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이 제목으로 글을 쓰게 되는 순간이 오는구나! 너무 오래, 너무 많이 미뤘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다 지난 기억들을 기록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크게 즐거웠던 기억들이라는 인식도 없었고 굳이 어딘가에 기록으로 남기지 않아도 내 뇌는 평생토록 칭다오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을 기억할 거라고 생각했다.
며칠 전에 갓 귀국한 고등학교 후배를 만났다.같이 밥을 먹으면서 고등학교 시절에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려고 하는데 떠오르는 기억이 없었다. 아, 벌써 잊어버린 것들이 많구나. 시간이 기억을 앗아가는 건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때 느꼈던 허전함이 지금 쓰는 글의 도화선이 되었던 것 같다.
약 17년간의 외국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기껏해야 3년이 지났다. 말이 3년이지 중국에 있던 시간과 비교해 보면 반의 반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이다. 그럼에도 나는 가장 좋아하던 마라샹궈가 무슨 맛이었는지 떠올리지 못하고, 즐겨 갔던 노래방에서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이제 정말 그간의 기억들을 어딘가에 덜어 놓아야 할 순간이 왔음을 깨달았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내 기억 속의 중국은 상당히 미화되어 있을 수도 있음을 미리 밝혀두고자 한다. 몇 달 이상으로 오래된 일들을 전부 즐거운 추억으로 승화시켜 버리는 내 두뇌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칭다오는 적당한 크기의 해안도시로, 중국의 타 도시에 비해 한인이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내 행동반경은 주로 라오샨구(崂山区), 리창구(李沧区), 청양구(城阳区)로 한정되어 있었는데 초•중학교가 라오샨구, 고등학교가 리창구에 있었고 한인 주거지역이 청양구에 있었다.
사실 초•중학교 시절의 일은 벌써 가물가물하다. 내가 다녔던 바이샨(白珊)학교는 사립이었고, 유치원부터 초•중•고등학교가 한 부지 안에 통합돼 있는 상태로 함께 운영되었다.초등학교부터 중학교 2학년까진 내내 같은 학교를 다녔는데, 돌이켜 보면 정말 얌전하고 조용하게 살았다.
당시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수학, 영어가 포함된 모든 과목을 모국어가 아닌 중국어로 배우는 건 미친 짓이었다. 그나마 중국어 의존도가 낮은 수학, 영어에서는 준수한 성적을 받았지만 직접 시조 등을 읽고 해석해야 하는 어문 시간은 내게 있어 고통과 인내의 40분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부터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해졌다. 역사, 생물, 화학을 모두 중국어로 배우면서 안 그래도 낮았던 내 공부에 대한 흥미는 바닥을 쳤다.
중국은 중카오(中考)라고 중학교를 졸업할 때 치게 되는 수능 비슷한 시험이 있는데, 생물•지리 같은 경우에는 후이카오(会考)라고 해서 중학교 2학년이 끝날 때 미리 시험을 보게 된다. 당시 나는 현지 명문고등학교였던 청도 2중 입학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후이카오 점수가 예상보다 낮아 고심 끝에 국제학교로 옮겨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