 자율성을 충분히 부여하여 무엇이든지 고민해보고 시도해볼 여유를 만들어 주는 것이 첫번째로 필요할 것이다. 앞서 말한 ‘사람 좋은 스타일’에 해당하는 부분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결과에 대해서는 반드시 냉철하고 현실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리더는 갖추어야 하고, 그런 조직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의견을 내는데는 편안하지만, 좋은 결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것도 필요하다. 얼핏 이중적으로 느껴질 순 있으나, 둘 중의 하나가 없다면 조직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편안함이 없다면 조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자유로운 의견 개진과 적극성이 감소할 것이다. 압박감이 없다면, 좀 더 나은 성과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하는 힘이 떨어질 것이다. 이중적인 잣대의 공존 속에서 조직은 원활하게 목적을 달성하면서 구성원들은 정서적인 만족감과 실질적인 성장믈 맛볼 것이다.
리더 또한 사람이기에 누군가에게 욕 먹고 싶지 않고 ‘좋은 사람’으로 비추어지고 싶기 마련이다. 또한 누군가의 실패를 논하게 될 때 조직원의 실패는 리더의 실패로 느껴지기에, 결과물에 대하여 냉철하게 분석하고 비평하기보다는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실패는 덮어두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나 또한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런 유혹에 항상 빠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중적인 잣대를 미리 세워두어야 하고, 미리 세워놓은 두번째 잣대에 의해 때로는 냉정하게 스스로와 우리 조직을 돌아볼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원티드 사업개발팀을 위한 이중 잣대로 구성된 원칙을 만들어보고자 한다. 굳이 회사 전체의 원칙에 더하여 팀 원칙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은 팀이지만, 작은 원칙이나마 고민하고 공유한다면 좀 더 나은 팀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글의 서두에서 회사 생활에서 만난 리더들을 회고 하면서, 최악의 리더들을 많이 떠올렸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 또한 딱히 나은게 없는 리더가 아닐까 싶다. 반성하고 노력하다보면 조금은 나아질 수 있을까?
글을 읽는 다른 분들이나, 리더들이나, 미래의 나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지금 당신의 팀은 안녕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