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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rat May 01. 2017

2017年 4月, 함께한 책들

<월간 독서기록>

 

맑은날 벚꽃



짧았던 벚꽃만큼 빠르게 지나 간 4월이었다.

4월의 마지막 날 지나간 4월을 정리해야겠다.











1. <이갈리아의 딸들> (원제: Egalia's daughters : a satire of the sexes),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히스테리아 역, 황금가지, 1996, 354p


페미니즘의 고전. 대부분의 대학 여성학 관련 수업에서 참고 도서거나 추천 도서일 만큼 유명한 책이다. 전 세계에서 영화, 연극 등으로 재생산되어 온 콘텐츠이기도 하다. 사실 지금에서야 이 책을 읽은 것에 대해 조금의 부끄러움이 있다. 너무 유명한 책이다 보니 '언젠가 읽어야지' 하면서 미루게 되었으니. 흔히 이 책을 소개할 때 '페미니즘 유토피아'로 소개하곤 한다. 이 책은 작가가 상상력으로 만든 가상의 세계 '이갈리아'를 다루고 있다. 이곳 '이갈리아'는 남성과 여성의 기존 성 역할 체계가 완전히 뒤바뀐 세계다. 때문에 책을 읽기 전에 새로운 용어들을 익히고 읽어야 한다. 여성은 '움, 남성은 '맨 움'으로 지칭되며,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과 성격 모두가 반대로 설정되어 있다.


타인의 감정을, 나아가 그들을 진심으로 이해하려면 사실상 '그 입장' 이 되어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이 책은, 실제로 뒤바꿀 수는 없으니 가상으로나마 '역지사지'를 느끼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성들을 통쾌함과 슬픔을 함께 느낄 것이다. 어쩌면 슬픔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겠다. 이 이야기는 소설 속의 이야기고, 책을 덮는 순간 내가 마주하는 것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결국 소설 속에서 느껴진 통쾌함은, 답답함이 되어 돌아온다. 남성들은 놀라움을 느끼거나,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겠다. 상대방이 '이해'되기 시작할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양 쪽 모두에게 우리가 얼마나 고정된 성 역할에 묶여 있는지, 비 물리적/물리적 형태로 상대방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는지, 상대방은 어떤 식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며, 받아들이고 있는지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페미니즘 유토피아', 즉 '양성평등 유토피아'는 어떤 세계일까? (아직은 아닌 게 분명하니까)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은 수십 년 전 노르웨이 작가의 작품이다. 하지만 지나간 세월이 무색하게도, 이갈리아의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씁쓸한 사실이다.)  국내에 출간된 지는 40여 년이 지났는데, 작년에 본문과 표지가 수정된 개정판이 나왔다. (무려 한정판 양장본이 함께 나오기도 했다.페미니즘이 돈이 된다는 소리다. 페미니즘에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가 원하는 '유토피아'는 무엇일까? 과연 유토피아는 올까?


“억울해” “불쌍해”라는 결론이 아닌, 새로운 삶의 방식과 사회 질서에 대한 꿈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으로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데 이 책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2. <나는 당당한 페미니스트로 살기로 했다> (원제: shrill: Notes from a Loud Woman), 린디 웨스트, 정혜윤 역, 세종서적, 2017, 376쪽


일단 저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힘겨운 싸움을 견뎌 내 온 그녀에게 보내는 박수. 한마디로 '대단하다'라고 느꼈다. 저자 린디 웨스트는 미국 태생의 작가이자, 여성운동 활동가, 영화 비평가, 저널리스트다. 여자는 날씬하고, 조용하고, 순종적일 것으로 기대되며, 사회 곳곳에서 무비판적인  여성 혐오가 만연한 현실이지만 , '커다란 몸집'의 그녀는 '당당함'과 유쾌함' 그리고 '끈질김'으로 무장하여 힘겹게 싸워왔다. 사회가 강요하고 기대하는 사실이  뚱뚱한 여성인 자신에게 가한 폭력에 대한 이야기, 주체인 '여성'이 지워지는 '낙태'라는 주제, '비만'에 대한 사회적 혐오(예를 들어 '비만'을 개인의 게으름으로 치부하여 사회 전체가 오지랖을 내세워 비판한다든지)에 맞서서 비만인 사람들도 존중받을 필요가 있는 사실을 인정받기 위해 싸운 것, 강간 유머를 아무렇지 않게 정당화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언들과 공개적으로 맞서 싸운 것, 자신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입에 담지 못할) 인터넷 폭력에 맞서서 끈질긴 전투를 벌인 이야기. 한 사람이 싸워내기엔 벅차 보이는 이 모든 싸움을 그녀는 외롭고 힘겹게 해냈다. 힘들고 지칠 만도 한데, 웃음을 잃지 않는다. 흉내 낼 수 없이 유쾌하며, 희망차다. 그녀가 이렇게 쉼 없이 전투를 벌여온 것은 비단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모든 여성들을 위해, 뚱뚱한 사람들을 위해, 인터넷에서 이유 없이 공격받는 이들을 위해, 그러니까 우리 모두를 위해 싸웠다.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런 사람이 있어서 아직 살 만한 세상이구나' 싶었다. 변화를 만드는 사람. 모두를 위한 변화를 향해 싸우는 사람. 그녀가 '특출 난' 용기를 가진 사람이어서는 아니다. 둘째 가라면 서러운 소심한 그녀였다. (책 앞부분에 증거(?)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그녀는 그저 우리 모두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다. 단지 조금 더 용기 냈을 뿐.


지금 나의 직업적인 삶에서 내가 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람들 앞에 공개적으로 나서서 ‘틀렸다’라는 단단한 방패를 내걸고 그것을 꿋꿋하게 지켜나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중략).... 그것은 사회가 여자들에게 정해놓은 경계 - 고분고분하고, 다른 이를 돌보는 사람이 되고,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으라는 명령 - 를 걷어차서 무너뜨리고 나 자신의 경계를 세우는 한 가지 방식이다. 나는 이걸 할 거야. 저걸 할 거야 하면서 말이다...(중략)... 이것이 바로 세계를 만드는 일이다.

내 작은 승리들 - 트롤의 강간 농담에 저항하고, 뚱뚱한 사람들의 인권을 되찾는 일 - 이 세계를 만드는 일이다. 다양한 목소리들을 위해 싸우는 것이 세계를 만드는 일이다....(중략)... 투표가 세계를 만드는 일이다. 친절, 공감, 들어주기, 공간 만들기, ‘맞다’라고 말하기, ‘틀렸다’라고 말하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 지금 이 자리에서, 현실 속에서, 우리의 세계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우리, 그 세계를 더 나은 것으로 만들어나가자.   -367 -368p












3. <Commencement> (졸업), Sullivan, J. Courtney, New York : Vintage Books, 2010, 419쪽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국내에는 아직 번역이 되지 않아서 원서로 읽었다. 내용이 워낙 재미있고, 어려운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네이티브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든 수준은 아니다.


이 책은 네 여성의 대학 '졸업' 전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Celia, Bree, April, Sally 네 명은 Smith College에 입학하면서 같은 기숙사 구역에 배정받고, 곧 '베스트 프랜드'가 된다. 각 챕터들도 돌아가면서 한 명씩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말 그대로 '엎어지면 닿을' 곳에 사는 이 4명의  대학 생활 또한 서로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이 책이 재밌는 점은 네 명의 캐릭터가 확실하다는 것이다. 비슷하기도 하지만 너무나도 다른 이 넷. 어딘가엔 있을 법한 그런 다른 친구들. 아마 만약 이 책을 읽는 젊은 여성 독자는 자연스럽게 누가 나랑 가장 가까운지 생각하게 될 것이다.  덧붙일 점은, 캐릭터 설정이며 심리 묘사가 워낙 세심해서 꼭 한 명이 전적으로 나와 맞다기보다 각각 캐릭터의 부분 부분에 크게 공감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점이다.


거의 24시간을 동일한 환경에서 붙어 지내던 이들도 '졸업'과 함께 미국 전역으로 흩어지게 된다. 이제 각자의 삶을 살아갈 시간이다. 졸업 이후의 삶은 쉽지 않다. 계속되는 선택의 갈림길, 거절, 사랑, 고통, 외로움, 슬픔, 답답합, 초라함, 분노, 실망, 피로, 후회...  모든 것을 공유하던 친구들도 서로 각자 다른 길을 가면서 다른 생활을 하고, 다른 터전을 갖고, 다른 사람들과 만나면서 자연스레 멀어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정을 지켜내는 이들을 지켜보며 응원함과  동시에 씁쓸함을 느꼈다. 이 세상에 지키기 어려운 것들은 너무나 많은데, 우정도 그중 하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이 단지 네 명의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 네 명은 곧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여성들이기도 하다. 주인공 4명은 제 1 세계의 젊은 백인 여성들이지만, 꼭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 네 명의 이야기를 통해 볼 수 있는 페미니즘 적인 요소도 많고, 미국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보고 비판적인 생각 또한 갖게 된다. (비단 미국 사회만 해당되는 내용들은 아닐지라도) 작가가 설정한(그리고 작가가 실제로 살아온) 시기엔 미국 사회에서 처음으로 , 그러니까 이전 세대와 다르게 수많은 기회와 선택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 여성들이 있다. '결혼'이라는 전통적 가치관이 더 이상 절대적 미래가 아니며, 각 분야에 고등 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진출하여 커리어를 쌓아간다. 선택의 자유가 옛날과 다르게 비교적 높아졌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은 큰 폭으로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기성세대와의 충돌도 있고, 스스로 느끼는 혼란도 있다. 하지만 이 네 명은 서로에 의지하고 서로를 도우면서 이 '혼란스러운' 시기를 잘(사실은 참 힘겹게) 헤쳐나간다.


2017년 지금을 살아가는 이 땅의 젊은 여성들이 공감하고, 생각할 만한 부분이 많은 책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굉장히 재밌다. 작가는 실제로 책에서 배경으로 설정된 Smith College를 졸업했다. (그 때문인지 대학 생활이나 모든 것이 상당히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아마도 이 소설은 허구이자, 작가가 직접 보고 느낀 실제일 것이다.











4. <왜 지금 한나 아렌트를 읽어야 하는가?> , 나카마사 마사키, 김경원 역, 갈라파고스, 2015, 264쪽

한나 아렌트의 저작들을 읽기 위해 '준비운동' 겸 읽어 본 책이다. 읽어 본 결과는 만족스럽다. 잘 고른 듯하다. 작가의 목적이 무자비하게 난해한 한나 아렌트의 사상을 조금이나마 구체적이고 쉽게 전해보고자 한 것이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은 한나 아렌트의 저작 중 <전체주의의 기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인간의 조건>, <혁명론>, <정신의 삶>을 중심으로 아렌트 사상의 핵심을 소개하고, 나아가 현대의 정치적 현안과 연관시켜 풀어낸다. 내가 느낀 한나 아렌트의 사상 중 가장 강렬한, 중심적인 부분은 아래와 같다.


한나 아렌트는 특정한 언어 공동체에 한정되지 않는 ‘인간’의 조건으로서 ‘복수성’을 탐구하려고 했다. ‘복수성’을 낳고 인간을 ‘인간’ 답게 해주는 ‘행위’에 주목함으로써 전체주의적 폐쇄성으로부터 이탈하려고 한 점이 한나 아렌트의 언어관이 지닌 특징일 것이다.   -105쪽













5. <뉴스의 시대> (원제: The News: A User's Manual), 알랭 드 보통, 최민우 역, 문학동네, 2014, 304쪽

일상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이 본 '뉴스'는 어떨까? 이 책은 원제에서도 알 수 있듯 '뉴스'에 관한 분석이라기보다는 뉴스를 소비하는 우리에게 보내는 '사용 설명서' (User's Manual)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꽤나 두터운 독자층을 보유한 인기 작가이므로 신간이 나올 때마다 활발한 마케팅 대상이 되곤 하는데, 비교적 이 책은 다른 책들에 비해 인지도가 적은 것 같기도 하다.(내 느낌 탓일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이 책은 옛날에 한 번 읽은 적이 있는데 최근 다시 읽어 볼 필요가 생겨서 도서관에 가서 다시금 정독했다.(사진을 찍는 것을 깜빡했다. 대신 구글 검색으로 책 표지 사진을 가져왔다.) 이 책 역시 알랭 드 보통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특유의 예리함과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어 읽으면 재미있다. 실제 '뉴스' 들로 예시를 들어 설명하니 더욱 재밌고.(중간에 한국의 기사도 있다.) '뉴스의 홍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보내는 그의 걱정이자 조언이 아닌가 싶다. 그는 사람들이 뉴스에 매몰되지 말고, 보이는 것을 모두 믿지는 말고, 주어지는 대로만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현명하고 지혜롭게 뉴스를 소비하길 바라는 마음에 이 책을 썼을 것이다. 그래서 뉴스가 어떤 것인지, 뉴스가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은 무엇인지, 뉴스를 만드는 사람들은 누군지, 실제로 우리는 뉴스를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지, 뉴스가 원하는 바는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면서 결과적으로 '우리는 뉴스를 어떻게 소비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뉴스는 현대 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자 상품이다. 뉴스는 중요하지만, 한편으론 중요하지 않다. 그 균형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지혜롭게 뉴스를 이용해야 한다는 그의 조언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전쟁, 부채, 폭동, 실종된 아이들, 시사회 뒤풀이, 신규 상장, 불한당 같은 미사일 등이 전례 없는 중요성을 갖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뉴스가 부추긴 인상에서 놓여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때때로 상상 속에서 우주로 솟아오를 수 있어야 한다. 지구 맨틀로부터 수천수만 킬로미터 위에 있는 곳, 특별한 회의와 까다로운 전염병, 새 휴대전화와 무시무시한 산불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줄어들고, 심지어 가장 해결하기 힘든 문제들조차 다른 은하의 풍경이 입증하는 영겁의 시간에 부딪혀 소멸하는 곳으로.
...(중략)...

뉴스가 더 이상 우리에게 가르쳐줄 독창적이거나 중요한 무언가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챌 때 삶은 풍요로워진다. 그때 우리는 타자와 상상 속에서만 연결되는 것을 거부할 것이다. 타자를 정복하고 망가뜨리고 만들거나 없애는 일을 그만둘 것이다. 아직 우리에게는 할당된 짧은 시간 속에서 견지해야 할 자신만의 목적이 있음을 자각하면서 말이다.   -291쪽















6. <애도 일기> (원제: Journal de deuil), 롤랑 바르트, 김진영 역, 이순, 2012, 280쪽

롤랑 바르트. 철학계에서도 문학계에서도 중요한 이 프랑스의 지성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를 1970년에 발간된 『텍스트의 즐거움』이라는 놀라운 책에서, '저자의 죽음과 독자의 탄생'을 만들어낸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새로운 '읽기'를 시도한 사람이기도 하며 가장 과학적이고 대표적인 기호학 저서 『모드의 체계』를 쓴 사람이기도 하다. 바르트의 업적(?) 대한 설명은 끝이 없다. 이 책은, 그와 그의 어머니에 대한 책이다.


그의 어머니 앙리에트 방제가 사망한 1977년 10월 25일의 다음 날부터 시작된 이 일기는 2년 뒤인 1979년 9월 15일에 끝난다. 사실 바르트가 써놓은 '메모'들을 모은 텍스트다. '메모' 조차 남다른 사람이란. 이 책을 읽으면 바르트의 그의 어머니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진심으로 느낄 수 있다. 텍스트를 통해 그의 진심 어린 슬픔과 애도가 느껴진다. 그 슬픔을 어떻게 저렇게 표현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역시나 천재)  너무나도 슬프면서 아름다운 이 텍스트들을 써내면서 그는 위안을 얻고 슬픔을 덜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어디에든, 무엇이든 써내면서 슬픔을 토해냈을 것이다. 심지어 많은 메모들을 휴지 조각에 썼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두려운 것 중 하나다. 가장 두려운 것이 현실이 되었을 때의 슬픔과 혼란, 그리고 비통함을 바르트는 잘 견디기도, 잘 못 견디기도 한다.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기에. 바르트의 어머니를 향한 사랑은 특별했다. 그가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로 취임하면서 어머니를 맨 앞자리에 앉혀 놓고 취임 강연을 한 유명한 일화가 이를 보여준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은 조각조각으로 갈라져 수 없이도 자신을 찔렀을 것이다. 삶과 죽음, 그 극단의 경계에서 먼저 선을 넘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산 자의 애도. 죽음은 우리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빼앗아 가는 동시에 많은 것을 준다. 죽음에 대해, 삶에 대해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슬프다. 많이 슬픈 책이다. 누군가를 잃는 것은 슬프다.



10.27
내 주변의 사람들은 아마도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다(어쩐지 그런 것 같다), 나의 슬픔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하지만 한 사람이 직접 당한 슬픔의 타격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측정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이 우습고도 말도 안 되는 시도).  -20쪽

(누군가의 슬픔이 얼마나 큰지는 타인이 절대 결정할 수 없다. 그것은 분명하다. 누구도 타인의 고통과 슬픔의 크기를 결정할 수 없다. 특히, 누군가를 잃은 이들에게  "그만하면 됐다"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절대로.)


1978.10.8

마망의 죽음은, 모든 사람들은 죽는다는, 지금까지는 추상적이기만 했던 사실을 확신으로 바꾸어주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그 어떤 예외도 없으므로, 이 논리를 따라서 나 또한 죽어야만 한다는 확신은 어쩐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216쪽












이제 5월이다. 2017년도 어느새 반을 달려가고 있다. 5월에는 대한민국에 아주 중요한 행사도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웃는 밝은 5월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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