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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 Here 세은 Mar 28. 2022

시골에서 느끼는 문명의 혜택

작은 행복과 큰 가치 그리고 선입견

제주에 지금 살고 있는 연세 살이 집에 음식물처리기가 있다.


서울에 살 때 몇 엄마들이 필수템이라며 추천했는데 그렇게까지 필요할까 싶어 웃어넘긴 게 대부분이었다. 아니 가끔은 시샘하는 기분에 남편에게 험담도 했던 것 같다. '그거 잠깐 비닐에 싸서 버리는 게 그렇게나 힘든 일인가?'


지난달 이 집에 들어올 때 싱크대에 음식을 넣고 페달만 누르면 음식이 사라진다는 에 '이 기능에 매달 3만 원을 내다니..'생각했는데 지금의 난 싱크대 앞에서 매일 고맙다고 말하고 있다.


주방 살림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번거로운 과정들이 있는데 그중 가장  괴롭혔던 일은 음식물 쓰레기 처리였다. 국물과 음식을 구분해야 하고 그중 뼈가 있으면 빼내야 하고, 그러다 짙은 양념이 있는 음식은 혹여나 옷에 묻을까 노심초사. 그렇게 겨우 모아놓은 음식물 쓰레기는 그때부터 또 말썽 덩어리다. 여름엔 벌레가 꼬이고 버리러 갈 땐 손에 묻을까 인상을 다.


그런데 음식물 자동 처리기가 이 모든 과정을 한 번에 해결해 준다. 내 손으로 음식을 만지지 않아도 되고, 페달 한 번만 누르면 눈앞에서 시원하게 없어지다니 감탄하다 못해 경이로 지경. 나도 모르게 한 번씩은 페달은 밟으며 '와우!'를 외친다. 제주에서 굳이 시골로 이사오며 다짐한 것 중 하나는 문명이 주는 혜택에서 벗어나 보자 였는데 지금은 그 혜택에 삶이 행복한 기분이라니.


과거를 생각해보면 처음 세탁건조기를 들여놓을 때도 그랬다. 빨래 널면서 운동도 하고 기분도 좋아지고 그런 게 사는 거 아닐까? 생각하며 주변인들의 적극 권유에도 혼자 괜찮다 했었는데 집에 들인 뒤 뽀송하게 말린 빨래를 보며 혼자 히죽댄게 몇 번이었는지.


인간의 뇌는 자신의 역할을 최대한 오래 유지하는걸 최대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곧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는 일들이 생기면 본능적으로 이를 피하고 현 상태를 유지해 소모를 줄인다는 것. 예를 들어 집 앞 편의점을 갈 때도 항상 가던 길로 가야 마음 편하지 누군가 더 빠른 길을 알려준다 해도 쉽게 도전하지 않거나, 새로운 정보를 접하면 우선 단점부터 찾으려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어디까지가 소신이고, 어디부터가 유연함일까?

신체의 유연함처럼 생각도 유연해지기 위해선 평상시 어떤 운동습관이 필요할까? 새로운 지식이나 환경에 우선 반감하지 않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수용해보는 마음 상태를 얻는 마술 같은 방법은 없을까?


우선 다 필요 없고

오늘도 난 싱크대 밑 페달을 밟으며

속 시원한 행복을 느끼는 건 확실하다.


다소 불편하고 벌레가 발 밑에 지나다니는 시골집에서 작지만 매우 큰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오늘도 밟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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