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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 Here 세은 Jun 29. 2022

뽀로로를 보며 깔깔대는 내 엄마

미워서 사랑하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

제주로 오기 전 난 엄마를 미워했었다.


나 크는 내내 아빠한테 혼나며 단 한번 대들지도 못했던 그녀.

내 나이 18살에 집을 나가 본인의 타당함을 주장하는 그녀.

끝없이 순수한 영혼 탓에

생각 없이 번 돈 다 쓰고 걱정하는 그녀.


여러사정으로 인해 집을 빼야 한다 하니

'넌 인생이 왜 그 모양이니. 잘 살지 못할 망정'이라 말해

괴물처럼 싸운 게 반년 전이다.

본인 가정도 책임지지 못해 자식 버리고 떠난 사람이

무슨 할 말이 있다고 훈계인지 너무 화가 났다.


남편 탓인지 원래 예민한 성격 탓인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정신건강의학과에 상담을 받으니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단다.

'내가? 그 부모한테? 받은 것 없이 나 스스로 컸는데?!'

의사라고 다 정확한 건 아니라 생각하며

한번 가고 말아 버렸다.


제주에 와서 좋은 점 중 하난

'끊을 수 없는 연결고리'로부터 해방된 기분이다.


남들 같지 않은 내 부모, 환경.

그럼에도 신경 써야 하고 신경 쓰이는 부모 자식 관계.

명절만 되면 빙하 속 얼음이 모습을 드러내듯

과거를 끌어올려 화풀이하는 아빠.

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기분이 홀가분했다.


엄마가 나에게 말했듯,

'엄마는 엄마 인생 살고 나는 내 인생 살 거다.'

다짐했는데

지금의 난 그 엄마가 너무 그립다.


이웃 하나 없는 제주에서 갑작스런 몸살에 울며 전화하니

4시간 만에 비행기 타고 날아와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 쌍둥이를 돌봐주신다.


그래도 생각한다.

'원래 할머니들은 다 그런 거야.

부모니까 이 정도는 해줘야지.'

몹쓸 딸자식... 내 엄마가 나로 인해 더 힘들어했음 좋은가보다.


그러다 몇 달 후 이번엔 코로나에 걸렸다.

나 아픈 건 괜찮은데 당장 쌍둥이에게 옮길까,

어린이집은 어쩌나 그녀에게 말하니

하던 일 모두 취소한 후 역시나 날아왔다.


장마철이라 말도 못 하게 습한 내 집에서

 1분 1초도 쉬지 않고

어린 쌍둥이를 앞. 뒤로 엎고 놀아준다.

똥 싼 아이 씻기며 옆에서 다리 붙들고 우는 아이에게

동요를 불러준다.

아이들 잠든 새벽 혹여나 깰까 싶어

변기가 아닌 요강에 볼 일을 보고,

아침엔 기분 좋은 노래로 아이들을 깨워 등원시킨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이 뽀로로를 보는데

그 옆에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계속 깔깔 웃으며 말을 한다.

'포비가 넘어졌네? 아하하 웃긴다. 그치?'

'상어가 크롱 잡으려고 하네?! 어머! 우오오오오아!'


왜 저렇게까지 하나 싶어 쳐다보니

정말 진심으로 뽀로로에 빠져있다.

'역시 내 엄마는 순수하시지. 에휴'


내 코로나가 다 나아갈 때쯤

엄마는 짐을 싸서 육지로 돌아가려 했다.

걱정되는 마음에 엄마에게 잔소리한다.

'괜히 오버해서 애들 돌봐주지 말어.

그래 봤자 애들이 더 놀아달라 그래.'

그녀가 뿌듯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한다.


'내가 하루 종일 애들한테 재잘대서

 이제 말 잘할걸?!'


나이 68세에 3살 쌍둥이를 동시에 안고 놀아주는 내 엄마.

내 한숨 한 번에 눈물 꾹 참으며 나타나는 엄마.

내 나이 18세에 집을 나갔지만 20년 넘게

내 주변에서 나를 지켜주는 엄마.


그녀를 배웅하고 집에 돌아와 아이들을 보니

정말 신기하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안돼. 같이. 내가. 아빠 일해. 좋아. 상어 싫어. 집에 가자.'

두 돌이 지나도록 말문이 트이지 않아 걱정이었는데

며칠 만에 정확한 발음으로 말을 계속한다.


그녀의 사랑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무책임하게 자식 버린 부족한 엄마라 생각했던 사람이

이게 가능한 인생일까 싶게 웃으며 아주 열심히 나누어준다.


지금 만약 나에게 '엄마'란 존재가 없다면

난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제주에 와 처음으로 후회가 들기 시작한다.

그녀 옆에서 지켜주고 싶은데..

그녀와 더 많은 추억을 만들어야 하는데..



엄마.............................



[표지 출처_영화 [엄마의 공책] 일러스트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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