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사회적 역할이 필요해

엄마라는 직업과 사회적 역할의 차이

by Now Here 세은

고3 수능날부터 20여 년간 하루도 노동을 쉬어본 적 없다.


학교 앞 파파이스 알바를 시작으로

하루 3건 이상 일하며 거칠게 열심히 달려왔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을 거쳐

교육업에서 작은 회사를 운영하고

대학교, 기관들 강의 출강을 하며

나름 내 기준의 '성공'을 느꼈다.

내 평생 소비해야 할 노동력이 있다면

지난 20년간 다 쏟아낸 느낌이랄까?

그러다 나이 40살에 오래 기다리던 쌍둥이를 만났다.

40대가 되어 심신이 지치기도 했고,

육아는 사회적 노동에 비할 수 없는

또 다른 헌신이란 걸 깨달으며

슬슬 사회적 역할의 내 이름은 없어져갔다.

사실 한편으론 홀가분했다.

그러다 한술 더 뜬 게 제주 이사.


'이제 열심히 살지 않을 거야!

제주에 가서 느리게 살자!'


이제 갓 두 돌 지난 쌍둥이와 제주에서 사는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웠다.

바쁘게 걷는 사람들도, 빵빵 거리는 차도 없었다.

아침 11시에 문 여는 가게들이 부지런한 곳이었다.


마냥 행복할 줄만 알았던 제주생활 3개월 차,

첫 번째 권태기가 왔다.


집 앞에 보이는 돌담이 더 이상 시적인 느낌이 아닌

예전 살던 아파트 주차장 같아 보이기 시작했다.

매일 감탄사를 내뿜던 예쁜 카페들도 식상했다.

보기 좋은 관광지는 어떻겠나?!

그런 곳은 현지인이 아닌 여행자들의 공간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한테 왜 이렇게 공허하지?'


엄마로서 행복한 여성은 제주에 있었는데,

사회적 에너지를 표현하는 나 자신은 없었다.


지금껏 죽어라 일만 했으니

당분간 멍하니 느리게 살아도 돼!

스스로 다짐했는데 3개월 만에 모든 게 반전이었다.


난 너무나 일하고 싶었고, 내 재능을 표출하고 싶었다.

다시 '인정' 받고 싶었다.

출렁이는 바닷물이 더 이상 예뻐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쉽게 말할 수 있다.

'제주에서 하고 싶은 거 하면 되잖아?!'

맘먹기에 따라 달라진다지만

이미 맘먹기엔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우울감이 깊어졌다.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일하는 모든 여성이 대단해 보였다.


'내가 이 나이에 뭘 하긴 할 수 있을까?'


매일 드는 자괴감에 나를 지배했다.


그러다 시작한 소품샵 알바.

17년 만에 아르바이트를 다시 시작했다!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말했다.

'네가 알바를?! 네 회사는?!'

그건 그때 시작하자. 지금은 노동에 목마르다!

예쁜 소품들이 가득한 제주소품가게 #혜리스마스

주 2일 7시간만 일하는데 세상 소중한 일과가 되었다.

한 때는 귀찮고 언제는 하찮고 가끔은 싫었던

청소, 매장관리, 손님맞이하는 모든 활동이

재미있는 일상이 되었다.


알바를 끝내고 아이들을 만나는 기분은 꿀맛이었다.

신기하게 알바를 한 날엔

아이들에게 [더욱 친절한 엄마]가 나타났다.




20대엔 성장의 가치, 30대엔 인정의 가치,

40대가 되니 역할의 가치가

삶을 이끄는 중요한 욕구가 되었다.


사회생활 초창기 때 일에 미쳐

회사에서 자고 일하고를 반복할 때

엄마가 했던 말이 있다.


'너무 튀지도, 너무 못나지도 않게

그냥 그렇게 두루두루 적당히 하는 게 좋아'


그땐 이 말이 참 답답했는데 이제야 의미를 알 것 같다.

느리게 살고 싶은 나, 즐기며 살고 싶은 나,

엄마란 존재로서 나, 술을 좋아하는 나

그리고

사회적 역할로서 교류하고 인정받는 나

이 모든 게 내 안에 있고

소중히 다뤄줘야 한다는 걸.


애 키우다 보면 어떻게 이런 걸 다 하고 살아?! 싶지만

어떻게든 해보면 성공 VS 좌절이겠지만

안 하면 후회 & 아쉬움뿐이니

우선은 한 발짝 내디뎌 보는 걸로.


사회적 OOO 이란 이름으로서

내 존재를 내뿜어보자.


세상 그 누구도 나에게 관심 없지만

나 자신은 나에게 너무나 스토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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