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승엽 Oct 19. 2019

'나'를 잘 알기 위해 해야 하는 질문

커리어 관점에서 나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진로에 대한 상담을 해주다 보면 "나를 잘 알아야 한다"는 말을 반드시 하게 된다. 나 또한 엄청 많이 들었던 말이고, 또 이제는 누군가에게 해주는 말이 되었다. 근데 도대체 뭘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일까? 그건 사실 누가 제대로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는 것 같다. 이 글을 통해 그걸 생각해보고자 한다.

 

 진로에 대해 자기 계발 서적을 읽거나 전문가의 조언 같은 것을 들어보면, '뭔가 나랑 잘 안 맞는데'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많다. 그렇게 잘 정리된 방법론은 주로 최고의 위치에 닿은 사람들을 기준으로 일반의 사람들에게 가이드를 해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반 사람들에게 바로 같은 기준을 적용하기에는 안 맞는 부분도 있고, 적용에 앞서 스스로 문제를 좀 더 풀어야 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내가 스스로 어떤 부분에서 그런 조언들이 안 맞다고 느꼈는지를 돌이켜보면서 아래 글을 적어보았다. 내가 아직 나를 잘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래 부분들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을 하였고 진로를 정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생각들이다.



1.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인가?

 보통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라는 말을 많이 한다. 정말 미치도록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설령 무모해 보이지만 그 일에 도전하는 삶. 그런 삶은 멋지다. 또한 그런 노력들로 꿈이 이루어진다면 그야말로 극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질 것이다. 

 그런데 막상 '좋아하는 일'을 찾고자 고민을 해보면, 생각보다 잘 떠오르지 않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앞선 조언을 해준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이어가곤 한다.

 "그건 아직 네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야"


 과연 아직 만나지 못한 것일까?

 나는 일적으로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만나지 못했다. 장교 생활을 제외하고서 이제 거의 일을 한 지 9년 정도가 되어 가는데 말이다. 그사이 자금 조달도, 자금 운영도, 재무 기획도, 비서도, 전략도, 사업개발도, 영업도, 행사 진행도, 강연처럼 다양한 업무를 해보았다. 제조 대기업에서 IT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하여 극과 극의 경험도 해보았다. 언제나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 대체로 즐거운 마음으로 일했고 성과도 꽤 냈고 인정도 받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은 아직 만나보질 못 했다.

 앞으로 몇 년을 더 일할지 모르겠지만, 도대체 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은 언제 만날 수 있는 것일까?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특정 분야, 업무를 통해 즐거움을 얻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나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편이다. 나는 '무엇'과 상관없이, 좋은 사람들과 일할 때 즐겁고 좋은 성취를 거두어서 인정받을 때가 기쁜 사람이다.

 사람을 동기 부여하는 요소는 다양하다. 꼭 What이 동기 부여의 요소가 될 필요는 없다. 나처럼 Where, How, With whom이 동기부여가 되는 사람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What이 동기부여의 중요한 이유가 아닌 사람에게 What을 계속 찾으라는 말은 그다지 좋은 조언이 아니다. 오히려 그 사람을 제대로 답을 아직 찾지 못한 미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무책임한 조언이 되어버릴 수 있다. 

 나 같은 유형의 사람에게는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는 조언보다는 '그렇다면 너는 언제 동기부여가 되고 재미가 있니?'라는 방식으로 진로를 설계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나 같지 않은 사람은 어떨까? 진짜 좋아하는 일을 했을 때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꽤 많지 않은가? 본인이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이 된다면, 아래의 질문으로 넘어가 보자. 

    1-1) 그럼 그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지?

    1-2) 그 좋아하는 일을 내가 잘하는가?

    1-3)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을 직접으로 삼을 수 있는가? 밥벌이가 되는가?

    1-4) (잘하지 못한다면)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중에 무엇을 선택해야 하나?

 

 정리해보자면, 좋아하는 일을 반드시 찾을 필요는 없다. 나처럼 좋아하는 일을 꼭 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또한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고 해서 고민이 끝나지 않는다.



2. 나는 무엇에 조금 더 가치를 부여하는가?

 지금 원티드에 나를 추천해주고 함께 일하고 있는 한 살 위 선배가 있다. 그 형과 나는 닮은 점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위에서 말한 '좋아하는 일'이 특별히 없다는 점이다. 뭘 해도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는 편이고, 어떤 것을 하더라도 중간 이상을 할 자신감과 적응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고민을 가지고 그 형은 외국계 증권사에 취업을 하였고 나는 대기업으로 향했다. (물론 지금은 같은 곳에서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

 무엇이 우리의 선택을 갈라놓았을까?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없다고 판단한 우리 둘은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을 생각해보았다. 그 형의 선택은 연봉이었다. '어차피 나는 무슨 일을 해도 크게 상관이 없으니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라고 생각했고,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 중 가장 연봉이 많았던 외국계 증권사로 향했다. 

 나는 조직 생활을 선택했다. 연봉 같은 것보다는 큰 조직의 리더가 되어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싶었고 조직 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었던 나는 큰 조직의 관리자로 성장할 수 있는 대기업을 택하게 되었다.


 똑같이 '좋아하는 일'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전혀 상반된 선택을 하게 된다. 회사 생활이 가져다주는 여러 가지 즐거움들이 있다. 월급이 되기도 하고, 전문성이 되기도 하고, 리더의 역할이 되기도 한다. 좋은 동료일 수도 있고, 명예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하나 좋지 않은 것은 없다. 누구나 명예도, 돈도, 권력도 많이 얻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그런 것들 중 나에게 조금이라도 더 중요한 가치가 뭔지 생각을 해봐야 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도 '돈'을 택했었어야 한다 ㅎㅎ)



3. 좁고 깊게 vs 얕고 넓게

 흔히 Specialist와 Generalist 중에 나에게 더 잘 맞는 것을 찾으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사실 둘 다 좋은 말이라 어느 하나를 택하기가 쉽진 않다. 게다가 요즘은 자기 분야에는 전문성을 쌓고 주변 분야에 대해서도 두루 지식을 쌓는 T자형 인재가 되어야 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으니 더 골치가 아파진다.

 보통 Specialist와 Generalist를 얘기할 때, Specialist는 이해가 쉽다. 내가 하는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은 생각보다 찾아보기도 쉽고, 진로를 고민하면서 머릿속에 그리기도 쉽다. 반면 Generalist는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다. 자칫 잘 못 하다가는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는 애매한 인재'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커리어 목표를 논할 때 '전문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게 된다. 최고의 전략 전문가, 금융 전문가, 마케팅 전문가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딱히 전문가가 되고 싶진 않다. 앞서 말했듯이 그런 특정 분야를 찾지 못한 것이 이유가 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특정 분야를 깊게 아는 것보다는 다양한 것들을 얕게 알고 싶다. 개인의 성향도 그러하고 능력치 또한 그러하다. 남들보다 적은 시간을 투입하여 무언가를 빠르게 남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해내는 데는 자신이 있지만, 꾸준히 뚝심을 가지고 날카로운 칼을 명검으로 같이 벼려내는 일은 크게 재능이 없는 것 같다.


 본인이 지식과 경험을 쌓아서 더 많은 전문성을 갖추고 싶은지 한번 고민해보자. 해당 분야에 대해서 충분한 이해도를 가지고 업무를 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을 더 발전시키고 싶은지 말이다. 당연히 그것은 좋은 가치이고 덕목이지만, 그것보다는 다양한 곳에 관심이 많고 이런저런 일을 해보고 싶은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좀 더 관리자가 되기에 용이하다. 팀원들의 일들을 제각각 이해를 해야 하고, 협업해야 하는 다른 조직의 업무도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지만, 리더십과 협업의 전문가가 되어야지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이 또한 좋은 가치이자 덕목이기에 결국 어느 쪽을 좀 더 선호하는지 선택의 문제가 되는 것 같다.




 나는 위의 고민들을 하면서 커리어를 선택하였고 그 과정에서 좀 더 나를 잘 알아가는 것 같다. 선택이라는 것은 언제나 선택하지 않은 것의 포기가 수반되며, 포기한 것들 또한 가치 있는 것이게 아쉽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지, 무엇은 포기할 수 없는지를 좀 더 잘 이해한다면 그 선택들의 후회가 조금 더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내 진로를 어떻게 꾸려야 하는지 고민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이 글이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지금 당신의 팀은 안녕하십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