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게 밀당하는 제주바람과 그리운 햇빛
3월 초,
봄을 알리듯 따스한 햇살이 느껴져
아이들과 오일장에 가 고무신을 사 왔다.
바람은 조금 불지만
바깥 놀이하기에 딱 좋았고,
SNS에 제주의 봄을 자랑하고
이제 정말 제대로 된
제주를 만나겠구나 싶어 설레었다.
내일은 어디를 가 볼까 두근댈 때
비바람 날씨 예보를 듣고 생각했다.
'비 오는 제주도 멋스럽겠는걸?!'
그리고 다음 날
난 태어나 처음으로 가장 거세고,
무서운 비바람을 만났다.
하늘이 흐려지더니
뚝뚝 빗방울이 내리고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흩날리는 머리카락과 흔들리는 몸에
놀랐지만 아직도 재미있는 기분
'영상으로 찍어놓으면 재밌겠네?!'
해가 지면서 빗방울은 굵어지고
바람도 더욱 거세졌다.
어릴 적 오락실 인기 게임이었던
스트리트파이터의 켄이
'아도~겐'
외치며 날리던 장풍이
창문을 때리기 시작했다.
깨질듯한 소리가 나고,
집 안에선 대화 소리조차 안 들릴 정도였다.
공포영화 배경 음악처럼
휘몰아치는 바람소리에
아이들은 울다 지쳐 잠들었고,
나와 남편은 제정신엔 잠을 못 자겠다 싶어
알코올에 의지해 잠들려 했으나
전기마저 나가
집은 어두운 동굴이 되었다.
'이거 현실 맞지?'
손전등에 의지해 밤새 뒤척이고
다시 시작된 아침,
지붕에서 새기 시작한 비는
거실까지 넘어와 있었고,
마당엔 20킬로 넘는 무거운 유모차가
저기 저 멀리
그리고 우리 집 큰 대문이
바람 때문에 휘어져
제대로 잠기지 않았다.
마냥 행복할 것만 같았던 제주에서
칼바람을 맞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것마저 낭만이라 생각하기엔
뒷감당할 일이 너무 많았다.
순간 생각했다.
난 어떤 제주를 원했던 걸까?
제주에 오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의미를 가지고 제주를 만난다.
서핑하기 좋은 곳
골프 치기 좋은 곳
아이 키우기 좋은 곳
낚시하기 좋은 곳
낭만이 가득한 곳
그중 난 '무조건 행복한 곳'이라 전제하고
이곳에 왔는지 모른다.
제주는 그냥 그 자리에 무엇이지 않은 채
그대로 일 뿐인데
난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안달하고 꾸미고 재해석하고 있었다.
제주를 향한 자신만의 해석이
곧 '나만의 행복'이 될 순 있겠지만,
그전에 오늘의 제주를
그대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함을 느꼈다.
그런 의미로 또 한 번 제주에
아주 주관적인 바람을 붙여본다면
부디 칼바람은 그만 불고
향긋한 유채꽃과 싱그러운 햇살이
온종일 드리우길 바란다.
그게 나에겐 '제주의 봄' 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