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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rat Apr 01. 2017

2017年 3月, 함께한 책들

<월간 독서기록>



녹음의 기운이 다가와야 하는데, 어쩐지 매일 보는 하늘은 답답한 3월이었다.

어디든 걸어가고 싶어야 하는데, 마스크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서둘러 실내로 들어가는 3월이었다.

4월에는 '봄의 하늘'이 나타나길 바라면서 지난 3월을 돌아본다.









1. <벨 자> (원제 : The Bell Jar), 실비아 플라스 (Sylvia Plath), 공경희 역, 마음산책, 2013, 332p


비운의 천재,  시집으로 퓰리처 상을 사후에 수상한 유일한 저자... 실비아 플라스 앞에 붙는 수식어는 비슷하면서 다양하다.  <벨 자>는 저자가 유일하게 남긴 소설로, 저자가 죽기 몇 주 전 ‘빅토리아 루커스’라는 가명으로 1963년 영국에서 출간된 자전적 소설이다. '소녀판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하는 성장 소설로, 1950년대의 미국 사회에서  모범생으로 살아온 열아홉 살 에스더 그린우드를 내레이터이자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고 히스 레저가 경기장에서 'Can take my eyes off'를 부르는 장면으로 유명한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10 things I hate about you,1999)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인 캣이 거실 소파에 앉아 표지에 커다랗게  'THE BELL JAR'라고 쓰여 있는 책을 읽고 있는 장면이 괜히 떠오른다.


여덟 살 때 처음 《보스턴 헤럴드》에 시 작품을 실을 정도로 어려서부터 문학적으로 뛰어났으며 1950년에 스미스대학 장학생으로 입학해 문학을 공부하고 우등으로 졸업한 후 1955년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공부한 작가의 삶을 생각할 때, 이 소설은 가상이자 실제다. 섬세하고 진지하게 실비아 플라스가 그린 '여성의 삶'은 복잡하다. 동시에 치열하다. 조경란 소설가는 추천평에서 "실비아 플라스처럼 그 이름만으로도 이미 전설이 된 여성 예술가들이 있다. “미친 듯이 공부하고, 읽고, 쓰고, 일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 그녀들은 한때 종 모양의 유리관, 벨 자 밑에 앉아 있었다. 두려움에서 자유를 향해 자신을 쏘아 올리고 싶었기 때문에. 『벨 자』는 실비아 플라스가 유리관 밖으로 걸어 나와 쓴, 매달리고 싶은 생의 기록이다."라고 말했다. 그녀가 갇힌 '벨 자'(유리병)는 그녀 개인의 것이면서도, 그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여성들이 갇혀 있는 것이기도 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열정과 재능, 하지만 다른 것을 기대하는 사회 사이에서 느끼는 모순은 유리병 속의 그녀를 점점 질식시켰다.  (뒤의 <멋진 신세계>에서도 병 속에 갇힌 삶에 대한 표현이 나온다. "그들에게는 미리 운명이 결정되어 있으므로 어쩔 수가 없어요. 숙성기가 끝난 다음이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병 속에 머무는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죠. 유아기와 태아기의 고정관념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병 속에 갇혀 살아갑니다. 물론 우리들도 저마다 병 속에서의 삶을 살아갑니다." p.337)

내 인생이 소설에 나오는 초록빛 무화과나무처럼 가지를 뻗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가지 끝마다 매달린 탐스러운 무화과 같은 멋진 미래가 손짓하고 윙크를 보냈다. 어떤 무화과는 남편과 행복한 가정과 아이들이었고, 어떤 것은 유명한 시인이었고, 또 어떤 것은 뛰어난 교수였다....(중략)...

무화과나무의 갈라진 자리에 앉아, 어떤 열매를 딸지 정하지 못해서 배를 곯는 내가 보였다. 열매를 몽땅 따고 싶었다. 하나만 고르는 것은 나머지 모두를 잃는다는 뜻이었다. 결정을 못하고 그렇게 앉아 있는 사이, 무화과는 쪼글쪼글 검게 변하더니 하나씩 땅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107p)
“서로 다른 두 가지를 동시에 하고 싶은 게 신경증이라면 난 끔찍한 신경증에 걸렸어. 난 죽을 때까지 완전히 다른 것들 사이를 날아다닐 거야.” p.129



"실비아 플라스는 <벨 자>에서 그녀의 세대가 마주하기 꺼린 진실들을 지긋이 응시했다."
 - 인디펜던트


실비아 플라스는 대중적인 현상이며, 개인사와 작품과는 별개로 그녀 자체가 문학에서의 한 사건이다.
- 라이프




주인공의 대사. 작가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그녀는 살기 위해 이 소설을 썼을 것이다. 왜 보통 너무 슬프거나 화날 때, 책상에 앉아서 뭐라도 써버리면 마음이 진정되고 생각이 정리되는 경험이 있듯이 말이다. (물론 이 소설은 그런 단발적인 감정의 결과물과는 차원이 다르지만 말이다.) 글쓰기는 그녀에게 탈출구, 도피처, 안식처였으며 한편으로는 뛰어난 재능을 보이면서 세상의 모순을 느끼게 하는 원인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삶까지 담보로 걸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실비아 플라스는 30살의 나이에 가스 오븐에 머리를 박고 자살했다.














2. <멋진 신세계> (원제 : Brave new world), 올더스 헉슬리, 안정효 역, 소담 출판사, 2015, 400p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우리가 이야기하던 '미래'가 어느새 '머지않은 미래'가 되어가는 요즘 1932년에 발표된 후 꾸준히 전 세계적인 스테디셀러인 이 놀라운 소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난자를 얼리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조선일보 2017년 3월 20일 자 기사) 냉큼 생각이 나 꺼내 읽었다. 언제 읽어도 놀랍고 흥미롭다. 무려 반 세기도 훌쩍 넘은 시간 전에  한 인간의 머리에서 이런 생각들이 그려지고 있었다니!  


지금도 그가 던진 질문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과학'이 최고로 발달하여 모든 것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문명 시대를 다루고 있지만 이 소설의 주제이자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단연코 '인간'이고 '윤리'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유대가 사라지고 모든 것이 계획과 세뇌로 이루어져  스스로 생각할 자유조차 주어지지 않는 이 '멋진 신세계'를 보면서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아니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돤다.  

"하지만 난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그리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   362p



다행히(?) 그가 그린 미래는 아직 다가오지 않았다.

다가 올 미래는 과연 진정한 의미의 '멋진 신세계'가 될 것인가?

이야기의 결말은 우리에게 달렸다.













3. <구원의 미술관 > (원제: あなたは誰?私はここにいる), 강상중, 노수경 역, 사계절, 2016, 240p


강상중 교수의 책은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는 <살아야 하는 이유>)일본어로 쓰여 번역된 책이지만 저자의 책을 보면 항상 문장에서 따뜻하면서도 강인함이 느껴진다. 미술 작품들과 관련하여 삶과 철학, 사회와 인간에 대해 저자의 경험과 생각을 차분하게 전하는 책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책을 덮은 후엔 무언가로 마음이 묵직하게 가득 차 있는 느낌을 받았다. (감동일 수도, 희망일 수도, 혹은 위로일 수도 있겠다.) 미술 작품을 통해 이야기를 하게 된 계기를 저자는 "아름다움과 그림에 감동하는 것 또한 그것이 아무리 작은 힘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사람들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저자는 우리가 어둡고 비참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희망과 빛을 엿볼 수 있는 실마리를 '감동하는 힘'으로 보고 있다. (142p)



책에서 특히 인상 깊은 부분은 젊은 시절의 저자가 자신에 대해 이야기 한 부분이었다.  

당시의 저는 선택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정체불명의 자유를 즐기며 나태와 몽상 속으로 스스로의 모습을 숨기는 오만하지만 자신 없는 젊은이, 아니 더 이상 젊다고도 할 수 없는 모라토리엄 인간이었습니다. (22p)


하지만 뒤러의 <자화상>은 이런 저자에게  '결단'의 힘을 주는 감동을 선사한다.

뒤러의 <자화상>을 만나고 나서야 제 마음속에 있던 그 어슴푸레한 빛으로부터 어떤 희망이 생겨날지도 모르겠다고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30년 전, 삶의 전환기에 이렇게 뒤러와 마주한 일은 제게 ‘결정적인 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여기에 있어,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    (22p)



이 책을 읽은 후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4.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원제: マルクス のかじり方), 이시카와 야스히로, 홍상현 역, 나름 북스, 2016, 220p


귀여운 표지에 끌려 구입 해 버린 책. (심지어 나중에 찾아보니 일본 원판보다 귀엽다.) 가벼워서 이동 시 읽기에 좋다고 생각했다. 우연이지만 큰 수확(?)이었다. 저자는 현재 고베여학원 대학 종합문화학과 교수로, 자타공인 마르크스 전문가이다. 이 책은 정말 제목대로 마르크스가 '처음'인 사람에게 딱인 책이다.(정말 정말 쉽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인 배경 때문인지 아무래도 '마르크스'의 'ㅁ'만 나와도 편견을 가지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서구의 많은 지성들은 20세기 최고의 사상가로 단연코 마르크스를 꼽는다. 그는 천재적 사상가이자 동시에 혁명가였다. 나도 사실 철학 수업에서 마르크스를 만나 본 것 말고는 별다른 지식이 없는 상태다. (그것도  '니체' , '서양 현대철학' 수업 등에서 잠깐 언급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마르크스를 좀 공부해야겠다는 각성을 했다. (책 말미에 추천 도서들도 가득하다.)


이 책을 통해 만난 마르크스는 역시나 굉장한 천재이자 단단한 사람이었다. 뭐든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원래의 것과 다른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들은 천재다. 사실 우리에겐 그다지 놀랍지 않은 것들이, 누군가 어떤 천재가 시작하거나 세상에 알린 뒤에 그것이 정착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익숙한 것이라는 점을 새삼 느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 대해 좀 더 정확하고 깊은 차원의 이해를 하고 싶다면 (특힌 경제적 구조) 마르크스의 이론을 접해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근대 사회의 경제적 운동 법칙을 폭로하는 것이 이 저작의 최종 목적이다.  - <자본론> 제 1권, 12쪽



비단 마르크스의 사상이나 이론뿐만 아니라, 교육자답게 저자는 앞으로 미래의 주인공이 될 청년들에게, 특히 대학생들에게 마르크스를 권하고 있다. "무조건 읽어!!!"의 강압적인 태도가 아니라, 청년 마르크스의 이야기나 저자가 직접 경험한 학생들의 삶과 고민들을 바탕으로 조언이자 위로를 해 주고 있다. 비록 이미 대학을 졸업한 나지만  '내가 막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 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좋았을 텐데!'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보며 마르크스의, 그리고 저자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지위의 선택에 즈음하여 우리가 주요한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은, 인류의 행복과 우리 자신의 완성이다....(중략)... 인간의 본성이란 그가 자신과 동시대 사람들의 완성을 위해, 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일할 때만이 자신의 완성을 달성할 수 있게 되어 있다.
- 1835년, 17세의 마르크스가 쓴 <직업 선택을 앞둔 한 젊은이의 고찰> 일부













5. <숨결이 바람 될 때> (원제 : when breath becomes air), 폴 칼라니티, 이종인 역, 흐름출판, 2016, 284p


 2014년 출판 기획이 공개되자마자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2016년 출간 후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는 책이다. 나도 오고 가며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순위에 항상 있는 걸 보고 궁금하긴 했다. 하지만 감성적인(?) 제목 때문인지, 베스트셀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청개구리 심보 때문인지 항상 지나쳤고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히 엄마가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 중에 눈에 띄어 읽기를 시작했는데, 앉은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마침 밤에 발견했고 그날 긴 숙면은 포기했다. 이제야 이 책을 접한 나를 반성하면서)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이 책은 전문의를 앞둔 신경외과 레지던트 마지막 해, 폐암 4기 판정을 받은 한 남자가 기록한 마지막 2년 간의 기록이다. 췌장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후의 기록을 담은 고 랜디 포시 카네기멜론 대학 교수의  <마지막 강의> 가 떠오르기도 한다. 실제로 이 둘의 삶은 매우 닮았다. 누구나 부러워하고 명예로운 직업을 가졌으며 (즉 앞으로의 미래가 굉장히 희망적이며),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삶을 꾸려가던 사람들이었다. 이랬던 이들에게 '죽음'이 찾아온다.


  저자 폴 칼라니티는 신경외과 레지던트였다. 그는 스탠퍼드 대학에서 영문학과 생물학을 공부했고, 영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과학과 의학의 역사, 철학 과정을 이수한 뒤 예일 의과 대학에 진학하여 의사의 길을 걸었다. 이처럼 문학과 철학, 과학과 생물학을 공부한 그는 그 모든 교차점인 의학을 공부하기로 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진정한 문이과 '융합형 인재'다.) 그래서인지 역시나 글 전반에서 높은 수준의 문학적 감수성과 철학적 사고가 느껴졌다.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 매일 좀 더 아파지는 순간에서도 저자는 글을 썼다. 어쩌면 직장을 때려치우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보낼 수도 있었다. 그저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먹고 싶은 것 다 먹으며 얼마 남지 않은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글 쓰기를 택했다. 죽음의 문턱 앞에서도 글을 썼다. 그리고 떠난 그가 남긴 이 글은 여기 이 세상에 남겨진 누군가에게 위로가, 희망이, 감동이 되고 있다. 어쩌면 저자에게도,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지금까지 쌓아 온 자신의 삶과 자신의 존재 자체의 가치를 지켜내는 일이 되어줬을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나는 글쓰기를 현실로 여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내게 글쓰기는 현실에서 벗어나는 방식이다."라고 말했다. )


'죽음'은 항상 내 관심을 끄는 주제다. 누군가 이 세상에서 '가장 과학적인 것', 가장 '객관적인 사실'이 무엇이냐 물으면 나는 "사람은 죽는다."(people die.)라고 말할 것이다.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도 예외를 찾지 못했고, 누구든 경험해야 하는 진리다. 죽음 앞에서 모든 인간은 철학자가 된다. 죽음 앞에선 가족도, 지위도, 명성도, 자산도, 친구도 없이 오로지 실존적 자아인 '나'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런 책을 읽는 것은 하나의 철학서를 읽는 경험과도 같다. 죽음은 가장 실제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주제다. (플라톤은 "철학은 죽음을 연습하는 것"이라고 했다.) ( <마지막 강의>의 고 랜디 포시, <숨결이 바람 될 때>의 고 폴 칼라니티, 그리고 <나는 천국을 보았다>의 이븐 알렉산더는 각각 컴퓨터 공학 교수, 신경외과 의사, 뇌과학자다. 과학과  철학의 경계는 항상 모호하다. 라이프니츠, 데카르트도 떠오른다.)



끝까지 삶을 정면으로 마주한 저자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편히 쉬시길.













6. <군주론> (원제 : The Prince), 니콜로 마키아벨리, 권기돈 역, 웅진싱크빅, 2008, 184p


정치 사회 고전 치고는 쉽게 읽히는 책 중 하나다. 절대 권력을 얻기 위한 무자비한 책략을 옹호하고 전통 도덕을 무시하는 등 당시로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주장을 담고 있다. 물론 현대적 해석은 그처럼 단순하지는 않다. 내가 받은 느낌으로는, 운을 강조하거나 상황적 변화를 주시하는 등 상당히 현실적인 고려를 담은 군주 지침서다. 정치 생활, 정치 행동, 정치 판단의 복잡성과 유동성을 염두에 두고 절대적인 규칙이나 진리가 존재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 '불확실성' 속에서 가장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이 학자이자 책략가인 자신의 임무이기 때문에 그는 자신만의 방법과 기술을 제안한 것이다.


군주가 경멸을 받는 것은, 변덕스럽고 경박하고 유약하고 비겁하고 우유부단하다는 평판을 얻을 때이다. 군주는 이것을 전염병인 양 피해야 하며, 그의 행동에서 당당함, 용맹함, 진지함, 강함을 보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114p)
질서가 잘 잡힌 국가와 현명한 군주는 귀족을 절망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그리고 인민을 만족시키고 안심시키기 위해 항상 애를 썼다. 이것은 군주가 착수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들 가운데 하나이다.  (117p)
인민의 본질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군주가 되어야 하고, 군주의 본질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통 시민이 되어야 한다.  (34p)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정치가이자 외교관, 군사전략가이며 사상가, 저술가이며 문학가인 마키아벨리의 글이  2017년을 살아가는 나에게도 굉장히 현실적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역시나 천재는 시대를 아우르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물론 그의 모든 생각에 동의하는 건 아니다.) 훌륭한 '군주' (현대적 의미로 '지도자' 정도일까)의 자질과 존재 이유에 대한 재고(再考)가 이뤄지는 요즘, 15세기를 살던 천재의 글을 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7.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목수정, 레디앙, 2008, 312p


정말 제목 그대로 '뼛속까지 자유로운'삶을 살아온, 살아가는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저자의 이야기. 굉장히 재밌게 읽었다. 저자의 다른 저작도 궁금해질 정도로!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실이 책의 주제이거나 전부는 아니다. 자유롭고 정치적인 저자의 삶의 과정이자 부분일 뿐. 저자 목수정 씨는 '감성 좌파'로 불리기도 하는데, 저자에 잘 어울리는 별명이다. 저자는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고, 쭉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왔다. 첫 직장인 관광공사에서 문화축제 기획, 지원하는 일을 주로 하다 그 뒤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 연극 기획자로 일하고, 외환위기 때 파리로 떠나 파리 8 대학에서 문화정책을 공부하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 국립발레단을 거쳐 민주노동당에 들어가서 정책연구원으로 일하다 당을 나왔다. 현재 문화정책 연구를 꾸준히 하면서 건축공부를 하고 있다. 다수의 저작을 가진 작가이기도 하다. (역시 문학도답게 단어도, 문장도 다채롭다. 복잡한 문장도 매끄럽게 읽힌다.)


저자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에 고개를 끄덕여 보기도 하고 프랑스와 대한민국을 넘나드는 저자의 사회 정치적인 관찰에 턱을 괴어 보기도 했다. '여자' 목수정 으로서의 목소리도 흥미롭게 읽었다. 무엇보다, 제 1장의 제목 <반칙하라, 즐겁다>처럼 제대로 대한민국 사회에 '반칙'하여 살고 있는 저자의 삶에 부러움을 느껴 보기도 하고 용기를 얻어보기도 했다. 삶에 대한 열정과 미래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찬 저자의 삶의 태도는 분명 '불안한 미래' 가 가장 큰 고민인 청춘들에게 귀감이 된다.

좁디좁은 잣대가 가두어 놓은 ‘정상’과 ‘합법’의 틀을 표면적으로나마 벗어나지 않으려 애쓰다 거기서 밀려나면 좌절하고 소외되는 어리석음이 이 격렬하게 요동치는 한국사회엔 지천으로 널려 있다.
나는 두려운 것이 없다.
고 말하고 나면 두려운 것이 없어진다.
우리가 갖는 두려움의 실체는 결국은 타인의 판단과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다.
모든 판단과 평가가 내 안에만 있다면, 두려움 따윈 정복하고 살 수 있다.  (p309,  에필로그 중)
오늘이 행복하면, 내일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오늘 나의 삶의 태도가 진실하다면, 내일의 나에 대해서도 신뢰할 수 있다.  (310p)
이만큼 살았는데 나에게 미래는 여전히 부정형의 그 무엇이고, 새롭게 밑바닥부터 선택해 만들어가야 할 그 무엇이다.....(중략)... 그러나 이 사방으로 열려있는 부정형의 미래야말로 내가 강렬히 열망하는 것이기에, 나는 완벽히 내가 원하는 지점에 와 있다.  (8p)













8. <본성이 답이다>, 전중환, 사이언스 북스, 2016, 256p

'진화 심리학자'라니, 위의 폴 칼라니티에 이은 또 다른 '융합형' 인물이다. 저자 전중환 교수는 서울 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최재천 교수 연구실에서 행동 생태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미국 텍사스 대학교 심리학과의 데이비드 버스 교수 연구실에서 진화심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이화 여자 대학교 통섭원의 박사 후 연구원을 거쳐 현재 경희 대학교 학부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진화적 관점에서 들여다본 인간 본성을 강의하고 있다.


현대 사회의 인간 사회에 대해 수많은 학문 분야가 각자 나름의 분석을 내놓는다. 문학이, 철학이, 사회학이, 경제학이, 경영학이, 사학이, 생물학이, 종교학이, 미학이, 교육학이, 그리고 그 외 수많은 학문들이 내놓는 답은 제각각이다. 그런데 이 '진화 심리학'에 의하면, '인간 본성'이 답이다. 우리 인간에게, 인간 사회에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왜 우리 마음이 그와 같은 행동, 그와 같은 결과물을 보이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저자가 서문에 소개하는 스티븐 핑커의 “인간 본성이 문제다.그러나 인간 본성이 또한 그 해결책이다.” 라는 말이 저자의 의도를 잘 대변한다.  보수와 진보, 성추행, 학교폭력, 테러리즘, 복수, 사과, 전쟁, 모성, 갑질, 선물, 교육, 선행, 악, 젠더 문제 등 사회 전반, 그리고  인간 본성과 심리에 관한 주제들의 흥미로운 분석과 설명이 담겨 있다.  저자의 다른 책 <오래된 연장통>도 독서 리스트에 추가 해 뒀다.














10. <스노든 게이트> (원제 : No place to hide), 글렌 그린월드, 박수민 박산호 역, 모던아카이브, 2017, 392p


3월에 읽은 책 중 단연코 가장 재밌게 읽은 책. 이 책은  미국에서 2014년에 나왔지만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온 지는 얼마 되지 않은 신간이다.(2017년 2월)  저자 글렌 그린월드는 2013년 당시 미국 사회뿐만 아니라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그 '폭로'를, 스노든과 가장 가까이서 함께 진행 한 저널리스트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 함께 '폭로'를 진행한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로라 포이트러스의 <시티즌 포>도 바로 찾아봤다. (유튜브에서 1500원이면 자막과 함께 볼 수 있다. 이 책을 먼저 읽고 보는 것을 추천) 조만간 이 책과 관련한 글을 쓸 예정.














사실 4월에 읽고 싶은 책 리스트가 이미 완성된 상태인데, 기대가 되면서 두렵기도 하다. 기대는 그 책들을 어서 읽고싶어서고, 두려움은 그 책들 외에도 읽고 싶은 책이 계속 생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4월에도 내 활자 중독은 계속 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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