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로저스의 예견이 혹시 틀리더라도... 나는 무엇을 배웠나?
나는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짐 로저스에 대해서 잘 몰랐다. 월가의 전설적인 투자자이며 상품(Commodity) 투자의 대가라는 정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그는 미국인이고, 영국에서 석사 학위를 하였으며, 다시 미국에서 일하고, 현재는 싱가포르에서 거주 중이다. 놀랍게도 이 책은 처음 일본에서 출간되었다. 일본어 원제는 “돈의 흐름으로 보기 : 일본과 세계의 미래”이다. 한국어판 제목은 “세계에서 가장 자극적인 나라”이고, 저자가 한국에 대하여 묘사한 표현을 빌어왔다. 아마 한국어판을 준비하면서 책의 제목은 물론이고 한국을 다룬 챕터가 맨 앞으로도 오도록 순서 또한 재배치한 것 같다.
책에서는 역사적으로 세계의 중심이 지속적으로 이동하였는데, 아시아에서 시작하여 지중해, 유럽, 영국, 미국으로 이동되었고 이제 다시 동아시아로 이동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동아시아 중심국인 한국, 일본, 중국의 각국에 대한 견해는 물론 동아시아를 둘러싼 다른 강대국 (미국, 러시아, 인도)에 대한 전망이 중심 내용이다. (책 내용의 통일성은 저해하긴 하지만 투자에 대한 본인의 생각이나 투자를 잘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에 대한 것들도 책의 후반부에서 다루고 있다)
아무래도 한국인인 나에게 가장 흥미롭게 읽히는 부분은 한국에 대한 이야기이었다. 북한의 개방과 이어질 남북한의 통일로 인하여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자극적인 나라가 되어 활기를 띄며 전 세계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는 곳이 될 것이라는 것이 주요 주장이다. 반면 일본은 저출산과 부채 부담으로 인해 활력을 잃어버릴 것이며, 중국은 미국의 뒤는 잇는 새로운 패권국가가 될 것이다라는 것이 동아시아 3국에 대한 주요한 예견이다. 설령 짐 로저스가 한 예견이 틀린 것으로 결론이 날지라도 그가 가지고 있는 폭넓은 지식과 분석의 깊이(예를 들어 각국의 내부적인 정치 상황이나 민족성을 분석하는 그 견해는 꽤나 날카롭다)에는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책이었다.
미래에 대한 전망은 어디까지나 견해일 뿐이기에, 누군가는 짐 로저스의 의견에 동의를 할 수 도 있고 또 누군가는 반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 또한 한국에 대한 희망적인 이 책의 예견이 실현되길 바라는 마음은 있으나, 이 책의 내용에 일부는 동의하고 또 일부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책에서 예견하는 미래의 모습이 어떠한지, 그리고 그것들이 실현이 될지에 대한 찬반 토론보다는 내가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두 가지 감상을 이 글에서 논하고자 한다.
1. 미시 vs 거시,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경제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미시’와 ‘거시’라는 단어를 들으면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이 생각날 것이다. 물론 나도 그렇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쓰는 미시와 거시의 의미는 엄밀한 한문적인 구분보다는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표현이다. 어떠한 복잡한 현상을 파악함에 있어 개별 현상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거대한 원칙을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 ‘미시’적인 관점이다. 귀납적인 방법, Bottom-up과 같은 다른 표현으로 대체될 수 있을 것 같다. 반면 ‘거시’적인 관점은 전체를 관통하는 일반적인 원칙을 먼저 찾아내고 그것을 통해 개별적인 현상에 대해 분석을 하는 것으로, 연역적인 방법이나 Top-down 방식으로 이해해도 될 것이다.
비록 내가 경제학을 전공하긴 하였으나 나는 개별 기업에서 10년 가까이 일해왔고, 현실적인 성격이라 큰 숲을 보는 것보다는 내 눈 앞에 있는 작은 나무를 보는데 익숙하다. 앞서 말한 ‘미시’적인 관점에서 경제를 이해하곤 하는 것이다. 내 관점에서는 국가 경제, 경기 변동과 같은 거대한 지표보다는 당장 우리 회사를, 우리 팀을 어떻게 꾸려갈 것인가에 대해 관심이 더 크다.
반대로 이 책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경제를 바라본다. 나에 비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보통 국가 경제를 논하는 경제학자나 한국은행, 기획재정부 등의 관료들보다도 훨씬 더 장기적이고 넓은 관점에서 경제를 논한다. 내가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면, 거시 경제학자들은 숲을 바라보고 있었고, 짐 로저스는 그 숲을 항공뷰로 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국가 안에서 어떤 산업에 투자할지가 중요하기에 이에 대한 언급도 간혹 있으나, 기본적으로 개별 산업과 기업에 대한 관심보다는 국가 경제 전체에 대한 관심이 크다. 예측의 근거 또한 흔히 국가 경제를 거시적으로 분석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지표인 물가, 환율, 경상지수, 주가 등과 같은 지표보다는 더 추상적이고 거시적인 근거 - 인구 구조의 변화, 이민정책, 국가 부채의 증감, 자원, 국민성 등 -에 기반한다. 일반적인 국가 경제에 대한 예측이 5~10년이라면, 일본에 사는 10살짜리 어린이의 미래는 어떨까 와 같은 질문을 시작으로 30년 후의 미래를 예측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거시적인 경제 분석에 대하여 회의적인 편이었다. 물론 내 지식수준은 그런 분석에 대하여 맞다 틀리다를 논할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 하지만 실물 경제에서 오래 일해 오면서 최소한 그 분석들이 진짜 경제가 돌아가는데 얼마나 영향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요즘 한국 경기가 안 좋은데, 너희 회사는 괜찮니?”라고 묻는다면 “우리 회사는 너무 작아서 경기가 좋고 나쁜 것보다 우리 회사가 잘하냐 못 하느냐가 더 중요해요.”라고 대답하곤 한다. 개별 경제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우리 각각의 삶은 거시 경제적인 분석보다 당장 내가 있는 회사, 산업, 직군의 오르내림에 더 크게 영향을 받게 된다. 그리고 내가 현장에서 듣는 이 목소리가 진짜 경제의 목소리이고, 국가 경제를 논하는 학자와 관료들은 너무나 경제 현장에서 동떨어져서 실제를 모르고 그저 책에만 있는 얘기를 떠드는 것뿐이라고 생각해왔다. 게다가 두산중공업이라는 큰 회사를 나와서 작은 스타트업으로 옮기게 되면서 미시적인 관점에서 경제를 해석하는 내 관점이 더 강해진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과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일본의 경제 제재로 인한 피해를 남북 간의 평화 경제를 통해 극복하겠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정치적인 신념과 상관없이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콧방귀를 뀌었다. 정말 솔직히 말하면 이게 웬 X 같은 소리인가 싶었다. 두산중공업에서 일본 기업의 발 끝이라고 따라가기 위한 전략을 세우면서 그들이 가진 기술력과 자본력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배웠고, 원티드에서 일본 시장에 진입하고자 노력하면서 그들의 내수 시장이 얼마나 난공불락 인지도 알게 되었다. 그런 나에게 일본 경제, 기업들은 넘볼 수 없는 수준의 것으로 생각되었고, 반면에 북한과의 경제협력은 가능성도 실체도 없는 뜬구름으로만 생각이 되었다. 나름 10년의 시간 동안 열심히 경제 일선에서 뛰고 있는 한 명의 비즈니스맨으로서 바라보는 시선은 그러하였다.
놀랍게도 한국과 일본에 대한 짐 로저스의 견해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과 닮아있다. 한국은 북한의 개방과 통일로 흥할 것이며, 일본은 침체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 얼마나 많은 분석과 고민, 연구 끝에 나온 발언인지는 솔직히 의심스럽고 경제적인 분석에 근거한 발언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정치인이니까. 하지만 경제, 투자 분야에서 수십 년 동안 쌓아온 짐 로저스의 명성과 책에서 나온 그의 분석에 근거한다면 짐 로저스의 분석이 마냥 X소리로 읽히진 않는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견해의 차이라고 생각해왔던 것이 관점의 차이에서 나온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와 그들의 차이는 누가 맞느냐, 틀리냐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똑똑하고 그 들이 바보인 것이 아니고, 그 반대 또한 아니다. 분석하고자 하는 대상이 다르고, 기간이 다르기에 당연히 결론도 다르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개별 기업 단위에서 일본 기업의 기술력과 자금을 생각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결론적으로 넘기 힘든 벽이라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범위는 짧게는 당장의 3개월이고, 길게는 3년 정도 수준이다. 내 관점에서 내 견해는 맞을 것이다. 3년 내에 개별 한국 기업이 일본과 같은 경쟁력을 갖추긴 어려우니까.
반면 짐 로저스는 인구 구조의 변화와 국가 부채의 규모 등을 가지고 30년의 시간을 예측한다. 그렇기에 당연히 결론이 다르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맞냐, 짐 로저스가 맞냐의 문제가 아니라 둘 다 맞는 견해일 수 있는 것이다. 북한 효과로 남한의 경제가 발전할 것이라는 짐 로저스와 문재인 대통령의 말도 맞고, 동시에 그것은 뜬구름 잡는 소리에 불과하다는 내 말 또한 맞을 수 있는 것이다.
깊게 고민해보지도 않고, 그저 내 것은 맞고, 네 것은 틀리다는 식의 얕은 생각만 해오던 나에게 이 책은 조금 신선한 자극이었다.
2. 부를 얻는 방법, 투자
경제학과를 나왔고 재무 관련 학회도 하였고 관련 자격증도 있는 등 내 프로필만 보면 재테크를 잘할 것 같지만 사실 난 재테크에 젬병이다. 뭐든지 잘하기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노력을 하지 않으니 실력이 늘 수가 없다. 투자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나 제대로 분석하고 공부하여 투자를 한 것이 아니었고, 자연스럽게 투자의 결과도 행운으로 인한 몇 번의 수익과 무지로 인한 몇 번의 손실이 반복되었던 것 같다.
그런 연유로 오랫동안 ‘투자’는 나에게 `배워야 하지만 제대로 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이었고, 급기야 최근에는 ‘내가 잘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이 바뀌게 되었다. 성인이 된 이후에 뭔가를 배우고 잘하려면 스스로의 의지가 가장 먼저 필요한 조건이고, 그 이후에 노력과 재능, 운과 같은 것들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배우고자 하는 스스로의 의지가 없었고, 앞으로도 생길 것 같지 않다는 확신에 가까운 판단이 들었기에 투자는 나에게 `잘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이 주제에 대해서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그래도 인생의 중요한 부분인데 내가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 책을 통해 확실히 투자는 ‘하기 싫어도 반드시 배워야 하는 일’로 인식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본인의 노동력을 대가로 돈을 버는 노동자로서 경제생활을 영위하게 된다. 노동자들이 벌 수 있는 돈은 결국 일하는 시간에 시간당 급여(시급)를 곱한 금액이다. 그렇다면 노동자가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일하는 시간과 시급을 늘려야 하는데, 모든 사람들에게 시간은 24시간으로 동일하게 주어졌으니 일하는 시간을 마음대로 늘릴 순 없다. 결국 시급을 늘려야 하는 문제로 귀결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고부가가치의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이고 고부가가치의 일을 하기 위해 좋은 대학을 가거나, 자격증을 따기 위해 별별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생각하지 못 한 또 하나의 가능성은 일하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정년을 늘리는 것이고 요즘 불고 있는 공무원 취업 열기가 이 때문인 것 같다) 나 또한 이러한 노력을 거쳤고 대한민국의 평균보다는 훨씬 높은 시급을 쟁취하였다. 하지만 이 정도 월급으로도 치솟는 집값을 감당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물질적 부 측면에서 ‘성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는 거리가 멀다. 물론 나보다 시급이 더 높은 사람도 엄연히 존재하지만... 기껏해야 나보다 5~10개 수준이 최대 수준이 아닐까 싶다. 대한민국 평균보다는 훨씬 더 높은 월급을 받는 수준이겠으나 그 수준이 된다고 해서 큰 부를 거머쥐었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
물질적인 부 측면에서 ‘성공’이라고 할만한 수준에 이르고자 한다면, 결국 나 개인의 노동력을 투입하여 돈을 버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직업으로 치환하여 생각해본다면, 대표적으로 두 가지 예시가 있을 텐데, 기업가가 되는 것과 투자자가 되는 것이다. 노동자가 되어 개인의 노동력을 사용하는 것은 내 노동력을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이기에 금전적으로 플러스의 효과만 존재한다고 볼 수 있지만, 기업가나 투자자가 되는 것은 마이너스의 효과를 가져올 리스크가 존재하고 리스크 존재하는 만큼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도 있는 것이다.
먼저, 기업가가 되는 것은 회사 임직원들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회사 소유주의 부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이다. 노동자들의 만들어내는 부가가치에서 그들의 임금을 제외하고 남는 것이 결국 회사의 부, 자연스럽게 기업가의 부가된다. 남이 만들어놓은 기업을 사는 것은 투자의 영역일 테니, 결국 스스로 기업을 만드는 창업의 길이 엄청한 부를 얻을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이 될 것이다.
‘창업’이 다른 사람의 노동력을 활용하는 방법이라면 두 번째 ‘투자’는 내가 가진 돈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짐 로저스 또한 ‘투자에 대하여 내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내 돈은 쉬지 않고 일해서 나에게 부를 가져다준다’고 밝히고 있다. 형태는 다양하지만 결국 투자는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이 나를 대신하여 돈을 벌도록 하는 것이다.
창업은 내 시간 (인생) 뿐 아니라 누군가의 시간(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기에 쉽지 않은 길이다. 성과가 나올 가능성도 매우 낮고 결과가 나오는 데에도 수년의 시간이 걸리고, 사업을 잘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질이 필요하다.
상대적으로 투자는 (잘하기는 어렵겠지만) 단기간 내에 누구나 쉽게 시도해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시간(인생)은 물론 내 시간(인생)을 걸 필요는 없이, 내 돈만 걸면 되는 것이기에 상대적으로 부담도 적다. 돈 또한 중요한 가치이지만 대출을 받지 않고 여유 자금으로만 진행한다면 시간을 거는 것에 비해 부담이 크진 않다.
그렇기에 투자는 부를 얻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배우고 시도해야 하는 타당한 선택이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서 주식, 부동산, 펀드, 예금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고, 내가 가진 돈의 얼마를 투자할지 또한 천차만별일 것이다. 방법론적인 다양성과 상관없이, ‘투자’라는 행위는 피해 가기 어려운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며, 어떻게든 개인의 부를 위해서 익혀야 할 방법론이다. 또한 육체적인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언젠가 노동력으로 돈을 벌지 못하는 순간이 올 것이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어찌 보면 유일한) 돈벌이 수단이 될 것이다.
이 사실에 대해 그동안 투자를 공부하고 업으로 하는 많은 주변인들로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지만, 이 책을 통해 새삼 다시 깨닫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난 투자에 관심을 가지게 될까? 그리고 그 관심을 바탕으로 노력하고 잘 해낼 수 있을까? 결심을 하긴 했지만 과연 어떨지 나 또한 궁금하다.
미래를 예견하는 책은 너무 많다. 앞서 서술했듯 나는 미시적인 관점에 익숙하고 워낙 현실적인 성격이라 그런 미래에 대한 예견들에 큰 흥미가 생기진 않는 편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현재의 나를 돌아볼 수 있었고, 미래에 대한 예언이 맞고 틀리고 와 상관없이 충분히 나에게는 의미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