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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rat Mar 06. 2017

2017年 1&2月, 함께한 책들

<월간 독서기록>



벌써 2017년의 3월이라니! 긴 겨울이 지나고 점점 날이 길어지고 햇살이 따뜻해지고 있다.

새해가 된 지는 꽤 지났지만, 역시나 봄이 오는 3월은 다시금 설렌다.








1.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박은정 역, 문학동네, 2015

작년에 읽었던 <체르노빌의 목소리>와 같은 저자로, 그녀는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책을 매우 좋아한다. 아마 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가 그녀의 저서 중 가장 유명할 것이다. 표지 이미지나 제목이 꽤나 강렬해서인지, 작가를 모르거나 이 책에 대해 들어보지 않은 사람들도  관심을 갖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작가는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로,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이라는 독특한 문학 장르를 창시했다. 수많은 인터뷰와 자료 조사가 바탕이 되어 있지만 일반 문답 형식의 기록이 아니라 소설처럼 읽히는 산문이다. 

 

이 책은 전쟁에 참전하고, 전쟁에서 살아남은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전쟁'은 남성으로 가득 차 있다. 패배도, 승리도 그들만의 이야기로 다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결코 전쟁이 남성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음을, 또한 현재도 아님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에는 참전으로  다치거나, 죽었거나,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여성'이 겪은 전쟁뿐만 아니라, 결국 '전쟁'이 어떤 것인지, 모두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사실적으로 알 수 있다. 조만간 시간이 나면 작가의 다른 책들과 함께 자세히 리뷰를 남겨 보고자 한다.



2. <프로작 네이션>, 엘리자베스 워첼, 김유미 역, 민음인, 2011

"우울에 빠진 한 여자의 심리 보고서". 이 책은 따로 브런치에 긴 리뷰 겸 글을 남기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워첼이라는 개인도, 이 책 자체의 이야기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우울증'과 '우울증 환자'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현대인에게 '우울증'은 더 이상 멀고 먼 이야기가 아니지 않은가? 무엇보다, 우울증과 치열하게 싸운 그녀에게 진심 어린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3. <감각의 제국>, 문강형준, 북 노매드, 2015

새빨간 표지가 눈에 띄는 이 책은, 《한겨레》에서 연재되고 있는 문화평론가 문강형준의 문화비평 칼럼 중, 2012년 2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연재된 64편을 모아 엮은 책이다. 문화 평론가답게 영화, 드라마, 사회 현상, 정치, 뉴스, 예능, 문학, 책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오늘날의 대한민국과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다. 칼럼을 모아 둔 책이기에 각 편을 가볍게 읽을 수 있으며 (내용은 가볍지 않지만) 편마다 다른 소재와 주제가 있기에 지루하지 않다.



4. <빨래하는 페미니즘>, 스테퍼니 스타일, 고빛샘 역, 민음사, 2014

새파란 하늘에 널려 있는 새 하얀 빨래 들과, '빨래하는 페미니즘'이라는 제목이 이 책의 내용을 잘 대변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 이 책은 표지 이미지처럼 상쾌하고 청량한 내용이 아니다. "여자의 삶 속에서 다시 만난 페미니즘 고전"이라는 부제가 이 책의 내용을 더 잘 대변하고 있다. 


저자는 미국의 명문 여대 바너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언론학 석사 과정을 마쳤으며, 언론계와 출판계를 넘나들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랬던 저자가 예상치 못한 임신과 출산으로 프리랜서 기자로 전업하고, 꿈과 열정이 넘치던 과거와 달리 아내이자 엄마로의 삶을 꾸려간다. 그녀가 꿈꾸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이었다. 저자는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학창 시절에 배웠던 '페미니즘 고전'들을 떠올리며 그것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으로 돌아간다. 책은 저자가 어떤 삶을 살다가 어떤 생각을 가졌고, 다시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무엇을 배우고 느꼈는지에 대한 것이다. 이론만 가득하지도, 그렇다고 자신의 이야기만 늘어놓은 것도 아니어서 페미니즘 초보나 입문자에게 좋은 책이다. 나 또한 초보로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기에 책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페미니즘 고전들로 독서 리스트를 채웠다.



5 <햄릿>, 윌리엄 셰익스피어, 최종철 역, 민음사

청소년 때 셰익스피어의 햄릿, 맥베스, 오셀로, 리어왕을 무작정 읽었을 때는 사실 큰 감동은 없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와 함께 스토리를 이미 너무 많이 들었던 탓일까. 그때는 그 말의 의미조차 진지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불현듯 저 "To be, or not to be"의 의미를 지금의 나는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해서, 오랜만에 햄릿을 다시 펼쳐봤다. 나는 이 이야기의 깊고 넓은 의미를 잘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나름대로 소득 있는 재회였다. 어렸을 때는 그냥 지나쳤던 대사가 와 닿았고, 지금의 우리와도 너무 닮아 무릎을 쳤으며, 이 짧은 이야기에 담긴 것들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아 재생산되고 변형되었는지 경탄하며 책을 덮었다. 나중에 또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어떤 대사들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다음의 대사들에 형광펜을 쳤다.

햄릿 : "오, 너무나 더럽고 더러운 이 육신이 허물어져 주님께서 자살 금지 법칙을 굳혀놓지 않았으면. 오 하느님! 하느님! 이 세상만사가 내게는 얼마나 지겹고, 맥 빠지고, 단조롭고, 쓸데없이 보이는가! 역겹다, 아 역겨워. 세상은 잡초 투성이 퇴락하는 정원, 본성이 조잡한 것들이 꽉 채우고 있구나. 이 지경에 이르다니!... (중략)..... 이건 좋지 않고, 좋게 될 수도 없는 일. 하나 가슴아 터져라, 입은 닫아야 하니까. "  -  제 1막 2장 129-159행
시대의 관절이 어긋나 있다 - 오 저주받은 운명이다. 그걸 바로잡으려고 내가 태어났다니! 
아니야, 아니다. 우리 함께 같이 하면 될 일. - 제 1막 5장 196-198행



6. <와일드가 말하는 오스카>, 오스카 와일드, 박명숙 엮고 옮김, 민음사, 2016

"행복한 나르시시스트의 유쾌한 자아 탐구". 가벼워서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오고 가며 읽기 좋았다. 이 책에는 오스카 와일드란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일화나 발언들과, 그의 산문 시 몇 편, 인터뷰가 담겨 있다.

 

그는 자신을 마음 깊이 사랑하고,  스스로의 존재와 가치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또한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고 존경했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자만하지 않았으며 고통을 가진 타인들을 이해하고 생각했다.  와일드는 오만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천재성을 잘 알고 당당했을 뿐만 아니라 타인의 평가에 크게 개의치 않았지만 부족한 점을 반성하고 끊임없이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했다. 자신의 고통을 받아들였고 고통받는 이들을 생각했다. 그는 바람직한 나르시시스트다.

 

와일드는 삶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진지한 태도로 삶과 죽음을 맞이하는 철학자였다.  와일드는 생전 감옥에 가서 삶의 의미와 가치에 깊게 고민하는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긴 시간이 지나서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말과 글이, 삶이 닿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참 행복하고 정말 대단한, 영혼이 충만한 삶을 살았다고 그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는 단지 생계만을 위한 것이 아닌, 진정한 삶을 살고 싶다.  -22p

나는 선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난 내 영혼이 추악하다는 생각을 견딜 수가 없다.  -22p

나는 글쓰기를 현실로 여긴 적이 한 번도 없다. 내게 글쓰기는 현실에서 벗어나는 방식이다.   -42p

좋은 평판이라는 것은 내가 한 번도 개의치 않았던 귀찮은 일들 중 하나다.       -34p

내가 같이 지내고 싶은 유일한 사람들은 예술가들과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다.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과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다.   -1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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